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흔한 주장입니다. 그리고 고전적인 선동법이기도 하고요. 문제의 원인은 쏙 감추고 결과만 말하는 방법이지요.
하마스는 아무 이유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고향에서 추방시키면서 건국되었고, 1967년에는 서안과 가자지구를 선제공격해서 식민 지배를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가자지구를 완전봉쇄해 주민들을 말려 죽이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 사람의 가족을 죽이고 강간하고 재산을 약탈했더니) 저 사람이 나를 공격했다. 그러니 나도 보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오늘은이런 기초적인 게 아니라 조금 더 중요한 내용을 다뤄볼까 합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유대인이 잘못한 거냐, 팔레스타인인이 잘못한 거냐"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어느 쪽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제가 양비론을 취하는 것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본인이 잘못된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지요.
제 책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의 부제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 유대인 vs 아랍인 구도입니다.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의 국가를 표방하니 당연히 유대인들이 원해서 건국한 국가로 믿어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1880년대부터 시온주의자(=유대 민족주의자)들이 유대 국가를 만들자고 했을 때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게 다름 아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다 1917년에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고향을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하자 점점 많은 유대인들이 혹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직전까지도 유대 국가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꽤 많았습니다. 1947년의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팔레스타인과 해외 유대 공동체의 의견은 분화되어 있었다. 일부는 팔레스타인 전체를 유대 국가로 원했고, 일부는 팔레스타인을 분할하되 충분히 넓은 영토를 지닌 유대 국가를 주장했다. 유대 국가 자체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팔레스타인 내 사회주의 단체와 공산당은 민주적이고 평등한 두 민족 국가나 연방제를 주장했고, 미국의 유대교 의회는 유대 국가가 팔레스타인 내외의 평화와 안보에 위협을 일으키고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650)
유대 민족 운동이 시작된 1880년대부터 이스라엘이 건국되는 1948년까지 약 70년의 역사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대결만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시온주의자의 대결이 병행해서 존재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아랍인의 아군에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 중에는 수백 년 전부터 팔레스타인에서 살아오면서 아랍어와 아랍 문화를 익힌 아랍 유대인들도 있었고, 정통파 교리를 따르는 러시아의 유대인 하레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는 정말 낯설지요? 유대인이 유대 국가를 반대했다는 사실은 안 그래도 정당성이 부족한 이스라엘에 더욱 찬물을 끼얹기 때문에 감춰진 진실입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오늘날처럼 아랍 vs 유대 민족 구도를 일부로 만들어내려고 갖은 노력을 해왔고, 그래서 지금도 역사를 왜곡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럼 서두에서 인용했던 뉴스 기사를 다시 볼까요? 테드 도이치 회장은 "중동전쟁은 유대인 말살이 목표인 테러 단체(하마스)의 공격에 이스라엘이 자국 방어를 위해 취한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주요 명문대의 일부 학생이 ‘유대인 제거’ 등을 주장하는 등 최근 미 사회 곳곳에서 반(反)유대주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말합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아랍인들의 적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역사 문서를 들여다보면 아랍인들은 일관되게 말합니다. '우리는 유대인을 이웃으로 환영한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우리 고향에 유대 국가를 세우려는 시온주의자들이다.'
이런 정신은 오늘날 하마스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하마스가 시온주의자/유대인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목표가 유대인 말살은 아닙니다. 하마스가 추구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을 되찾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이스라엘 '국가'를 무너트리길 희망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등에서 일고 있다는 소위 반유대주의의 정체도 사실은 반시온주의입니다. 하버드대 학생 등이 내건 성명에 '유대인들 죽이자' 같은 문구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저지른 추악한 역사를 반성하고 현재의 식민 지배를 중단하라고 요구할 뿐이지요. 그래서 '평등한 권리'를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이스라엘 단체와 언론들은 이를 '유대인 제거'라고 바꿔 말해서 악마로 묘사합니다.
제가 분쟁의 원인을 연구하며 가장 주목한 게 바로 이런 현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잘못을 알기 때문에 사실을 말하지 않고 왜곡합니다. 역사적 사료의 글자를 정반대로 고쳐서 쓸 정도로까지요.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거짓 주장에 속아 넘어가 세뇌된 상태입니다. 만약 이들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요.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를 수 있게 되고 가해자의 행동 개선을 요구하게 되지 않을까요? 8년이란 시간을 들여 책을 쓴 것은 언젠가 이런 미래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