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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Feb 25. 2024

이번 가자지구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점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배우다

2월 25일 현재 가자지구에서 사망자가 며칠 이내로 3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대부분이 민간인이고 특히 3분의 2가 어린이와 여성이라는 점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비교하면 민간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2년간 민간인 피해가 1만 명(+군인 3만 명)을 기록했으나, 가자지구는 5개월 동안 2만 - 2만 4천 명(하마스 포함 총 3만 명)으로 매일 10배나 많은 숫자가 죽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확전 중이고, 가자지구는 사실상 반격을 찾기 힘들 정도로 일방적 학살을 당하는 중에 생긴 피해입니다. 일각에서는 하마스가 민간인을 고기방패로 쓴다고 비판하지만, 군사력이 열세인 하마스가 반격을 하지 않은 것일 뿐 민간인을 어떻게 이용한 것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병원과 같은 민간 시설에 몸을 숨기는 건 어느 시대에서나 약소 세력이 선택한 전략입니다. 우리나라가 독립운동할 때도, 민주화운동 할 때도 그랬고요.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전선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민간인 대량학살이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단순히 살상의 효율화를 꾀할 뿐입니다. 민간인과 군인의 식별이 어려운 건 어느 전쟁에서나 마찬가지고, 그래서 모든 침공 국가가 민간인 학살을 저질러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베트남 침공도 안타깝지만 그중 하나로 꼽힙니다.


국제법은 어떤 이유로도 민간인 살상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국제법이나 유엔결의안 등을 준수한 적이 없고 서구 국가들도 같은 유럽계 국가인 이스라엘에  재갈을 물릴 생각은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무탈하게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스라엘의 대량무차별학살(genocide) 여부를 심사하고 있지만, 어차피 법적 강제력이 없습니다.


이번 전쟁을 다루는 대부분의 기사는 이와 같은 '사망자 수치'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100여 년 전 분쟁이 시작된 이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단기간에 죽은 적이 없었고, 민간인 피해는 21세기 이래 세계 최다이기 때문에 분명 주목할 만한 측면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망자 수보다도 더욱 무서운 후유증을 가져올 심각한 병세가 간과되고 있습니다.


바로 주거지 등의 건물 파괴입니다. 아래 UN이 관측한 위성사진부터 보시죠. 빨간 점은 건물이 파괴된 지역을 나타냅니다.

(https://reliefweb.int/map/occupied-palestinian-territory/unosat-gaza-strip-comprehensive-damage-assessment-january-2024)


UNOSAT에 따르면, 가자지구 전체 건물의 30%인 7만 채가 파괴되었습니다. BBC는 최대 60%까지로 추정했고요. 피해의 대부분은 북부 지역에서 발생했고, 지금 남부에서 교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남부의 피해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로 경제적 피해와 연결 지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이 이번에 발표한 보고서(https://thedocs.worldbank.org/en/doc/db985000fa4b7237616dbca501d674dc-0280012024/original/PalestinianEconomicNote-Feb2024-Final.pdf)는 전쟁 발생 직전인 2023년 3분기 GDP는 4분기에 80% 급락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전쟁 이전부터 심각했던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적어도 단기간 동안에는 거의 모든 가자지구 주민들이 빈곤하게 살아가게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경제적 쇠퇴는 전쟁의 흔한 결과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심각한 반향을 불러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주거지와 공동체의 물리적 기반이 파괴되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때입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에서 좋은 예시를 찾을 수 있습니다.


1881년에 러시아의 짜르(황제)가 암살되고 암살범이 유대인이라는 등의 소문이 퍼지면서 4년 동안 유대인 박해(포그롬)가 발생했습니다. 이때부터 극소수의 유대인들이 민족주의에 빠져들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시점을 분쟁의 시작으로 보기까지 힙니다.


유대 역사의 전환점으로 손꼽히는 이 포그롬은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까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역사를 연구한 초기 학자들은 포그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래서 유대인들이 유럽과 미국으로 대규모 이주를 시작했고 유대 국가의 필요성이 조명받았다고 서술합니다. 그런데 사망자 수치가 인용되지 않길래 열심히 찾아보니 4년간 겨우 49명이라는 놀라운 숫자를 찾았습니다.


