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환빈 Jan 20. 2024

이스라엘은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는가? (3/3)

3편 : 영국은 유대 국가를 약속한 적이 없어요.


이스라엘의 수많은 역사 왜곡 중에서 마지막 주제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영국이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는 거짓말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서 영국이 유대국가를 약속하는 한편 아랍인들의 독립을 인정하는 이중약속을 했고, 그래서 분쟁이 생겼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영국은 단 한 번도 유대 국가를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연구하면 알 수 있는 지극히 기초적인 내용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초보 연구자조차 드물다 보니 왜곡된 역사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영국이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는 주장은 시온주의자들(=유대 민족주의자)이 만들어낸 거짓말입니다.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아랍인들의 반란을 부추기며 독립을 약속했습니다.(후세인-맥마흔 서신협상) 그러나 얼마 후 비밀리에 프랑스와 아랍 지역을 분할해서 나눠 가지기로 합의합니다.(사이크스-피코 협약)


프랑스와의 협상에서 팔레스타인은 특별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두 국가 모두가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땅을 국제관리지구로 설정하고, 일부분만 영국과 프랑스가 직접 통치하기로 했습니다.


영국은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프랑스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게 시온주의자였습니다.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고향' 만들어주기로 약속하고 그 대가로 시온주의자들은 영국팔레스타인을 통치할 있도록 유럽에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처럼 영국이 유대인들에게 약속한 것은 '유대 국가'가 아니라 '유대 민족의 고향(a national home for the Jewish people)'입니다. 그럼 유대 민족의 고향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시온주의자들은 1881-2년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서 유대 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897년부터는 유대 국가라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대신 '유대 민족의 고향'이라는 모호한 목표를 위장막으로 내세웠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는 오스만 제국의 반대였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오스만의 경계를 사지 않기 위해서 유대 국가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팔레스타인에서 식민촌을 세워가며 땅을 조금씩 잠식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아랍인들의 반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의 반대였습니다. 이 무렵에 절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유대 민족'이란 건 없다고 생각했고 '유대 국가'에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도 전 세계 1천만 명의 유대인 중 고작 수만 명만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습니다.


영국이 '유대 국가'가 아닌 '유대 민족의 고향'을 약속한 것 또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방금 말한 유대인들의 반대였습니다. 자국의 유대인들조차 유대 국가를 원치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유대 국가가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랍인들이 저항할 것이 뻔했던 데다가 영국의 목적은 팔레스타인을 직접 통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극소수의 관료만이 유대 국가를 비밀리에 지지했습니다.


1차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인 1917년 말에 영국은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고향'의 건설을 지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밸포어 선언) 그리곤 팔레스타인을 점령해서 통치하기 시작했고, 독립을 요구하는 아랍인들에게는 '유대 민족의 고향'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거절한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독립을 원하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유대인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유혈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영국은 '공정한 중재자'를 자처하며 계속해서 유대인의 이주와 식민촌 건설을 후원했고, 시온주의자들을 아랍인의 저항에 대항할 방패막이로 육성했습니다.


유대 민족의 고향에 대한 강렬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중반까지는 아랍인들의 저항이 약했습니다. 영국이 유대 민족의 고향은 유대 국가가 아니며 나중에 자치권을 인정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랍 '지도자'들은 영국을 믿어 보자며 무력투쟁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 중반에 들어 유대 이주가 급격히 불어나자 아랍 지도자들도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10%에 불과하던 유대 인구는 몇 년 새 30%가 되어버렸고, 이 추세가 유지되면 몇 년 안으로 유대 인구가 과반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유대 국가가 세워져 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마침내 무장투쟁을 선택합니다.


아랍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영국은 무차별학살을 벌이며 진압하는 한편, '유대 민족의 고향'을 계속 건설하기 어려우니 갑자기 팔레스타인의 일부에서 유대 국가를 세우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런데 아랍인들의 저항이 예상보다 더 거세고 유럽에서 전운이 다시 감돌자 1년 만에 유대 국가를 취소해 버립니다. 영국이 '유대 국가'를 공식적으로 운운한 건 이 1년이 유일합니다.


이 무렵에 시온주의자들의 세력은 영국 덕분에 매우 강해져 있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수 만 명의 불법군대를 보유했고, 총과 폭탄 등을 잔뜩 구비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아랍인들의 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시장 등에서 대규모 폭탄 테러를 저질러 여성과 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있었습니다. (관련 글 보기 : 하마스의 폭탄 테러 선생님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영국이 유대 국가를 지지했다가 취소해 버리자 총칼을 영국에 들이밉니다. 곧이어 발발한 2차 대전 때문에 시온주의자들의 테러는 한동안 잠잠했다가 전쟁이 끝나갈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테러를 저지르며 유대 국가를 요구했습니다.


유대 민족의 고향은 유대 국가가 아니라고 대외적으로 천명했던 게 바로 시온주의자들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국이 '유대 민족의 고향'을 건설해 궁극적으로 '유대 국가'를 세워주기로 약속한 것인데 이를 어겼다며 선전했습니다.


