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1개월 전, 브런치에 <이번 가자지구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점>이란 글을 썼습니다. 이전의 전쟁들과는 달리 하마스의 반격이 없는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건물을 폭파하는 것을 보며, 가자지구 북부에서 주민들을 몰아내고 점령할 사전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는 사실로 밝혀졌고, 이제는 미국도 찬성하고 나섰습니다.
1월 26일 어제, 트럼프는 가자지구가 파괴가 심하니 주민의 3분의 2를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임시' 이주시키겠다고 말했고, 요르단과 이집트에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주 기간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으나, 진의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미 대놓고 영구 이주로 확정 짓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 BBC 기사나 한겨레 기사가 이에 대해서 짧은 기사를 썼으니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지금까지 언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가자지구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 말해왔으나, 언제나 사상자 수나 건물 파괴, 식량 부족 등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만을 거론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끔찍하고 무서운 것은 전쟁 이후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재점령하면 다시금 이슬람권에서의 반발이 거세지고, 반드시 제2, 제3의 9. 11 테러를 시도하게 될 겁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서구 국가들은 수많은 이슬람 지역을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 넘게 식민 지배한 역사가 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부정의한 일로 첫 손꼽히는 게 팔레스타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서구권에 저항하는 무슬림 국가나 테러 단체들은 언제나 팔레스타인 문제를 거론하며 자신들의 저항이 정당하다고 말해왔습니다. 9.11 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의 공정한 해결을 촉구하며 테러의 정당성을 호소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정말로 가자지구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제로 이주시키는 데 성공하리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서구 국가들도 이 일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만류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어떠한 형태로든 가자지구의 통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전처럼 식민촌을 건설하려고 시도할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만으로도 팔레스타인과 이슬람권의 저항은 더 격렬해질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이러한 끔찍한 미래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해방되지 못했듯이, 팔레스타인 역시 그러한 상황입니다. 일제 시절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그토록 외부의 도움을 찾아 헤맸던 것처럼, 팔레스타인도 그러합니다. 온 세상의 약소 민족들이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되기를 염원한 김구 선생님의 뜻을 기려 우리가 팔레스타인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친이스라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팔레스타인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서 왜 분쟁이 일어났고, 왜 계속되고 있는지를 알리는 것부터 노력하면 국민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고, 나아가 정부의 외교정책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목적에서 지난 1년간 <언론에서 말하지 않는 가자지구 전쟁>을 열심히 써오고 있는데, 마무리가 계속 늦어져서 안타깝습니다.
<언론에서 말하지 않는 가자지구 전쟁>은 원래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100-150쪽 분량의 짧고 가벼운 글로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전쟁 상황이 바뀌고 새로운 이슈가 생겨나면서 글을 자꾸만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이슈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염려스러운 건 휴전 직후부터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서 군사작전을 늘렸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완성된 초고를 읽어보니 만족스럽지가 못하더군요. 분쟁을 다루는 글은 상세해야만 반대편에 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못해서 결국 분량을 두 배로 늘리고, 좀 더 깊이 있고 알찬 내용으로 개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수정 중인데... 얼른 미련을 버리고 접어야 할 텐데 손을 멈추기가 어렵네요.
출간을 거듭 연기하면서 그때그때 브런치에 알리고 싶었으나, 브런치는 단순히 짧은 글 쓰고 올리는 용도가 아닌 공간이라서 꺼려지더군요. 혹 책 언제 나오나 기다리신 분들 있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른 SNS 계정을 만들어 짧은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지금은 일단 글 마무리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아참. 글 내용이랑 어울리지는 않지만, 다들 설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새해에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환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