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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Dec 17. 2023

이스라엘이 인질을 오인사살한 이유가 인종이 같아서라고?

하마스로부터 탈출한 20대 인질 3명을 이스라엘이 사살해서 화제입니다. 나쁜 의도가 없는 단순 실수라지만, 그 이면에서 몇 가지 중대한 사실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공격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또 한 번 입증되었습니다. 인질들은 무기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군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그런데도 살해당했다는 것은 이스라엘군이 시야에 들어오는 사실상 모든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인질을 조우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인지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이스라엘이 지난 2개월 간 가자지구에 투하한 공대지 폭탄 중 절반 가까이가 유도 기능이 없어 민간인 학살 우려가 큰 일명 '멍텅구리 폭탄'으로 밝혀졌기도 했고요. (CNN “이스라엘, 가자에 ‘무유도탄’ 무더기 투하…민간인 피해 키웠다”


이 같은 사실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지 '하마스'를 특정해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팔레스타인인이 하마스를 지지하니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마찬가지로 적 아니냐?' 맞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이 같은 논리에 따르자면, 10월 7일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유대인과 외국인'을 죽인 하마스도 당연히 무죄겠지요.


인질 오인 사살과 관련해 기사 댓글들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들이 같은 인종이라서 육안으로 구분이 불가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들 중에 이런 디테일한 정보를 알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만, 반쯤만 맞고 반쯤은 틀린 말입니다. 이제 정확하게 한번 알아볼까요?


1. 유대인은 누구인가?


질문드리겠습니다. 유대인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어..글쎄요, 유대교를 믿는 사람?" 이라고 답하는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2016년 이스라엘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자국 유대인 중 오직 20%만이 스스로를 종교적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무려 40%가 넘는 사람들은 세속적(종교와 관련이 없다는 뜻)이라고 답했고, 35%는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완전히 세속적이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즉,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은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정체성이나 기원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다루기에는 지면이 부족합니다. 자세한 것은 제가 쓴 책을 봐주시길 바라고 여기서는 글의 주제에 맞게 유대인이 어떤 인종인지만을 논하고자 합니다. 고고학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의 고원지대 인근을 떠돌던 유목민의 후손으로 봅니다.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탈출했다는 성경적 역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2. 팔레스타인인은 누구인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현한 집단이라면, 그럼 팔레스타인인들은 누구일까요? 현대의 팔레스타인인은 고대부터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았던 수많은 토착 집단의 후손을 일컫습니다.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고대 유대인 역시 팔레스타인인의 선조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중심의 서구 역사관은 유럽적 인종과 비유럽적 인종에 대한 구분이 엄격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기원이 되는 유대교 신앙의 산증인인 유대인과 비유대인 역시 엄격히 구분합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에서 유대인의 혈통은 제외시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가령, 유대인은 독자적인 혈연 집단을 유지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는 주장을 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유대인을 선조로 보는 경향이 약한 편입니다. 이는 작금의 이스라엘과의 분쟁 때문이며, 나아가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 아랍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차이


아랍인은 원래 아라비아 반도에서 거주하며 아랍어를 쓰던 유목민과 정착민을 일컬었습니다. 그런데 7세기에 이슬람이 창시되고 무슬림(=이슬람 신도)이 된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등의 중동 지역을 정복합니다. 이 아랍인들이 지배한 영역이 훗날 아랍 지역이라 불리게 되며, 또한 팔레스타인인을 비롯해 이곳 주민들 모두가 아랍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어째서일까요?


과거에 중동 지역의 역사를 잘 모르던 서구 학자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이 중동 각지에 정착했고, 그래서 기존의 인구를 대체했다는 낭설을 퍼트렸습니다. 하지만 사막이 대부분인 아라비아반도에는 그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지 않았고, 대규모로 이주를 했다는 기록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이나 다른 중동 지역의 주민들이 아랍인이라 불리게 된 까닭은 이들이 지배 집단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4. 유대인의 계보


팔레스타인인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온 토착 집단이자 동시에 아랍적 정체성을 지니게 된 집단인 반면, 유대인들은 다양한 지역에서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으로 발전합니다. 


유대교에 따르면 기원후 70년에 로마가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에서 추방해 세상을 떠는 '이산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로마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서 추방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고, 유대인들이 그 이후로도 팔레스타인에서 살아갔다는 기록은 무수히 많습니다. 최초의 탈무드는 4세기에 팔레스타인 북부에서 작성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인구 규모가 점점 적어집니다. 어째서일까요? 주로 친팔레스타인계 학자들은 유대인들이 지배 집단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했다가 나중에 무슬림으로 개종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고전적인 서구 학설은 유대인들이 개종하지 않고 해외(주로 유럽)로 탈출했다고 봅니다.


유대인들은 소위 이산이 시작되었다고 말해지는 기원후 70년 이전에도 이미 해외에서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사는 유대인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개종자일 것으로 짐작되며, 실제로 개종으로 유대인이 되었다는 여러 기록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개종자이건 아니면 팔레스타인 땅에서 온 이주자이건 관계없이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현대의 유대인들은 거주 지역의 토착민과 유전적으로 강한 유사성을 보입니다. 즉, 팔레스타인 땅이나 아랍 땅에서 사는 유대인은 아랍인들과 유전적으로 유사하고, 유럽에서 사는 유대인들은 유럽인들과, 아프리카에서 사는 유대인들은 아프리카인들과 유전적으로 유사합니다.