후대의 일부 학자들은 이 49명이라는 수치를 인용하면서도 포그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어쩌고를 기계적으로 반복합니다. 그런데 19세기말에 반백 명의 사망자가 정말로 많은 숫자일까요? 21세기에 5개월 만에 3만 명이 죽어나가도 세상은 잠잠한데요? 이런 의문을 품은 건 저만이 아니었고,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무엇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대규모 이주와 극단적인 폭력적 민족주의 사상에 빠져들게 들었는지를 연구해 보았습니다. 이들이 내놓은 해답은 바로 '주거지 파괴'였습니다.


4년 동안 사망자 수는 49명에 불과했지만, 방화로 인해 수천 채의 집이 소실되었고 2만 명 이상이 주거지를 잃었습니다. 주거지를 잃는다는 것은 곧 경제 활동의 어려움을 야기하고, 고향에 대한 소속감을 약화시킵니다. 즉, 가족이 죽었지만 집이 멀쩡히 남아 있고 마을 공동체의 기반이 유지된 곳의 사람들은 추가적인 박해의 우려가 있더라도 고향에 머물지만, 집이 파괴돼 마을 공동체가 무너진 곳의 사람들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주를 떠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공습으로 건물을 열심히 파괴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네타냐후 총리 등은 가자지구를 직접 통치할 야심을 드러냈고, 반대에 직면하자 북부 지역을 장악하는 구상안을 내놓고 각료들과 회의 중입니다. 북부 지역은 하마스가 소탕되어 반격이 없는데도 여전히 건물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BBC는 이를 꼬집어 의도가 무엇인지 수상하다고 보도했고요.


북부 지역에 살던 가자지구 주민의 거의 모두가 남부로 피을 간 상황입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이들이 '이스라엘이 실효적으로 지배 중인 북부'로 돌아가려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파괴된 집을 보고 절망하고, 안전한 남부로 이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948년 전쟁 때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랍인이 없는 팔레스타인 땅을 원했고, 그래서 전쟁 전후로 '주거지 파괴'에 특별히 공을 들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는 종종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비교되는데, 엄밀히 말해서 단일인종국가의 창설이라는 목표만 같을 뿐 수단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을의 모든 건물을 파괴시킨 후 대체로 주민들을 죽이지 않고 국경 밖으로 이동시켰습니다. 학살은 피란을 부추키기 위한 부차적인 수단에 그쳤습니다.


1948년 전쟁이 끝났을 때 적지 않은 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밀입국해서 이스라엘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마을은 완전히 파괴되고 남겨 놓고 온 가보나 재산도 모조리 약탈당한 것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국경을 다시 넘어 아랍 영토에서 난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때를 떠올리며 가가지구에서 인종청소를 재개하고 있습니다.


3만 명이라는 당장의 사망자 숫자보다 가자지구 북부가 이스라엘 손에 넘어감으로써 생겨날 '팔레스타인과 아랍권, 범무슬림권'의 저항은 실로 어마무시한 파급력을 가집니다. 많은 분들이 20여 년 전에 일어난 참혹한 9.11 테러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런 테러가 일어났는지를 아시는 분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날까?'라는 속담이 있지요. 9.11 테러는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일어난 현상이 아닙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 국가들은 아랍권과 이슬람권 대부분을 식민 지배했고, 여태껏 보상은커녕 사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후로도 미국 등이 내정 간섭을 자행해 민주화를 방해하고 독재 정권을 옹립시키는 등의 부정의를 저질러 아랍, 무슬림 주민들의 반감을 더욱 키웠습니다. 이런 서구 국가들의 부정의의 극치에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북부지역이 정말로 이스라엘의 직간접적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면, 제2, 제3의 9.11 테러가 발생할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게 됩니다. 만약 이번에도 20년 전처럼 미국인이 3천 명 죽게 된다면, 서구 국가들은 '아니 어떻게 민간인을 3천 명이나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인류사에 대한 도전이고 정말로 실로 끔찍한 짓이다' 등을 외치며 서둘러 이슬람권을 징벌해야 한다고 외칠 겁니다. 물론, 서구권의 이중잣대에 이슬람권은 이번에도 냉소를 보내게 되겠지요.


이런 대립 구도는 서구권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갈 겁니다. 이슬람권을 공격해 경제 성장을 막는 한편 미국과 이스라엘과 같은 방산 국가들이 경제적 성장을 거듭하고, 이슬람권은 서구에 협력해야 한다 vs 저항해야 한다로 또다시 내분을 거듭하게 될 테고요. 오늘날 서구 패권주의는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 같은 과정을 인위적으로 수십 차례 반복해서 만들어온 역사의 산물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왜 분쟁이 일어났고 계속되는지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께는 제가 8년간 연구해서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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