1917년에 영국이 유대 민족의 고향을 지지하기로 약속했을 때 유대 국가로 발전할 미래를 염두에 둔 일부 관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국이 '유대 국가'를 만들어주기로 한 것은 아니고, 이 기회를 살려서 스스로 쟁취하라고 '밀실'에서 말했을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다수의 관료와 국민들은 유대 국가를 지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약속을 어겼다는 시온주의자들의 거짓 선전은 먹혀들어갑니다. 이러한 성공의 주요한 이유는 2차 대전 때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입니다.


당시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고, 이에 대한 동정적인 태도와 보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유럽에서 생겨났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미국 학살 정보를 거의 처음부터 습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비밀리에 감춰두고 방치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돕는 모양새가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국가'를 적극 찬성하고 나섭니다.


영국은 아랍인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유대 국가를 찬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의 테러가 심각해지자 이 문제를 유엔에 넘깁니다. 유엔은 조사위원회를 파견했고, 유대 국가를 찬성하는 미국과 소련의 입김 아래 조사단의 다수 위원들은 유대 국가를 탄생시키기로 합의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영국은 유대 국가를 약속하지 않았고 백서를 발표해 이를 수차례 재확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위원회는 그런 공개적인 정책보다는 극소수의 관료들이 밀실에 모여서 유대 민족의 고향이 언젠가 유대 국가로 발전하기를 기대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게 정당하다며 옹호합니다.


유엔총회에서 지지를 얻어내자 이듬해 시온주의자들은 그토록 고대하던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화'에 들어갑니다. 아랍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추방한 후 거기에 유대인들을 집어넣는 것이었죠. 미국도 시온주의자들이 이런 짓까지 저지를 줄은 몰라서 뒤늦게 유대 국가에 반대하는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소련과 영국 등이 거부하고, 시온주의자들은 인종청소를 계속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 계속해서 학살당하고 추방당하자 마침내 인근 아랍 국가들이 마지못해 이들을 구하러 나서기로 합니다.(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그러나 이스라엘군에 패배해 더 많은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기는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영국이 유대 국가가 아닌 유대 민족의 고향을 약속했다는 사실은 팔레스타인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선, 영국이 유대 국가를 약속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분쟁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랍인들이 처음부터 영국의 지배를 거부해 무장투쟁에 나섰을 것이고, 유대인들을 학살했을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시온주의자들의 세력이 매우 약했고 영국도 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했기 때문에 이런 무력 충돌에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 역사의 최고 전문가인 여호수아 포라스도 같은 입장입니다.)


둘째로, 유대 국가의 정당성이 사라지거나 적어도 약화됩니다. 유대 민족의 고향이 유대 국가가 아니라고 한 것은 시온주의자들 자신이었습니다. 물론, 세력을 키우는 시간을 벌기 위해 내세운 위장막이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의 고향'의 진실에 대해 대체로 말하지 않습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언급하는데, 그럴 때면 거짓말이나 사기라고 말하지 않고 '전략적 행동'으로 칭송합니다.


더 나아가 우습고 안타까운 것은 왜 '유대 민족의 고향'이란 표현을 쓰게 됐는지조차 얼버무린다는 점입니다. 당시에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유대 국가에 반대했다는 사실도 숨기고, 심지어 팔레스타인인들이 반대했다는 사실도 숨깁니다. 토착민들이 유대인의 식민화에 찬성했다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 국가라는 목표를 감춘 이유를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셋째로, '유대 민족의 고향'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족적 결집을 늦추었습니다. 정치인들은 영국이 유대 국가를 만들어내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협상에만 매달렸고, 보다 강경한 투쟁을 요구하는 청년층과 대립해 내부 사회의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1930년대 후반에 아랍인 간의 끔찍한 유혈투쟁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넷째로, 민족의 고향이 아닌 유대 국가의 탄생으로 서구 유럽에 대한 아랍권의 분노가 급증했습니다. 애당초 1차 대전 때 독립을 약속했다가 이를 어기고 강제로 지배하는 등 계속해서 거짓말을 반복해 왔고, 마침내 유대 국가까지 만들어 냈으니 아랍인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지요.


이는 오늘날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초가 됩니다. 서구와 결탁해 통치를 이어가는 일부 아랍 정권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아랍인과 무슬림 시민들은 서구 국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말과 행동이 다르고, 거짓말을 반복하고, 유럽인과 비유럽인을 대할 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등 보편상식에 위반되는 행동을 수없이 목격하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로서 아랍인과 무슬림들은 서구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가지는 반감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서구인들은 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아는 게 없기 때문이지요. 오직 진실을 아는 자들만이 오늘날 무슬림과 아랍권의 반응을 이해하며 이들을 지지합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러한 간극의 정점에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재를 아는 기독교도와 서구인들은 대체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반인은 진실을 모르고 정부와 언론이 말해주는 것만 암기하니 그저 이들을 욕하고, (식민 지배를 받아들이고) 테러를 포기하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쟁을 멈추고 생명을 구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는가?

- 1편 : 팔레스타인이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땅'이었다고?

- 2편 : 버려진 땅이 아니라면 버려진 땅으로 만들자.


역사 왜곡으로 점철된 팔레스타인 분쟁의 진실을 알고 싶으신 분께는 제가 8년간 연구해서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를 추천드립니다. 국내 최고의 팔레스타인 역사서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출간한 만큼 전문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읽기가 조금 어렵지만, 이 포스트를 끝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바라마지 않던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지에서 본 팔레스타인 무슬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