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는가 (1/3)

by 정환빈

1편 : 인종청소와 난민 문제의 진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 왜곡'하면 자연스럽게 일본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역사 왜곡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아마도 대부분은 이런 논란 자체를 모르셨을 겁니다.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봅시다.


가장 대표적인 역사 왜곡으로는 '1948년 전쟁 때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평화롭게 살자고 제안했으나,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랍 국가들의 명령에 따라 국경을 넘어 자발적으로 난민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실일까요?


1947년 11월,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 땅의 56%에서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간 유대 국가 건설을 옹호해 온 시온주의자들(=유대 민족주의자)은 기뻐했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대 국가로 지정된 영토 안에 너무나도 많은 토착민, 즉 아랍인들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만의 민족 국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랍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학살하고 추방했습니다. 이를 인종청소라고 부릅니다. 아래는 관련하여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유대 영토로 지정된 지역에는 50만 명의 유대인과 더불어 40만 명의 아랍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대로 국가를 건설하면 유대 '민족' 국가가 될 수 없었다. 시온주의자들은 곧장 군사 작전에 나서 아랍 마을을 하나둘씩 파괴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CIA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파괴당한 마을의 수가 서른 개에 이르자 미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분할안을 취소하고 신탁통치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경각심을 느낀 시온주의자들은 쐐기를 박기 위해 1948년 4월 1일부터 전격적으로 인종청소에 나섰다.


데이르 야신은 인종청소의 사례로 가장 널리 알려진 아랍 마을이다. 4월 9일 새벽, 시온주의자들은 데이르 야신을 기습 공격했다. 이 마을은 이전부터 유대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고, 최근에는 평화협정까지 체결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150명 내외의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시신을 매장하는 과정을 감독한 유대인 군인은 이렇게 증언했다.


'전적으로 야만적이었다. 몇몇을 제외하면 모든 사망자가 노인과 여성, 어린아이였다. 우리가 본 시신은 모두 부당한 희생자였고 누구도 손에 무기를 쥐고 있지 않았다.'
Daniel McGowan and Matthew C. Hogan, The Saga of the Deir Yassin: Massacre, Revisionism andReality (Geneva: Deir Yassin Remembered, 1999), 10.


다음은 영국 관리가 다른 마을로 도망친 생존자들을 면담하고 보고한 내용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많은 성적 잔학행위가 자행되었다. 많은 여학생이 강간당한 뒤에 도륙당했다. 나이 든 여성들 역시 희롱당했다… 많은 영유아도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귀걸이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귀가 찢긴 여성들도 있었다.'
David Hirst, The Gun and the Olive Branch: The Roots of Violence in the Middle East (London: Faber and Faber, 1977), 126.



당시 시온주의자들이 저지른 인종청소는 팔레스타인인들뿐만 아니라 유대인 군인들과 영국, 유엔, 국제적십자사 등에 의해 널리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줄곧 '아랍 국가들이 명령을 내려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적으로 난민이 되었다'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증거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저명한 팔레스타인인 학자 왈리드 칼리디(Walid Khalidi)는 아랍 국가들의 기록을 열람해 보았으나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뒤이어 비교적 최근에는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학자'인 베니 모리스(Benny Morris)가 기록을 찾아내 보겠다고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이나 무프티[팔레스타인 민족 지도자 아민 후세이니]가 4-5월의 대규모 탈출을 지시하거나 직접적으로 장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대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 대표들이 주민들이 피란길에 오르는 것을 막아서고 적과 맞서 싸우도록 지시했던 사실까지 발견했습니다.

Benny Morris, The Birth of The Palestinian Refugee Problem Revisit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163-308


이러한 역사 왜곡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당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은 75만 명이었고,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를 이어가며 난민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수는 무려 7백만 명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적으로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된 것이니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종청소는 종종 1948년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두둔되곤 합니다. 앞서 말한 친이스라엘 역사가인 베니 모리스 역시 이를 옹호합니다. 그러나 인종청소는 전쟁 발발 이전부터 발생했고,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일례로, 전쟁에서 완연히 승기를 잡은 이후인 1948년 10월 29일에 이스라엘군은 다와이마 마을에서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학살 직후 현장에 도착한 유대인 군인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정복자들은 1차로 80~100명의 남성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을 죽였습니다.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몽둥이로 머리를 박살 내서 죽였습니다. 시체가 없는 집이 없었습니다… 한 지휘관이 공병에게 할머니 두 명을 집 안에 집어넣고... 폭파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공병은 거부했습니다... 지휘관은 휘하의 병사들에게 같은 명령을 내렸고, 악행은 행해졌습니다. 한 군인은 여성을 강간한 후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랑했습니다. 갓난아기를 안고 있던 여성은 군인들이 식사한 자리를 청소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하루이틀 동안 일했으나, 군인들은 끝내 그녀와 갓난아기를 사살했습니다... 더 적은 아랍인이 남을수록 더 좋다는 원칙이 추방과 잔학행위의 정치적 동기였습니다.'

Morris, Birth of Palestinian Refugee, 470-1.


이스라엘은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는가?

- 2편 : 버려진 땅이 아니라면 버려진 땅으로 만들자.

- 3편 : 영국은 유대 국가를 약속한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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