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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Oct 16. 2023

라마단으로 풀어보는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이해

오늘은 라마단 단식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가 보고자 합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무슬림들은 1년에 약 한 달 동안은 단식을 합니다.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단식을 하는 건 아니고, 일출과 일몰 사이에만 입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물을 포함해 어떤 것도 먹고 마시면 안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2012-15년에 저는 KOICA 팔레스타인 사무소에서 인턴과 행정원으로 근무했습니다. 파견 당시 사무소는 이름과 달리 이스라엘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팔레스타인에 대해 아는 것도 적고 여러모로 돕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걸 절감했던 게 라마단이었습니다.


우리 사무소에는 사무소장님과 저 외에도 한국인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이스라엘에서 오랫동안 사던 분이었는데, 라마단 기간이 다가오자 본인이 알고 있는 썰을 푸셨습니다. "무슬림들 중에 단식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전부 다 숨어서 몰래 먹는다." 사무소의 다른 직원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죠.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물도 안 마시고 살 수는 없다고.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슬람이 창시된 지 무려 1천4백 년이 넘었습니다. 대다수의 신도가 지킬 수 없는 문화는 전승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12시간 정도 단식하는 게 건강에 무리가 가는 것도 아니고 건강한 사람에겐 대단히 힘든 일도 아니고요. 무슬림들이 숨어서 먹는 걸 얼마나 봤길래, 그리고 그런 걸 본 적도 없는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들은 왜 믿고 있는지 안타까웠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종교별 인구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적이 없지만 95-99%가 무슬림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 무슬림에 대한 저런 편견을 가지고 우리가 팔레스타인을 돕는다면 잘못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라마단 때 무슬림들과 똑같이 단식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만, 사무소가 이스라엘에 있는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심정적으로라도 연대한다는 걸 보여주는 의미에서 하는 거라고 좋게 말했지요. 실제로도 이게 절반 정도의 이유였고요.


사무소 직원들은 하루 만에 제가 쓰러질 거라 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기서 란 무슬림들도 못하는 데 한국인이 어떻게 하냐고. 그리고 라마단 기간이 다가왔습니다.


라마단은 음력인 이슬람력에 따르기 때문에 매년 약 2주 정도 앞당겨집니다. 2013년에는 8월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필이면 해가 제일 긴 한여름이었지요. 그래서 대략적으로 6-19시 정도가 단식 시간이었습니다. 전날 밤, 물을 충분히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 공복으로 사무소로 출근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저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날 단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러자 어느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루야 괜찮지만, 내일은 무리 아닐까? 무슬림들도 여러 날 여러 번 하다 보니 못하게 된 거 아닐까?


하지만 다음 날도 단식에 성공했습니다. 다다음날도, 다다 다음 날도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2주쯤 지나자 사무소에서 단식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는 사라졌고, 건강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잦아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을 무사히 채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다음 해, 우리 사무소는 팔레스타인 라말라로 이전했습니다. 동료 직원들이 이제는 굳이 단식을 할 필요가 없어진 거 아니냐고 말했지요.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그 해에도,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라마단 단식을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사무소에서 무슬림의 단식을 못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해에 동료 직원 한 분은 저를 따라 하루동안 단식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감을 남겼습니다.

"커피가 마시고 싶은 거 빼면 힘들지 않네요."


우리가 생각하는 무슬림의 모습은 사실 이런 편견들로 가득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무슬림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더군다나, 10억 명이 넘는 무슬림들이 다 같은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도들이 기독교 믿는다고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전문가를 자처합니다. 하마스가 왜 공격했는지도 알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왜 이스라엘에 대항하는지도 너무나도 잘 압니다. '무슬림은 폭력적이라서 싸울 뿐이다.'


팔레스타인의 지금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면 이런 편견들을 깨야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은 역사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오늘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현재'에 대해서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역사 요약은 여기 보기)


지금 가자지구에는 서울 절반 만한 면적에 2백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인구밀도만 보면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알기 어렵지요. 그래서 설명드립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그에 동조하는 이집트로 인해 외부로부터 봉쇄되어 있어 하나의 국가와도 같은 상황입니다. 이 안에서 국가의 경제가 다 돌아가야 합니다. 즉, 농업, 수산업, 제조업 등 모든 걸 서울의 절반밖에 안 되는 구역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많은 제약을 가합니다.


가자지구는 해안가에 인접해 있어 수산업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항구를 못 짓게 막고, 어업은 5.5km로 제한합니다. 제가 2015년 초에 가자지구에 공무 수행차 방문했는데, 그날 저녁에 생선 요리를 시키니까 동행했던 가자지구 보건부 직원이 만류했습니다. 이틀 전에 어민이 피살당해서 신선한 고기는 하나도 없을 거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죽은 어민이 5.5km를 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 어민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전자장비나 5.5km의 경계를 알리는 표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과 달리 가자지구에는 고층 건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많은 땅이 건물로 가득 찹니다. 그러면 농사짓는 면적이 매우 좁아지겠지요. 이스라엘은 여기에 제약을 또 가합니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으로부터 일정 거리 내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지요. 장벽 근처로 오면 사살합니다. 그런데 이 장벽이 세워진 곳은 과거에 주민들이 농사짓던 땅입니다. 많은 주민들이 장벽 근처에서 농사를 지으려다 목숨을 잃었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왜 농사를 지으러 가냐고요? 굶어 죽으나 총에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지도. 가자지구의 지도. 빨간색 선이 출입하면 사살되는 구역이고, 분홍색 선은 살해당할 위협이 큰 영역


사진. 2015년 초에 가자지구에서 찍은 사진


농사도, 어업도 제한되니 대부분의 가자지구 주민들은 상공업에 종사합니다. 그러면 외부와의 무역이 필수가 되는 무려 17년 간이나 봉쇄를 당니다. 그래서 북한이나 이란이 겪는 어려움보다도 더욱 크고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다행히 국제기구가 부족하게나마 원조로 지원해 주고, 또 이집트로 비밀터널을 뚫어서 밀무역을 해서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12년에 UN은 가자지구의 미래를 예측해 보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2020년의 가자지구 주민들의 일상은 지금보다도 심각해질 것이다. 사실상 안전한 식수를 이용할 수 없게 되고, 보건과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먼 과거의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가난하고 먹을 게 부족해 지원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수는 이미 매우 많지만 앞으로도 변함이 없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늘어날 전망이다.
출처 : Gaza in 2020 A liveable place?: A report by the United Nations Country Team in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August 2012.


세상은 아는 만큼 정의롭고, 아는 만큼 부정의를 피할 수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지금 상황을 보시고도 주민들이 폭력적이라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것 같나요?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 하마스가 공격한 걸로 보이시나요? 가자지구 주민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마스 공격 바로 전날에도 생존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해자는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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