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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Oct 19. 2023

그래서 가자지구 병원을 폭파시킨 범인은 누구?

BBC가 이스라엘을 믿지 않는 이유

추가된 내용은 붉은색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아래 본문은 BBC의 분석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21일에 AP통신은 가자지구 내에서 발사된 로켓이 추락해 병원이 폭파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연합뉴스 요약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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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오후 7시(현지 시각)에 가자지구의 알아흘리 병원이 폭격을 당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 471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과잉 보복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피해가 발생하자 세계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이스라엘이 아닐 수 있다는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중 하나인 이슬라믹지하드가 발사한 로켓이 오발로 병원에 떨어진 것으로 주장하고, 관련 영상과 음성 녹음 감청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옹호했습니다.


우리 언론은 대체로 아직은 중립을 유지하는 듯하지만, 바이든의 발언 이후로는 아무래도 이스라엘 쪽으로 입장이 기울고 있는 듯해 보입니다. 뉴스 댓글로 확인되는 국민 여론은 하마스나 팔레스타인 단체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주장이 처음부터 강했고요.


이 사건을 가장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언론은 현재 영국의 BBC인 듯합니다. BBC는 여러 군사 전문가들에게 영상 분석을 의뢰하고, 가자지구 현지에 파견된 기자의 육안 확인 등을 거치고 있으며, 관련 분석 내용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겠다고 알렸습니다.

https://www.bbc.com/news/world-middle-east-67144061


한국 시각으로 10월 20일 오전 11시 현재까지 BBC는 범인이 누구인지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영상을 보고 이슬라믹지하드의 오발이 분명하다고 진단한 수많은 천재적인 네티즌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BBC는 연구소와 대학, 관련 기관 20개에 연락하였고 11곳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중 5곳은 입장 표명을 거절했고 6곳만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들 중 셋은 '전형적인' 이스라엘의 공격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 또는 나머지?) 한 전문가는 폭발이 탄두가 아닌 로켓의 연료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고, 다른 한 명은 조심스럽게 동의했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영상 속의 빛이 작동을 멈춘 로켓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즉, 이들은 이스라엘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었습니다.


한 전문가는 이스라엘이 드론을 이용해 기존과는 다른 양상의 폭발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합니다. 다만 영상에서 그런 새로운 유형의 폭발이 관측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BBC는 사건 현장을 검증 중입니다. 폭발이 발생한 곳은 병원의 뜰(courtyard)로 보이며, 폭발로 인해 발생한 구멍(crater)을 찾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작은 구멍을 하나만 찾았고, 이스라엘군은 커다란 구멍이 없는 것이 자국의 미사일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증거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미사일의 잔해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BBC는 이스라엘군이 제시한 감청 자료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이에 따르면 하마스의 두 대원은 이슬라믹 지하드가 발사한 미사일이 병원에 맞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BBC는 독자적으로는 녹음의 진위를 판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이스라엘이 위조했을 가능성도 여지를 열어 두었습니다.


(추가) BBC는 이번 폭격이 발생하기 사흘 전인 14일에  이미 알아흘리 병원 폭격당했다고 쓴 게시글을 소개하고,  로켓 발사 장소에 관해 이스라엘의 진술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폭발을 일으킨 로켓이 어디에서 발사되었는지에 관한 이스라엘의 브리핑에서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변인은 인근의 묘지에서 발사되었다고 말했고 병원 옆에는 (실제로) 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변인이 사용한 지도에 따르면 발사 장소는 (묘지보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BBC는 그곳에서 묘지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BBC는 아직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지만, 이를 읽어본 독자로서는 이스라엘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 네티즌처럼 비전문가가 섣불리 단정을 지을 필요는 없어 보이며, 왜 BBC가 이토록이나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 BBC측의 의문 제기에도 불구하고, AP 통신이 가자지구 내부에서 발사된 로켓의 추락으로 결론 내린 점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의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번 논쟁은 소위 테러집단 vs 이스라엘이라는 민주주의 국가 간의 진실 게임입니다. 많은 국민들은 이 사건이 논쟁거리가 되는 이유조차 이해가 가질 않으실 겁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의 말을 믿어야 하지 않느냐? 어떻게 테러리스트 말을 믿을 수 있냐고 비판을 하시지요. 게다가 하마스는 얼마 전에 인형을 아기로 둔갑시킨 영상을 올렸다가 발각되었지요.


