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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Oct 14. 2023

하마스와 가자지구 주민들이 싸우는 이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현재까지 간략 정리!

JTBC가 지난 며칠간 한국언론 최초로 이스라엘에 현장기자를 파견해 현지 소식을 전했습니다. 보통은 외신 받아쓰기에만 급급한 우리 언론이 현지 취재를 했다니 참 멋진 일이지요. 이도성 기자님은 이스라엘 군경과 행동을 같이 하며 이스라엘 국민을 인터뷰한 소식도 전합니다.

저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현재에서 만난 이스라엘의 청년들이었습니다. 공항에서 만난 한 청년은 본인이 예비군 신분이기 때문에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들어왔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왜 온 거냐'라고 했더니 '그걸 왜 묻냐 당연한 거 아니냐 나의 가족과 조국이 지키겠다'라는 말에 저는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오탈자는 본문을 따름)
출처 :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47952


가족과 조국을 지키러 왔다참으로 멋지지요? 그런데 기자님이 무시한 반대편의 이야기는 어떨까요? 엄청난 군사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하마스나 팔레스타인 주민들. 그들은 왜 싸우고 있을까요? 무슬림은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집단이라서? 아닙니다. '가족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우리나라 국민은 천에 한두 명 정도밖에 없지요. 방금 만든 지도인데, 걸 보면서 얘기를 나눠 보죠.


지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영토 변화

4천 년이 넘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에서 이 땅의 주인은 팔레스타인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중 일부에 속하는  집단이었고요. 성경이 아닌 '고고학과 역사학'이 말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실체는 이 땅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기원전 2세기경에 유대인들이 세운 하스모니안 왕국만 '반 세기!'동안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을 정복했습니다. 이후 7세기에 이슬람이 태동하면서 (십자군 시기를 제외하면) 팔레스타인은 쭉 무슬림 국가의 지배를 받습니다.


1880년 경에 팔레스타인은 오스만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50만 명의 아랍인과 2만 명의 유대인이 살았습니다. 이때부터 시온주의자들(=유대 민족주의자)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우려고 유럽에서 이주해 옵니다.


1914년에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며 오스만에 반기를 들 것을 권유합니다.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과 대시리아 지역의 일부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이에 응했고, 아랍 독립군이 영국 편에 서서 싸우게 됩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영국은 팔레스타인에는 독립을 약속한 적이 없다며 갑자기 태세를 전환합니다. 이 부분의 내용은 꽤 복잡합니다. 자세한 건 11월 말에 출간될 제 책을 봐주시고 여기서는 한 문장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영국 외교부는 전쟁 직후에 후세인과의 협정을 분석하는 20페이지짜리 비밀보고서를 만들었이렇게 말합니다.


“팔레스타인과 관련해서, 영국 정부는 1915년 10월 24일에 맥마흔이 샤리프 (후세인)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지역을 아랍 독립 경계 안에 포함시키기로 약속했다.”

출처 : Foreign Office of Great Britain, CAB 24/68/86, British Commitments to King Husein (November 1918)


1차 대전이 끝나고 열린 파리평화회의에서 영국 대표단에게 이 내용은 공유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표단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대신 '유대 민족의 고향'(a National home for the Jewish people)을 팔레스타인에 만들자고 말합니다. 이 또한 매우 복잡한 내용이라 여기서는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많은 서적과 언론이 혼동하는 중요한 오류 하나만 지적하자면, 영국은 단 한 번도 '유대 국가'(Jewish State)를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영국이 유대 국가를 공식적으로 입 밖으로 거론했다면 오늘날 이스라엘은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습니다.


