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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Oct 18. 2023

하마스의 폭탄 테러 선생님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테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테러는 사실 시대에 따라 정의가 다르고 또 형태도 다양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가장 대표적인 유형의 테러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


아마 질문을 듣고 바로 생각난 것은 테러리스트가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을 터트리는 모습이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에서의 '총기 테러'도 워낙 익숙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폭탄 테러'만큼 뇌리에 선명하게 꽂히지는 않네요.


팔레스타인인들은 바로 이 폭탄 테러로 유명합니다. 1967년 이래 계속된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주민들은 1987년부터 인티파다라고 불리는 민중봉기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하마스 등의 단체가 주로 1990년대부터 폭탄 테러를 주된 전술로 활용하기 시작했고요.


폭탄 테러는 다른 어떤 유형의 테러보다 인명 피해를 크게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폭탄을 터트릴 경우 어린아이들마저 희생시키게 되는 극악무도한 방법이지요. 우리나라나 서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팔레스타인에서 바로 이 폭탄 테러를 처음 시작하고 또 널리 활용했던 게 유대인이라는 사실, 아시나요?


오늘날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은 시온주의자라 불리는 유대 민족주의자 집단입니다. 이들은 유대 국가라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극단주의자들이었습니다. 한 예로, 히틀러의 나치당이 1933년에 독일의 정권을 잡았을 때 세계의 수많은 유대인들이 불매운동을 했지만, 시온주의자들은 불매운동에 공식적으로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협정을 맺어 독일에서 추방당하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오게끔 만들었을 정도입니다.


이들이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1881-2년부터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인구는 50만 명, 유대 인구는 2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으려고 유럽에서 유대인의 이주를 도모했고, 1917년부터 시작된 영국강점기에 그 수를 크게 불렸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 유대 인구가 3분의 1에 육박하자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무장투쟁을 동반한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영국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살해했습니다. 1936-7년 동안 92명을 죽였지요. (같은 기간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주로 영국군에 의해서 1천 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그러자 1938년부터 시온주의자들은 강한 반격에 나서는데 이때 채택한 게 폭탄 테러입니다.


1938년 7월, 시온주의자들은 하이파의 시장에서 두 차례 폭탄을 터트려 74명을 죽이고 129명을 부상 입혔습니다. 장소가 시장이었던 만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었지요. 같은 달, 예루살렘에서도 세 차례의 폭탄 테러를 감행해 18명을 죽이고 60명이 다치게 했습니다.


이후로도 시온주의자들은 폭탄 테러를 계속합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46년 7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King David) 호텔 테러입니다. 이 호텔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정부의 청사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시온주의자들이 별관을 통째로 폭파시켜 버립니다. 무려 91명이 죽고 476명이 부상을 입습니다.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폭탄 테러이지요.


사진 : 시온주의자들의 폭탄 테러로 폭파된 킹 데이비드 호텔. (https://en.wikipedia.org/wiki/King_David_Hotel_bombing)


앞서 말했듯이 폭탄 테러는 어린아이마저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정말로 끔찍한 방법입니다. 그런데도 시온주의자들은 어째서 계속해서 폭탄 테러를 저지른 것일까요? 그건 어린아이라고 해서 손속을 봐주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팔레스타인에서 최초로 어린아이를 살해한 것도 시온주의자입니다. 영국 기록에 따르면, 1921년에 어린 여자 아이의 두개골을 도끼로 갈라 버렸습니다. (관련 글 보기)


시온주의자들의 이런 잔악함은 1948년에 이스라엘을 건국할 때 잘 드러납니다. 들은 비유대인이 적은 청정한 '유대' 국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마을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주민들을 학살하거나 추방하는 군사작전을 실행합니다.