일부 친팔레스타인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현대의 유대인은 사실상 과거의 유대인과 혈연적으로 관계가 없다고까지 주장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집단도 기원이 되는 집단과 혈연적으로 일치하는 집단은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아랍인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집단과 뒤섞이면서 탄생-유지된 집단이고요.


유대인들이 '유대인만의' 특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 간의 공통된 유전적 '경향성'은 발견되며 따라서 유대인이라는 집단을 유전적으로도 '느슨하게나마' 정의할 수는 있습니다. 설령 유전적으로 그러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오늘날 스스로를 유대인이라 믿는 집단은 사라지지 않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5.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차이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팔레스타인인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온 토착 집단이지만 이곳을 정복하거나 교류한 여러 외세 집단과 융합되었고 그중에서도 아랍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면,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이라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살아오며 해당 지역의 토착민과 인종적으로 유사한 경향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동(아랍) 지역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외연적으로 구분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반면, 아프리카 출신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과 확연히 구분됩니다.


그렇다면, 현대 유대인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럽 출신의 유대인들은 어떨까요? 구분이 대체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십자군 시기 등에 뿌리내린 유럽인의 피도 강하게 흐르기 때문입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구분하기 쉽다.


자,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글이나 말로만 배운 사람들은 오해하기 쉽지만, 현실에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을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화적 차이'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복장이나 헤어스타일은 팔레스타인인들과 다릅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혹자는 전통 의상을 입은 소수의 유대인을 떠올릴 텐데,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유대인의 스타일도 팔레스타인인과 다릅니다.


저는 10여 년 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각각 1년 반을 살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두 '인종'을 옷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외모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제가 외지인이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직장동료이자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인 친구에게 물었더니 "대체로는 외모로도 구분이 가능하기는 한데 어려운 경우도 있고, 그럴 때는 옷 입는 방식으로 구분한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7. 이스라엘이 오인사살한 이유가 인종이 같아서라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이 오인사살한 이유를 살펴봅시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같은 인종이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그리고 얼굴 형태 따위의 '외모로' 구분은 어렵지만, '의복'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인질들이 피랍 당시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만약 옷을 갈아입혔다면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웠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CNN이 입수한 익명의 군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질 "3명은 셔츠를 입지 않고 깃발을 흔들며 십여 미터 거리 떨어진 빌딩에서 나왔다."

(https://edition.cnn.com/2023/12/16/middleeast/what-we-know-hostages-killed-israel-gaza/index.html)

(추가 : SOS라고 적은 흰 깃발을 휘두르며 나왔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즉,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 나타났다면 육안으로 식별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비무장 상태의, 깃발을 흔들며 나타난 사람을 군인이 사살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인질인지 아닌지를 떠나 이런 사람들을 사살하는 건 국제법적으로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문의 댓글난에는 '전쟁터에서는 원래 피아 식별이 어려운데 무슨 이런 일로 호들갑을 떠냐'는 등의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하마스가 이런 행동을 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역시 저 피에 미친 것들"이라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21세기에도 분쟁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이들처럼 '정의로움에 대한 아무런 기준은 없이' 그저 내 편, 내 이익만 사수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내용 어떠셨나요? 인터넷은 물론이고, 신문이나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양질의 내용이지만 그만큼 이해하기 조금 어려우셨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쉽게 쓰려고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쉬운 내용만 골라서 쓰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슬슬 어렵더라도 더 중요한 내용을 쓰려고 이번 주제를 골라봤는데... 역시나 쉽지 않은 듯합니다. 제 브런치를 검색해서 들어오는 독자 분들은 대체로 가벼운 마음으로 쉬운 글을 찾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3개월 간 총 조회 수가 4천을 넘었는데, 대부분의 검색어가 가자지구 위치 등의 기초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런 분들께서 이런 글을 읽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문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배경지식과 의지가 장벽이 되겠지요.


글을 쓰면서도 이를 고려해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알려드리고 싶은 내용의 반도 적지 못해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브런치가 아닌 신문에 투고해 보다 전문적으로 쓰는 방식도 고려 중입니다.


혹 이번 주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제 책을 찾아봐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이 주제를 제대로 다룬 책은 번역서를 포함해도 국내에서 제 책이 유일합니다.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의 제2장 1절 '유대인만의 팔레스타인은 없었다.(100-124)'를 보시면 됩니다.




제 책은 총 805페이지로 구성되고, 서점 구매가는 25,200원입니다. 분량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지만, 이 주제만을 읽기 위해 책을 매입하기는 꺼려지실 테니 도서관 대여를 추천합니다.


2024년 4월 현재 지역 공공도서관 등 200여 곳에서 대여가 가능합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의 역사를 상세히 다룬 유일한 한국인 저자의 책이니만큼, 빠르든 늦든 어느 도서관에서나 보실 수 있게 될 겁니다. 혹시 좀 더 일찍 보시고 싶으신 분께서는 동네 도서관에 직접 신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약간의 수고로움이 있겠지만,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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