그런데도 BBC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단순히 이 사건이 이번 전쟁의 향방을 가를 정도로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만 아닙니다. 정말로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이전에도 병원과 학교를 폭격한 전적이 많고,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난 사례무수히 많기 때문입니다.


'영국' 언론이라서 BBC는 이를 특히나 잘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로 인해 영국이 피해를 입은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1940년 11월 25일, 팔레스타인의 하이파 항구에서 정박 중이던 배가 갑자기 폭발했습니다. 이 배에는 팔레스타인으로 밀입국하려 한 유대인 난민과 경찰이 타고 있었고, 폭발로 인해 252명이 죽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정부의 전신에 해당하는 유대인 기구는 난민들이 강제송환을 멈추게 하려고 스스로 배를 폭발시킨 것이라고 주장하며 영국에 책임을 돌리고 비난했습니다.


사실은 달랐습니다. 범인은 다름 아닌 유대인 기구의 불법무장단체인 하가나였습니다. 유대인 기구는 유럽에서 박해받는 유대인을 구한다는 명목과 팔레스타인 땅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유럽에서 유대인을 데려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돈을 들여서 데려왔는데 영국이 돌려보내려 하자 배를 폭파시켜 멈추려 한 것이지요. 그러나 계산 착오로 인해 큰 폭발이 발생했고 수많은 동족을 죽였니다. 그러곤 영국에 죄를 뒤집어씌웠죠.


유대인 기구의 거짓말과 범행은 조사를 통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영국은 유대인들과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당시 영국은 아랍인들을 회유하려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행하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의 여론이 안 좋다 보니 포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런 거짓말로 가득합니다. 1880년대에 시온주의자들(=유대 민족주의자)이 유대 국가를 건국하러 팔레스타인으로 처음 이주해 올 때부터 시작되었고요.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들의 야심을 짐작하고 이주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시온주의자들은 '아랍인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주려고 이주해 오는 것이고, 유대 국가를 세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소문은 반유대주의자의 모함이다'고 주장했지요.


레스타인인들은 시온주의자들이 쓴 서적을 직접 읽거나 대화를 통해서 일찍부터 거짓말로 밝혀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거짓 주장은 뻔뻔하게 계속되었고, 1917년에 팔레스타인을 강제점령한 영국이를 '사실'이라고 옹호하며 유대인의 이주를 늘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의 사례도 하나 설명 드리겠습니다. 1955년에 미국의 주도로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 협상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로부터 안보 위협을 겪는다'고 선전해 오던 이스라엘은 평화가 아니라 아랍 영토를 탐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화회담을 거부할 구실을 만들어내려고 가자지구를 침략해 37명을 죽이고 30명을 부상 입혔습니다. 그러곤 이스라엘 영토에 침략한 아랍군을 추격한 끝에 사살한 것이라고 거짓말했지요.


이 작전을 주도한 것은 임한 이스라엘의 제1대 총리 벤구리온과 국방부 장관 모세 다얀이었습니다. 현직 총리인 모세 샤레트는 반대했으나 힘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 작전으로 “우리가 고립되고 안보가 위험하다고 절박하게 외치고 있는 (거짓된) 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대량 학살을 저지르는 피에 굶주린 침략자다.”라고 일기에 고백합니다. (Livia Rokach, "Israeli State Terrorism: An Analysis of the Sharett Diaries," Journal of Palestine Studies 9, no.3 (1980):18-20.)


이 정도만 말씀드려도 BBC가 왜 이토록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지 실감하시겠지요? 혹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나 영상만 보고 범인이 누구인지 단정 지으신 분이 있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신중해지기를 바랍니다.


지성인은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어디까지 아는지 그 '한계'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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