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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Oct 12. 2023

'선제공격'과 '보복'이란 단어에 숨겨진 비밀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촉발되었고 이스라엘의 강력한 '보복'이 예상됩니다.


지금 우리 언론에서 숱하게 찾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 사실, 틀린 말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실제로 하마스는 이스라엘 영토를 기습공격했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지상군까지 투입하는 반격을 준비 중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표현에서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이미 편향된 뉴스에 길들여진 독자입니다.


하마스는 왜 이스라엘을 공격했나요? 뉴스 댓글란을 보면 무슬림이라서 그렇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기 시작한 것은 7세기부터입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왜 지금 와서 이런 '테러'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지요.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이라면 딱히 팔레스타인을 몰라도 답을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무슬림들의 테러가 시작된 시점은 우리가 항일운동을 시작한 시점과 일치하거든요.


정답을 아시겠나요? 정답은 바로 식민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팔레스타인은 1917-1948년 동안 영국의 강점기를 겪었고 그 결과로 지금의 서안과 가자지구를 제외한 82%의 국토가 이스라엘 손에 넘어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유대 인구의 과반수는 이주해 온 지 10년도 안 되는 유럽인이었습니다. 이후 1967년에 이스라엘은 서안과 가자지구를 '선제공격'한 후 지금까지 점령하고 있습니다. 지난 반 세기 넘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식민 지배로 신음하고 외부의 도움을 호소했지요. 한 예로, 지금도 서안지구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나오는 물을 이스라엘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사 와야 합니다. 그래서 2013년 통계를 보면 유대인들은 한국인보다도 물을 많이 쓰는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3분의 1밖에 못 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쓴 팔레스타인 여행기를 참조해 주세요)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시작하면서 알아크사 모스크에 대한 이스라엘의 위협을 동기로 거론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로는 서안지구에서 정착촌(정확한 학술적 용어로는 식민촌)을 늘려서 병합하려 하고,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주민들의 삶을 괴롭히는 수많은 반인권적 행위에 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알아크사 모스크를 거론했을까요? 바로 여러분처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식민지배의 피해자를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순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이스라엘과 우호협상을 체결하려 했고, 하마스는 이를 막기 위해서 이슬람 3대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를 전쟁의 동기로 내세운 것입니다.


지도. 2012년 12월 기준 서안지구 정착촌 구역. 서안지구의 약 절반이 유대인을 위한 정착촌 지대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다음을 편집함. UNOCHA, The Humanitarian Impact of Israeli Settlement Policies, December 2012, 2:"Land Allocated To Israeli Settlements.")




하마스의 이번 공격을 비롯해, 팔레스타인인들의 모든 저항은 식민 지배의 종식을 외치고 있습니다.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음부터 무력 투쟁에 호소한 것도 아닙니다. 1967년에 식민 지배가 시작된 이래로 대다수의 난민들은 팔레스타인 외부에서 투쟁했고, 서안과 가자지구의 주민들(난민 포함)은 이스라엘의 지배에 대체로 순응했습니다. 그러나 토지와 수자원 약탈, 인권 학대, 자유 억압, 고문 등 우리 조상들이 일제강점기 때 겪은 일들을 경험했고, 20년을 참고 참다가 1987년에 독립을 요구하는 민중봉기운동(인티파다)을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식민지배를 이어가겠다며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민중의 봉기는 거셌고, 그동안의 식민 지배의 실상이 서구에도 알려지면서 국제 여론이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협상 테이블에 앉고, 1999년까지 서안과 가자지구의 영토를 돌려주는 등 여러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지키지 않았지요. 2000년에 이스라엘의 대리인으로 나선 미국이 최종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약속한 영토는 이랬습니다.


지도. 2000년 7월 캠프 데이비드 협상 클린턴 최종안. 좌우측 초록색 선이 유엔이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1967년 이전의 국경선이고, 서안지구를 3등분한 빨간색 선이 미국이 제안한 새로운 국경입니다. https://www.nad.ps/en/publication-resources/maps/israeli-proposal-camp-david



영토 문제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전부가 아니라 한 부분입니다. 영토와 관련된 자원 등(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국토 절반에서 자원을 개발하지 못합니다. 사해조차도 이용이 금지됩니다.)의 주권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도 6백만 명이 넘는 난민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땅이 고향인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70년이 넘게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했고 유엔은 백 번도 넘게 이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난민들의 토지와 재산(심지어 은행계좌까지)을 약탈해 유대인들끼리 나눠가졌고, 난민의 귀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일본보다 더 심하고 더 오랫동안 식민주의를 해온 서구 국가들은 식민주의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과조차 하지 않고요. 우리 언론은 이러한 풍조를 그대로 뺏겨 써서 말하지요. '이스라엘은 가만히 있는데 하마스가 선제공격했다! 이스라엘의 보복은 정당하다!'


역사와 식민 지배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정말로 하마스는 '선제공격'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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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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