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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Jan 09. 2024

이스라엘은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는가? (2/3)

2편 : 버려진 땅이 아니라면 버려진 땅으로 만들자


이전 글에서 팔레스타인을 '버려진 땅'으로 선전해 오는 이스라엘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버려진 땅'에 살고 있는 토착민을 추방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시온주의자들의 기록과 이스라엘이 이를 어떻게 부정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880년대에 팔레스타인이 버려진 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온주의자들(=유대 민족주의자)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바로 팔레스타인을 '버려진 땅으로 만들어 버리기'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히브리어를 일상언어로 소생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엘리에젤 벤예후다(Eliezer Ben-Yehuda/1858-1922)는 1881년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최초의 민족주의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버려진 땅으로 믿었던 이곳에서 다수의 아랍인을 발견하자 걱정에 빠졌다. ... 벤예후다는 팔레스타인을 정복할 계획을 세웠고 1882년 9월에 동료에게 서신으로 알렸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가능한 강해져서 조금씩 은밀히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 조용하게, 은밀하게 해야만 해낼 수 있다. ... 아랍인들이 우리의 목표를 알지 못하도록 위원회는 만들지 않아야 한다. 간첩처럼 은밀하게 행동하고 계속해서 (땅을) 사야 한다.”


한 달 후에 다른 동료와 함께 쓴 편지에서도 같은 계획이 설명된다. “우리는 신뢰하는 ... 사람들을 제외하곤 정보를 노출하지 않도록 규칙을 정했다. ... 목표는 이 땅에 우리 민족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 우리가 강해지고 다수가 되기 전까지 아랍인들의 적대감을 일깨우지 않고 전략적으로 행동하기만 한다면, 땅을 쉽게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274)


시온주의자들은 주로 '땅을 산 후 소작농을 추방시켜 버리는 경제적 정복'을 해결책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군사적 해결책을 장기적 수단으로 고려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A: 우리는 동쪽으로, 트랜스요르단으로 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 운동의 시험이 될 것이다.

B: 말도 안 된다. 유대와 갈릴리 지역으로는 충분치 않은가?

A: 유대와 갈릴리 땅은 아랍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B: 우리가 그들로부터 빼앗으면 된다.

A: 어떻게?

(침묵)

B: 혁명가는 그런 순진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A: 그렇다면 ‘혁명가’께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해보라.

B: 매우 간단하다. 나갈 때까지 괴롭히는 것이다. 그들을 트랜스요르단으로 쫓아버리자.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290)


이외에도 팔레스타인의 토착민을 추방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흔적들은 매우 많습니다. 특히,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실상 지도부가 만장일치로 합의를 이루었고요. 그러면 친이스라엘 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방어할까요? 바로 '은폐 공작'입니다. 친이스라엘 서적에서 이런 기록들은 철저히 함구되고, 시온주의자들은 '평화'를 추구한 것으로 왜곡합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은 테오도르 헤르쯜이란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시온주의를 대중의 정치적 운동으로 발전시킨 사람으로, 이스라엘 건국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래서 세간에는 시온주의를 창시했다고 잘못 알려지기까지 했고요.


헤르쯜은 1895년에 시온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일기를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의 토착민을 추방하려는 의도와, 심지어 군사적 정복도 고려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열강이) 우리에게 할당해 주는 지역에서 온화하게 사유지를 몰수해야만 한다. 가난한 주민들이 우리 땅에서 고용되지 못하게 막는 한편, 인근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만들어 비밀리에 국경 너머로 옮겨 버려야 한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298)


"우리는 키프로스에서 집결해 언젠가 이스라엘 땅으로 넘어가 무력으로 빼앗을 것이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319)


헤르쯜은 토착민의 추방을 단순히 상상만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1901년에 그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유대-오스만 토지회사'를 설립하게 해달라고 오스만 제국에 요청했습니다. 문서 초안에 따르면, 이 토지회사는 영국의 식민지배 기구인 동인도회사와 유사한 완전한 자치권을 갖는 기구로서 독자적인 군대와 징병, 세금 징수 등 실질적으로 정부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토착민을 추방할 권한도 가집니다.


