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진실
소요는 경찰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당국의 요청으로 야파의 시장을 비롯한 아랍 명사들이 군중을 진정시키고자 나섰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오직 군대가 투입된 이후에야 군중을 해산시킬 수 있었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피해 없이 고요히 지나갔다. 그러나 날이 밝자마자 전날의 복수를 결심한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랍인이 사는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이 문을 열고 나오자 총으로 쏴 죽이고 아기를 다치게 했다. 또 다른 유대인 무리는 아랍인 주택의 문을 부수고 들어와 남성에게 총을 쏘고 폭행했다. 이를 본 어린 딸이 놀라서 아빠를 구하러 달려오자 도끼로 그녀의 머리를 찍어 갈라 버렸다. 남은 가족들도 이어서 폭행을 당했다. 아랍인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영국군은 거리로 나온 군중을 곧장 해산시켰지만,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충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출처: Great Britain, Cmd. 1540, Palestine Disturbances in May 1921: Report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with Correspondence in Relation Thereto, 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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