유대 민족의 고향은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강제지배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프랑스나 다른 열강이 팔레스타인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또 아랍인들의 강한 저항이 예상되자 유대인들을 내세워 범유럽전선 vs 아랍 구도로서 팔레스타인 지배의 정당성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국제연맹은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영국에 위임합니다. (지도 1)


아랍인들이 저항하자 영국의 식민부장관 윈스턴 처칠은 1922년에 유대 국가를 명시적으로 부인하는 백서를 발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7년이 되자 유대 국가를 창설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었다가, 이후 아랍인들의 반발과 2차 대전으로 인해 포기합니다. 유엔은 그 뒤를 이어받아 1947년에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의 55%를 주고 유대 국가를 세우기로 합니다. 당시 유대 인구의 절반 이상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온 지 10년도 안 되는 유럽인들이었습니다. (지도 2)


팔레스타인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네.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이미 1936-39년에 독립운동을 벌이다 영국군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당한 뒤라 힘이 없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유대 민족주의자들)은 유엔이 정해준 유대 영토에서 청정 유대 국가를 만들고자 아랍인들을 학살하고 추방했습니다. 75만 명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의 형제들을 구하러 군대를 파견했으나 패배합니다. 팔레스타인 땅의 22%에 불과한 영토만 아랍인들의 손에 남았고 그게 오늘날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입니다. 유엔이 지금 현재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경선입니다.(지도 3)


그러나 1967년에 이스라엘은 기습 '선제공격'으로 서안과 가자지구마저 정복합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은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지도 4)


해외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임시정부(PLO)의 지휘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상대로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무장독립투쟁에 나섭니다. 레바논에 거점을 마련한 임시정부는 상승세를 달리고 있었으나, 1982년에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습니다. 또다시 자행된 부정의로 인해 아랍 국가들과 무슬림 국가들이 동요할 것을 우려한 미국은 팔레스타인 임시정부가 레바논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휴전을 중재합니다. 임시정부는 레바논에 남은 민간인(난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미국의 확약을 받고 레바논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임시정부가 철수하자마자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기독교도 민병대와 함께 한밤중에 베이루트의 사브라 구역과 샤틸라 난민촌을 습격해 민간인을 닥치는 대로 대량학살했습니다. 그 수는 무려 3천 명 이상이었습니다. 2001년 9.11 테러로 죽은 숫자와 같습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죽인 이스라엘인의 세 배입니다.


소비아(Sobhia)는 학살이 벌어지자 난민촌을 처음으로 탈출해 외부에 도움을 청한 난민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팔랑헤대원들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들과 함께 도망치기 위해 집을 나오자마자 확성기에서 스포츠시티 경기장으로 집합하라는 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무장한 팔렝헤대원들에게 마주쳤다. 그들은 그녀와 가족들이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걸 확인한 다음 걷게 했고, 도중에 남자들만 따로 멈춰 세우고 나머지는 계속 걸으라고 명령했다. “몇 미터도 가지 않아 총성을 들었고, 우리는 가족들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는 더 크게 오열했어요.”

그녀가 계속 걸어 도착한 곳에는 큰 구덩이가 있는 어느 집 앞이었다. “거기서 탱크와 이스라엘인들을 보았어요. 그들은 난민촌 안에, 쿠웨이트 대사관 건너편에 있었어요. ...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깊은 구덩이 안에 시체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녀들은 명령에 따라 스포츠시티 경기장으로 걸어갔고, 그곳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되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쿠웨이트 대사관과 스포츠 시티를 두 번 왕복해야 했어요. 그러던 중 지뢰나 클러스터 폭탄이 터졌어요. 사람들이 다치고 쓰려졌고, 군인들이 우리한테 총을 쏘았어요. 모두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어요. 우리는 아랍 대학을 향해 달렸고, 도로에 있는 차 하나를 멈춰 세웠어요. 거기에는 외국 언론인들이 있었어요... 학살이 일어났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출처 : Leila Shahid, The Sabra and Shatila Massacres: Eye-Witness Reports, Journal of Palestine Studies,  45-7, in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699-700.


이토록 무참하고 비열한 학살극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당시 죽은 난민들은 이스라엘 추방한 사람들과 자손들입니다. 그런데도 일말의 죄책감을 갖기는커녕 비무장, 비저항하는 민간인을 대량학살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못 들어보셨지요? 왜냐면 서구 세계는 사실상 침묵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서안과 가지지구의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로 하루하루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토지와 수자원 등을 약탈당해 빈곤해지고, 자유를 구속받고, 언론과 서적 등을 검열받고, 고문을 받았습니다. 이때 팔레스타인인들을 구휼해서 버팀목이 되어준 게 바로 이슬람 종교 단체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부가 할 일을 이슬람 종교 기관들이 알아서 해주자 민중의 저항을 억누르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이슬람 단체에 지원까지 해줍니다.


