[프레시안 기고글 2025.12.26.]
지난 글에서 유엔이 12월 14일을 세계 반식민주의의 날로 지정했다고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프레시안에 기고문을 보내고, 친분이 있는 한겨레 조일준 기자님께도 보도를 요청드렸습니다. 주말이었는데도 기자님께서 급히 기사를 작성해 주셔서 다행히 한겨레 칼럼 '유레카'에서도 보도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조일준 기자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기자님께서는 베테랑답게 정제된 언어로 자연스럽게 우리 정부의 기권을 알리며, 동시에 제 기고문에서는 없는 문제점을 제기하셨습니다. 바로 '반식민주의의 날' 제정을 주도한 게 권위주의 국가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번 반식민주의 결의안은 ‘유엔헌장 수호를 위한 우호 그룹’ 18개국이 주도했다. 문제는 그 대다수가 민주주의, 인권, 시민적 자유가 억압받는 권위주의 국가라는 것. 주권국의 존엄과 독립은 당사국의 국내 정치와 상관없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좋은 말도 발화자의 권위와 평판에 따라 설득력에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메시지와 메신저의 딜레마다."
사실,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쓰려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기자님께서는 관점의 전환을 유도하는 '유레카' 칼럼의 특성을 고려해 이 부분을 짚으셨습니다. 좋은 문제 제기였으나, 이게 결말에 위치하다 보니 독자들에게는 '권위주의 국가가 주도한 거니, 우리나라가 기권한 것도 이해가 되네'라고 오해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우려되어 기자님과 논의하여 유레카의 문제의식을 명확히 하는 후속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자 프레시안에 올라온 기사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왜 반식민주의는 권위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주도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다루고, 팔레스타인에는 어떤 함의가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매번 이렇게 팔레스타인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실제로 팔레스타인이 이번 기념일 제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민주주의는 선한 정치 체제로 여겨지지만, 식민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 국가들이었다. 이들은 유엔의 '탈식민화' 목표에 저항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서구의 방해로 민주주의 도입이 좌절되고 비극으로 귀결된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1919년 이래 팔레스타인인들은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한 민주 국가 수립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강제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독립으로 이어질 민주적 체제를 허용하지 않았다. 영국에 의탁해 힘을 키우던 시온주의자들(=유대 민족주의자) 역시 반대했는데,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이 다수 인구가 되어 정치적 결정을 좌우할 수 있게 된 이후에만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1948년에 건국된 이스라엘이 민주주의를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인종청소로 도입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를 도덕적으로 우월한 체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들에게 선택권을 보장할 뿐, 그 국민들이 도덕적으로 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같은 공동체로 여겨지지 않는 외국인 혹은 국내 소수자의 이익을 침해하기 쉽습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포르투갈 등 여러 식민 국가들이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식민주의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일부는 지금도 약소국을 핍박해 이익을 착취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지요. 일본에 식민 역사를 반성하라고 열심히 외치면서 다른 나라의 도움도 구하지만, 정작 다른 나라들이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에는 무관심하고 외면합니다. 이번 '반식민주의의 날' 보도가 나간 이후 우리 사회에서 그 어떤 반향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다들, 이게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 모르시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넘어가는 건지 안타깝습니다.
"독자들 중에는 서구 진영과의 결속이 도덕적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가치관에 따른 차이니 여기서 옳고그름을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 정부가 무엇을 포기한 것인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가 서구와의 연대를 택하며 희생시킨 것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비판 의식이다. 기념비적인 첫 '반식민주의의 날'에 일본을 성토하는 목소리조차 없었던 사실은 정치적·도덕적 족쇄로 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