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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Dec 27. 2023

이스라엘은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는가 (1/3)

1편 : 팔레스타인이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땅'이었다고?


이스라엘의 역사 왜곡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왜곡된 역사를 널리 퍼트리는 친이스라엘계의 세력이 너무나도 강대하다 보니 비전문가들에게는 진실보다 거짓이 익숙한 실정입니다.


대표적인 역사 왜곡 사례로는 '1948년 전쟁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은 함께 평화롭게 살자는 유대인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아랍 국가들의 명령에 따라 팔레스타인을 떠나 자발적으로 난민이 되었다.'는 주장을 들 수 있습니다.


1948년 전쟁을 전후로 시온주의자(=유대 민족주의자)들은 도시와 마을에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고 400개가 넘는 마을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이전 글에서 다뤘던 데이르 야신도 그중 하나이고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일시적으로 피란길에 올랐지만 대부분은 어떻게든 마을에 남아 있으려고 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그들을 끌어내 국경 밖으로 직접 옮겼습니다.


당시 시온주의자들이 저지른 끔찍한 짓은 팔레스타인인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군인들과 유엔, 국제적십자사 등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줄곧 '아랍 국가들이 명령을 내려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적으로 난민이 되었다'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랍국가들이 내렸다는 명령'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나 어떤 친이스라엘 학자들도 근거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저명한 팔레스타인인 학자 왈리드 칼리디(Walid Khalidi)는 아랍 국가들의 기록을 열람해 보았으나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뒤이어 비교적 최근에는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학자'인 베니 모리스(Benny Morris)가 기록을 찾아내보겠다고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이나 무프티가 4-5월의 대규모 탈출을 지시하거나 직접적으로 장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대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마을을 떠나지 말고 남아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던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677-8)


이스라엘의 역사 왜곡은 기실 건국 이전부터, 정확히는 유대 국가를 건국하자는 운동이 시작된 1880년대부터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당시 시온주의자들은 유럽 기독교도들의 박해를 피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국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유럽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누가 얼마나 살고 있는지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많은 기독교도 유럽인들이 19세기 동안 팔레스타인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남겼으나 그들의 관심사는 성지라는 '땅'에만 있었기 때문에 땅의 주인(=아랍인)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아랍인에 대한 몇 안 되는 언급도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유럽에서 '버려진 땅'으로 상상되고 있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1881-2년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식민촌(colony)을 건설했습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 수많은 아랍인들이 살고 있고 또 거의 모두가 정착해서 농사를 짓거나 도시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리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오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후로도 팔레스타인을 '버려진 땅'으로 선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대 공동체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을 찾고자 팔레스타인으로 온 건데 오히려 유대인들이 토착민의 땅을 빼앗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왔다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갔는데, 아랍인의 존재를 감춘 시온주의자들의 거짓말은 여러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이 버려진 땅이라는 거짓주장은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에 더 강해졌습니다. 유엔이 인정한 75만여 명의 난민의 귀환권을 거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1880년대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는 버려진 땅이었는데, 그 이후에 유대인이 이룩한 경제적 번영을 보고 아랍인들이 뒤따라 이주해 왔다'는 거짓주장까지도 나오게 됩니다.


이런 거짓주장은 대체로 역사학자가 아닌 비전문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곤 합니다. 친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 유대인들과 영국이 남긴 글들이 무수히 많고, 팔레스타인인들이 토착민이고 새로운 이주자가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계에서는 1880년대에 대략적으로 50만 명의 아랍인과 2만여 명의 유대인이 살았다고 봅니다. '버려진 땅'이라는 주장을 사실상 원천봉쇄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왜곡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79년에 프레드 가테일(Fred M. Gottheil)이라는 중동 전문 경제학자는 이런 인구 규모에 동의하면서도 '버려진 땅'을 옹호하는 논문을 냈습니다. 논문「1875년경의 팔레스타인의 인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당시 인구는 492,675명으로 ‘적고’ 도시화 비율은 28%로 ‘높았습니다’. 도시화 비율이 높으면 농촌에 흩어져 사는 인구가 적으니 빈 땅이 많아지고, 그래서 19세기 중반 유럽 작가들이 서술한 버려진 땅이라는 “묘사는 어느 정도 신뢰하고 받아들이기에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인구 통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버려진 땅이라는 주장을 옹호한 점에 대해 솔직히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본 어떤 책에서도 이런 주장에 대한 비판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연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테일을 비롯해 아마도 다른 어떤 학자들도 제기한 적이 없어 보이는 근본적인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팔레스타인 땅은 흔히 '역사적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역사적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 경계가 정해진 것은 1920년대입니다. 즉, 19세기 유럽인들이 말하는 팔레스타인과 20세기 이후에 사람들이 말하는 팔레스타인은 경계가 다릅니다.


19세기 중반부터 19세기말 사이에 발간된 영국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제7판부터 제11판와 1901-1906년에 유대인이 발간한 최초의 백과사전을 직접 연구한 결과,  19세기 팔레스타인은 '역사적 팔레스타인'의 30-40%를 차지하는 브엘세바 이남의 사막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브엘세바 이남의 사막에는 얼마 안 되는 유목민만 살았으므로, 가테일이 계산한 인구통계를 19세기 팔레스타인 경계에 맞게 적용하면, 인구밀도가 약 30%가량 더 높아지게 됩니다.


여기서 저는 한 번 더 고민했습니다. 19세기 팔레스타인은 '브엘세바 인근에 있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이 여전히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땅을 포함해서 인구밀도를 계산하는 게 올바를까요? 보통은 사막도 인구밀도에 넣을 수 있지만, 가테일과 이스라엘이 말하는 '버려진 땅'은 이런 사막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데 버려진 땅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도 미정착지로 남은 남부 사막지대(약 47%)를 제외한 북부 팔레스타인의 인구밀도를 가테일의 인구통계에 따라 재계산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당 34.7명이 나왔습니다. 이는 유럽의 평균과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산업화된 영국의 인구밀도는 1871년에 121명으로 팔레스타인의 3.5배였지만, 1878년에 스페인의 인구밀도는 오히려 팔레스타인보다 낮은 33명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도시화 비율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스페인에서 1850년경에 5천 명 이상의 도시에서 거주하는 인구비는 22.6%였습니다. 같은 기준을 가테일의 연구결과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팔레스타인의 도시는 16곳에서 9곳으로 줄고 도시화 비율은 23.8%가 되었습니다. 즉, 팔레스타인과 스페인은 도시화 비율이나 인구밀도로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스페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고르게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을 보면서 ‘버려진 땅’을 외쳐댔습니다. 다시 말해서 ‘버려진 땅’은 동양에 대한 왜곡된 관념의 산물이었던 거지요. 그런데도 이스라엘을 옹호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은 '버려진 땅'이었다는 주장은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270-1)


자국의 역사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서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서 100년이 넘게 계속되는 분쟁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잘 보여주지 않나요? 다음으로는 '버려진 땅'에 살고 있는 토착민을 추방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시온주의자들의 기록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는가?

- 2편 : 버려진 땅이 아니라면 버려진 땅으로 만들자.

- 3편 : 영국은 유대 국가를 약속한 적이 없어요.


위 내용은 제가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을 수정요약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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