이스라엘은 식민지배를 영구히 이어가리라 믿었습니다. 자신이 속한 서구사회는 식민주의를 반성하지 않고 대단찮은 일로 보는 집단이니까요. 하지만 20년 간 견디다 못한 팔레스타인인들이 마침내 거국적으로 봉기했습니다. 시작은 가자지구였습니다. 가자지구는 인구밀도가 특히 높아서 상황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이 들고 일어서자 이슬람 단체들도 항거를 지지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하마스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을 평화협상의 테이블로 앉히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지도 5에서 보실 수 있듯이 이스라엘로부터 '부분적으로' 이양받은 영토권 보잘것없었습니다. 심지어 2012년에 유엔이 국가 지위를 인정해 준 지금도 '지도 5'의 영역에서조차도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땅에서 나오는 물도 이스라엘로부터 사서 마셔야 합니다. 사해를 비롯한 거의 모든  경제적 자원 이스라엘에 귀속된 상태라서 팔레스타인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제 원조에 기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저개발 된 지역에 밀집된 인구는 어떠한 쾌적한 환경도 제공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계속된 봉쇄로 물자 부족이 심각하고 안전한 식수가 없습니다. 석유 제대로 들여오지 못해 전기 생산에도 차질을 빚고 있고요. 가자지구 주민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고향인 난민들입니다. 당연히 과거에 조부모나 부모님이 이야기해 주던 고향에서의 삶을 이상향으로 그리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자지구의 주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네. 가자지구의 주민들은 가족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전선에 섰습니다."


하마스의 잔인무도한 민간인 학살에만 눈이 멀어 이 같은 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은 지탄받아 마땅하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같은 이유에서 이스라엘을  향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보다 몇 곱절 이상으로 어린아이를 포함한 민간인을 대량학살해 왔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장투쟁을 나서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아이들을 죽이고 민간인을 죽일 때는 입 꾹 다물고 있다가, 하마스가 같은 짓을 저지르면 천인공노할 태세를 갖추는 건 비겁하다는 말로도 모자랍니다.


분쟁. 참으로 잔혹한 일이죠. 막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서안지구에서 식민 지배를 하고, 가자를 봉쇄하고 주기적으로 침략해 민간인을 학살하고, 난민의 귀환을 거부하고, 과거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고, 부끄러운 역사는 왜곡하는 이스라엘은 절대자를 숭배하듯 내버려 두고, 이를 견디다 못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할 때마다 '테러'라고 비난하시겠습니까? 장담컨대, 몇 백 년, 몇 천년이 지나도 팔레스타인인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도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와 같은 분들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분쟁을 막는 방법하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해 부정의한 짓을 멈추라고 소리 높이는 것입니다. 미국의 최고 엘리트인 하버드대 학생들이 비난받을 것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의 책임을 묻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다시는 유대인 아이들이 무고하게 죽는 일이 없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를 멈춰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JTBC의 이도성 기자님께 한 말씀 올립니다.

"제가 현장에서 좀 놀랐던 거는 ... 현장에서 다른 해외 언론사들과 함께 우리 대한민국 언론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뜻깊은 일이 아니었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번 현장 취재 다녀오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외신과 발맞춤을 한 것은 큰 성과라고 봅니다. 그러나 정말로 뜻깊은 것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고민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국민들에게 무엇을 전할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저 외신의 뒤꽁무니 쫓아간다고 제대로 된 보도가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발발한 것은 전쟁입니다. 전쟁에는 쌍방이 존재한다는 건 초등학생도 압니다. 그런데 기껏 현지에 가셔서 이스라엘만 취재하고, 이스라엘 국민의 모습만 찬양하는 소식을 전하는 게 제대로 된 보도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자지구는 위험하고 허가도 떨어지지 않아 들어가지 못할 수 있지만, 출입이 자유로운 서안지구에만 가보셔도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가는 데 한 시간도 안 걸립니다.


우리 국민들은 '하마스가 선제공격해 놓고 지들이 왜 이스라엘의 보복 가지고 뭐라 그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정의한 현실에 JTBC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자각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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