제3조는 토지회사가 예루살렘과 종교유적지를 제외한 모든 토지를 동일한 가치를 지닌 다른 지역의 토지와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그 대가로 교환될 토지의 소유주에게 재정착 비용과 주택 건설 융자를 제공한다고 규정한다. ‘교환’이 강압적이라는 수식어는 없으나, 자유로운 시장 거래로 토지를 매매한 경우에 주어질 만한 보상은 아니므로 강압적인 추방으로 이해된다.


이와 관련하여 7조 B항은 아랍인의 미래를 암시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동 조항에 따르면, 토지회사의 모든 피보호자는 병역의 의무를 지니지만 군인이 되는 것은 유대인뿐이며 외국인은 임시로만 교관이 될 수 있다. 즉, 아랍인은 팔레스타인에서 완전한 자치권을 행사하는 토지회사의 피보호자가 아니거나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구의 절대다수를 구성하는 아랍인들은 토지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모조리 추방되거나 유의미한 인구를 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을 알 수 있다.(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320)


그런데도 친이스라엘 학자들은 오랫동안 헤르쯜의 기록을 철저하게 함구해 왔습니다.


헤르쯜의 일기는 1923년부터 열람이 공개되어 많은 전기 작가들이 연구해서 전기를 썼으나, 경제적 유인책으로 토착민을 추방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1895년 6월의 일기는 무려 반세기가 지난 1974년에 영국의 언론인 데스몬드 스투어트(Desmond Stewart)가 쓴 『테오도르 헤르쯜』에서 처음으로 인용되었다.


스투어트는 1971년에 헤르쯜의 일기에서 이 내용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왜 여태껏 몰랐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했고 동료 언론인 마크 브라함(Mark Braham)에게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브라함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런던으로 건너가 직접 헤르쯜의 일기를 살펴보고 난 후에야 이를 믿게 되었다.


브라함은 유대인 학자 브루노 마모스테인(Bruno Marmorstein)에게 자문을 구했고 마모스테인은 자신도 이를 몰랐다고 고백하며 100명의 유대인 중 99명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함은 영국의 시온주의자 연맹 공보담당에게 문의해 보았으나 역시 몰랐다는 답변을 듣게 되자 그조차도 과소평가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378)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의 정치학 교수인 쉴로모 아비네리(Shlomo Avineri)가 2008년에 쓴 『헤르쯜의 비전(Herzl’s vision)』이란 책이 있습니다. 헤르쯜의 일기와 출판물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쓴 이 전기에서조차도 추방 계획을 담은 일기나 헌장 초안은 일절 언급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생략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기존의 헤르쯜 전기들은 상세하지 못하고 헤르쯜이 “팔레스타인의 아랍 인구가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고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국가”를 추구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하며 이 책에서는 이런 면모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379)


아비네리 교수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료를 고쳐쓰기까지 합니다. 1897년에 헤르쯜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작성해 토지를 매입한 후 소작농을 추방하는 유대인들을 두둔했습니다.


"(이주에) 필요한 토지는 전적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매입될 것이다. 이는 다른 누군가를 ‘추방’하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It cannot be a question of “dispossessing” anyone at all.) 소유권은 사적 권리이며 간섭받을 수 없다.”


그런데 아비네리 교수는 이 3 문장 중 처음과 뒷부분은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가운데 문장만 바꿔서 뜻을 정반대로 만들어버립니다.


(토지는) 전적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매입될 것이다: 누구도 추방되지 않을 것이다.(Nobody will be dispossessed.) 소유권은 사적 권리이며 간섭받을 수 없다.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을 참조해 주세요.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379-81)


이스라엘의 역사 왜곡은 다방면에 걸쳐 있고, 국내외의 많은 유대인들이 지난 100년간 이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같은 유대인 중에서도 누구는 팔레스타인을 옹호하고, 누구는 혐오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런 차이에 있습니다.


무엇이 올바른지를 알지 못하면, 올바른 행동을 취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는가?

- 1편 : 팔레스타인이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땅'이었다고?

- 3편 : 영국은 유대 국가를 약속한 적이 없어요.



위 내용은 제가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을 수정요약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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