1948년 4월에 데이르 야신에서 저지른 만행은 유명합니다. 데이르 야신은 유대인들과 사이가 좋은 마을이었고 평화협정까지 체결했습니다. 그런데도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공격 목표로 지정되었고 150-193명의 주민이 학살당했습니다. 심지어 그중 30명은 아기였습니다. 당시 가까스로 살아남은 12살짜리 아이는 경찰에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우리 가족에게 벽에 기대서 일렬로 줄을 서라고 명령한 다음에 총을 쏘았어요. 전 옆구리에 맞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님 뒤에 숨어 있던 덕분에 살았어요. (4살짜리) 여동생 카드리는 머리에 총을 맞았고, (8살) 여동생 사메는 뺨에, (7살) 남동생 무함마드는 가슴에 맞았어요. 그렇지만 벽에 기대 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요. 아빠랑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 그리고 조카들도요.
(David Hirst. The Gun and the Olive Branch: The Roots of Violence in the Middle East. Faber and Faber: London, 1977. 125.)


시온주의자들은 학살을 자행한 뒤 25여 명의 남성을 포로로 잡아 화물트럭에 싣고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며 개선 행진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 뒤에 모조리 사살했고요. (Ibid)


당시 참살 현장을 본 유대인 정보장교는 "그렇게 많은 시체는 이전까지 본 적이 없었다."는 고백과 함께 150여 구 가량의 시체를 본 것 같다고 증언했습니다. 사건 다음날 현장을 조사한 유대인 작전장교는 집에서 사살당한 여성과 아이들의 시체를 보았고, "나는 많은 전쟁을 경험했지만 데이르 야신의 광경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그날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매장지를 감독한 청년부대 사령관은 "전적으로 야만적이었다. 몇몇을 제외하면 모든 사망자가 노인과 여성, 어린아이였다. 우리가 본 시신은 모두 부당한 희생자였고 누구도 손에 무기를 쥐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 Daniel McGowan and Matthew C. Hogan, The Saga of the Deir Yassin Massacre, Revisionism and Reality, 8-10.)


생존자들을 심문한 영국 관리는 학살과 더불어 강간과 약탈도 자행됐고 보고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많은 성적 잔혹행위가 자행되었다. 많은 여학생이 강간당한 뒤에 도륙당했다. 나이 든 여성들 역시 희롱당했다. 한 어린 소녀는 말 그대로 두 쪽으로 몸이 갈라졌다. 많은 영유아도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 여성들은 팔과 손에 차고 있던 팔찌와 반지를 뺏기고, 귀걸이를 빼내다 귀가 잘린 여성들도 있었다.
(David Hirst. The Gun and the Olive Branch. 126.)


팔레스타인 국제적십자사 대표인 자끄 드 레이니에도 현장을 찾았습니다. 유대인 군인들은 명령을 듣지 않고 숨어 있는 소수의 주민만 죽이고 매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끄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려 하자 군인들은 막아섰습니다. 이를 밀치고 들어가보니 집 안에는 시체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이른바 “청소”를 했던 것이다. 그러고 칼로 “청소”를 마무리한 것 같았다. ... 나는 구석구석을 살피며 시체들을 모두 헤집었다. ... 온기가 남아 있는 작은 발을 발견했다. 그 발 주인은 열 살난 소녀였다. 그녀는 수류탄이 터져 불구가 됐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이런 끔찍한 장면이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Ibid, 127-8)


사진 : 1948년 데이르 야신에서 살해당한 아이를 붙잡고 슬퍼하는 팔레스타인인 (https://english.ahram.org.eg/NewsContentMulti/199144/Multimedia.aspx)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연구한 사람으로서, 오늘날 우리나라나 서구권 국가가 하마스의 잔학한 행동에 대해서 비난할 때마다 솔직히 어질어질합니다. 저 역시 당연히 이번 하마스의 만행에 경악했고 또 비난하지만, 마치 이스라엘이 아무런 죄를 짓지도 않은 선량한 국가이고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마땅하다는 식으로 말하다니요. 이스라엘을 옹호하며 테러를 욕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여러분, 고작 8년을 연구한 제 심정이 이렇습니다. 그러면 팔레스타인인들과 다른 아랍인들, 무슬림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데이르 야신은 서구 국가에서는 지워졌지만, 이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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