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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Dec 23. 2023

크리스마스에 예수탄생지 베들레헴에서는 ...

예수탄생지로 유명한 베들레헴. 기독교를 믿으신다면 귀에 익숙한 이름일 겁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고 수유했다는 장소에 지어진 탄신교회가 있는 곳이지요. 그러나 정작 베들레헴이 어디에 붙어 있고 또 현대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아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사진 : 탄신교회(Nativity Church)


베들레헴은 요즘 뉴스에서 연일 나오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한 도시입니다. 다만, 전쟁이 발발한 가자지구가 아닌 서안지구에 있지요.


지도 : 좌측은 유엔이 인정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 우측은 서안지구 주요 도시들.




베들레헴은 그 유명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정도만 가면 나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방문해 본 사람은 많아도 베들레헴에 가 본 사람은 드뭅니다. 전자는 이스라엘, 후자는 팔레스타인이 통치하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전산이 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도 유엔이 인정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동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점령한 후 자국 영토로 병합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객들은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들락날락하는 반면, 베들레헴을 오갈 때는 이스라엘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베들레헴을 찾는 방문객은 자연히 줄어들었지요.


아래는 오늘날 베들레헴의 실제 모습입니다.




기독교권의 최대 축제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탄생지인 베들레헴은 이날 세상의 주목을 받고 수천 명의 순례객이 찾아옵니다. 때때로 교황이 직접 미사를 주관하기도 하고요.


사진 : 크리스마스이브의 탄신교회 미사 (출처 : 알자지라/AP 뉴스)

사진 : 크리스마스 축제 공연(출처 : AA 뉴스)


그런데 최근 반 세기 동안 베들레헴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못한 해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1967년에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지구를 선제공격해 식민 지배를 시작한 이래로 주민들을 탄압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축제인데 이게 무슨 이상한 소린가 싶으시지요?


시온주의자라 불리는 유럽의 유대인 민족주의자들이 유대 국가를 세우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침략하기 시작한 1880년대에 팔레스타인 인구의 약 10%는 기독교도였습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으로서 당연히 유대인의 식민 지배를 저지하려고 격렬히 노력했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 시온주의자들은 모든 저항의 근원을 기독교도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혐오하고 유대 이주에 반대하는 단 하나의 유일한 근원은 기독교 단체와 부유한 기독교도들, 그리고 예수회 학교에서 수학한 자들"이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354)


반 세기가 넘는 투쟁에도 불구하고 결국 1948년에 이스라엘이 세워지면서 75만여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인구의 85%)이 고향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연히 수많은 기독교도들도 추방당했고요. 기독교도 난민들은 무슬림 난민과는 달리 서구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수가 팔레스타인을 떠나 미국과 유럽 등지에 정착하게 됩니다.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는 기독교도 인구의 유출을 또다시 야기했습니다. 집과 농지, 물을 빼앗기고, 자유와 인권을 억압당하고, 아이들이 등하굣길 혹은 심지어 수업 중에도 유대인 테러리스트의 공격과 학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탄생한 이래 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도 인구의 비율이 오늘날처럼 줄어든 것은 처음입니다. 무슬림의 지배가 시작되는 7세기경에 기독교도는 팔레스타인에서 다수 인구였습니다. 이후 1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기독교 인구는 서서히 줄어들었으나 19세기 말까지도 10%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반 세기가 조금 넘는 이스라엘의 지배는 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도의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종교 전쟁, 그것도 유대교-이슬람 간의 종교 전쟁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요. 팔레스타인에기독교도들이 1% 남짓하게나마 여전히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고요. 하지만 이스라엘의 기독교 억압은 국제 사회에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던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2009년에 종교와 신념의 자유에 대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이스라엘이 유대교 성지만 보호하고 기독교나 이슬람 성지는 보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인권과 인도주의적 의무와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국가안보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알아크사 모스크와 이브라힘 모스크, 성묘교회, 탄신교회 등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막고, 유대인 수감자에겐 종교 활동의 기회를 보장하지만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크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98)


식민 지배에 감히 저항하는 기독교도들에 대한 반감은 이스라엘 정부만이 아니라 극단주의적인 국민들 사이에서도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인 2022년 12월에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기독교도에 대한 공격이 늘고 있다"는 제목으로,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장소에 지어진 교회에 유대인이 난입해 예수의 조각상을 망치로 때려 부순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당시 이 테러리스트는 "이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에서 우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You can’t have idols in Jerusalem, this is the holy city!")


얼마나 반기독교 정서가 심한지 조금만 더 알아볼까요? 2023년 1월 2일에는 두 명의 유대인 청년이 시온산 기독교 묘지에서 십자가와 묘비를 부수는 등 30개 이상의 묘를 훼손했습니다. 1월 26일에는 유대인 무리가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기독교 식당에 들어와 "기독교도는 죽어라!"고 외치며 손님들에게 의자를 던지며 공격했습니다. 식당 주인이 CCTV 영상을 가지고 이스라엘 경찰에 신고하자 경찰은 "귀찮게 지 말라"고 사건 접수를 거부했고요. 2월 2일에는 또 구시가지 교회에서 예수의 조각상이 파괴당했고, 2월 말에는 십자가를 운반하던 성직자가 구시가지 거리에서 공격당했습니다. (관련 기사 원문 보기 -르 몽드, 하아레쯔, 알자지라)


혹시 그동안 이스라엘을 응원해 왔는데 갑자기 배신감을 느낀다는 기독교인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무슬림을 이해해 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무슬림들이 '테러'를 할 때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친다고 정말로 테러의 원인이 이슬람인 것 같나요?


다가오는 2023년 크리스마스에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의 교회와 성당들은 조용한 하루를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이들 도시가 이번 전쟁의 무대는 아니지만, 가자지구에서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와중에 축제를 벌이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지요. 같은 기독교도로서 여러분들은 이들의 심정에 공감하시나요?


분쟁의 원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께는 제가 8년 간 전업으로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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