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팔레스타인에서 살면서 보고 겪고 들은 흥미로운 내용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실제 모습입니다.
21세기는 지구촌 세계화 시대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가까운 일본과 같은 몇몇 나라들과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그 외 150여 개 국가에 대해서는 거의 모릅니다. 세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무슬림과 아랍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죠.
몇 년 전 예멘 난민 수용 문제로 떠들썩했던 일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인도주의적 가치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무슬림 난민이 치안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비판적인 입장의 대립으로 갑론을박이 심했습니다. 후자는 무슬림/아랍 난민의 성폭행 사례, 이슬람 경전인 꾸란의 호전적인 문구 등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반면, 여러 언론은 인도주의적 입장에 서서 난민 수용을 지지했고, 이를 위해서 꾸란에 관한 잘못 알려진 '일부' 내용을 바로잡았습니다.
당시 이 사태를 지켜보며 너무나도 황당했고 어질어질했습니다.누구도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채 초등학교 토론교실에 온 것처럼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멘 난민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예멘인'이지 '무슬림'이나 '아랍인'이 아닙니다. 예멘인이 아닌 다른 무슬림이나 아랍인들이 저지른 사건을 가지고 와서 예멘 난민을 비판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약 20억 명, 아랍 인구는 4.5억 명입니다. 이들은 단일한 인종도 아니고, 하나의 국가나 지역, 문화권에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다채로운 특징을 지닙니다.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생활상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1. 개발협력(=해외원조)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팔레스타인은 해외원조를 많이 받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이 토지와 수자원, 천연자원 등 거의 모든 경제적 기반을 수탈해가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자립 가능한 경제를 구축할 수 없고, 그래서 원조에 크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조를 많이 받는 국가의 공무원들은 '거만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우리 정부의 KOICA 팔레스타인 사무소에서 근무할 당시 직급은 Program Officer(국내 정식 직함은 행정원)였습니다. 비록 사무소 내에서 실질적으로 차석이었으나,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 정부 측의 파트너인 40대 과장, 50대 국장은 언제나 저를 존중하고 수평적인 관계(혹은 제가 우위에 서는)에서 자유롭고 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장관과 차관이 저를 찾아와 단독으로 미팅을 가지기도 했고요. 이런 모습은 요르단을 비롯한 주변 아랍 국가들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팔레스타인만의 특색이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마스 소속인 가자지구 보건부 차관의 적극적인 태도였는데, 이는 조금 긴 내용이라 다음에 집필할 책에서 선보이겠습니다.)
국민들 역시 개발원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저희 동료 직원 분이 검문소에서 대기 중에 앞차를 들이박는 가벼운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앞차에서 청년 여러 명이 내리고 성이 난 채 다가오자 이 직원 분은 큰일 났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고 나가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서 뭐 하냐는 질문에 한국의 원조 기구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자 청년들은 치료비는커녕 차량수리비조차 받지 않고 헤어졌습니다.
2. 기독교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
한국에서 우리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상종하기 힘든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고 흔히 알고 있습니다. 일부 기독교도 분들은 무슬림 사회에서 기독교가 박해받는다고 알고 있고요. 이게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무슬림 사회는 기독교를 비롯한 타 종교를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과거에 무슬림들을 박해해 완전히 쫓아낸 것과는 달리, 무슬림들은 차별적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와 공존하는 사회를 구축해 왔고, 나라/지역마다 이러한 차별의 정도는 달랐습니다.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은 기독교 유럽이나 다른 무슬림 지역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기독교도와, 특히 유대인들에게 매우 관용적인 지역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고대부터 현대까지 팔레스타인에서 있었던 유대인 박해 사례를 전부 조사해 봤기 때문에 믿으셔도 되며, 자세한 내용은 제가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의 제2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관용적인 태도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정부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안지구에는 베들레헴이나 라말라 등의 기독교 기원의 마을/도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마을/도시들은 대부분 무슬림 인구가 다수가 되었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의 추방 정책으로 쫓겨난 다른 지역의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들 도시와 마을을 무슬림화시키지 않고 기독교적 기원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도만이 시장(mayor)이 될 수 있도록법으로 정했고,이슬람에서 금지된 주류 판매 등을 허용합니다. 심지어 라말라는 대통령실을 비롯한 주요 행정부처가 위치한 '사실상의 행정수도'인데도 기독교도 시장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실제 수도는 이스라엘이 병합 중인 동예루살렘 -> 관련 글 보기)
이렇게만 보면 정말로 이상적이지만, 사실 사회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무슬림들의 종교적 단식 기간인 라마단 동안에 무슬림 음식점들은 낮장사를 하지 않지만 기독교 음식점들은 정상 영업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탐탁지 않게 여기는 무슬림들이 있습니다.
친구를 통해서 들은 건데, 어떤 가게는 복면을 쓴 무슬림 남성이 들어와 문을 닫으라고 협박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법적인 보호를 받기 때문에 가게 주인은 굴하지 않고 영업을 정상적으로 계속했고 별다른 문제를 겪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불안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는 않았겠지요.
제가 알기로 이런 사례는 팔레스타인에서 매우 예외적이고 다른 어느 사회와 비교해도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우리나라에도절에 불을 지르고 기물을 파손하는 기독교도가 종종 있지요. 이스라엘에서는 교회에 침입해서 예수의 조각상을 때려 부수는 유대인들이 있고요. (관련 글 보기 : 크리스마스에 예수탄생지 베들레헴에서는 ...) 그러니 딱히 무슬림의 문제라고 꼬집어 보기는 어렵습니다.
3. 여성 인권
무슬림의 여성 인권 억압은 대단히 유명하지요.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저도 이를 안 좋게 봅니다만, 팔레스타인에 와서는 조금은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여성 차별의 정도가 무슬림 국가들마다 다릅니다. 가령, 이란의 경우 히잡을 쓰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받지만 팔레스타인에서는 정반대로 '히잡을 강요하면 부모라 할지라도 법으로 처벌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팔레스타인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암암리에 존재하는 사회적 압력입니다. 나이 든 여성/남성은 젊은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을 나쁘게 봅니다. 그러니 눈총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히잡을 쓰게 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하고 널리 공감받는 이유는,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히잡은 패션입니다. 우리한테 잘 알려진 히잡은 검은색이지만 이는 나이 드신 분들이 드물게 착용하고, 대다수는 다양한 색상과 무늬가 들어간 예쁜 천을 씁니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모자 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모자를 쓰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모자를 쓰듯이, 팔레스타인 여성들도 패션의 하나로서 히잡 착용을 즐깁니다.
사진 : 베들레헴의 히잡 가게
물론, 이러한 패션이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사회적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는 따가운 햇살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아랍 문화입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자신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머리카락'은 남편에게만 보여줘야 할 은밀한 신체부위로 여깁니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슴과 같은 겁니다. 여성의 가슴은 성적 부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성스러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그래서 남편을 제외한 다른 남성이 보는 것을 금기시합니다. 이런 규범은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상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가슴 노출에 대해서 문화권마다 기준이 다르고, 가슴 노출이 완전히 허용되는 지역도 있는 것이지요.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무슬림 여성들한테 인권 억압 문제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고 다녔습니다. 거의 모든 여성들은 자신들이 억압받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고, 자신들의 문화를 억압이라고 부르는 서구적 잣대에 분노했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는, 이란에서와는 달리 히잡 같은 걸 쓰지 않을 자유가 있기 때문에 '억압'으로 상상하지조차 못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일부 소수의 여성들은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런 대답을 주신 분들은 시민단체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시민 단체를 제외하고 지인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 차별에 대해 말씀해 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혼기가 지났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었고, 보수적인 도시로 유명한 헤브론에서 살 때는 길거리에서 이웃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익명의 도시'로 유명한 라말라로 이사해 왔고, 여기에서는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니 어떠신가요? 상상과는많이 다르지요? 서론에서 말했듯이, 무슬림이나 아랍인은 균일한 집단이 아닙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권마다 정말로 차이가 큽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의 사례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비추어 보는 것은 한국과 일본, 중국을 싸잡아 보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끝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팔레스타인은 종교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라고 상상되고 있습니다. 왜냐면 '무슬림이라서 유대인을 죽이고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팔레스타인은 역사적으로나 지금 현재도 종교적으로 매우 관용적인 사회입니다. 19세기 말에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에 가서 유대 국가를 세우자'고 말할 때 '팔레스타인은 기독교 유럽과는 달리 반유대주의가 없는 곳'으로 선전했을 정도입니다.
다만, 오늘날의 가자지구는 예외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특히 21세기 들어 가자지구는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역사적으로 가자지구는 서안지구보다도 더 개방적이고 관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1967년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로 인해 생활이 극도로 열악해진 후로 주민들이 이슬람에서 구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서안지구도 종교적으로 보수화되지만, 상대적으로 가자지구보다는 생활 여건이 나았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나 정도가 약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종교가 원인이 아닙니다. 유대 민족주의자/이스라엘의 식민주의로 분쟁이 생겼고, 그 결과로 종교가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을 뿐입니다. 분쟁의 원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께는 제가 8년 간 전업으로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