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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Jan 21. 2024

제발 언론에 속지 마세요.

분쟁이 계속되는 이유

그동안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이스라엘의 유대인을 비롯해 서구인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라는 점을 강조한 것을 보셨을 겁니다. 오늘은 실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2023년 10월 29일, 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이 되지 않아 뉴욕타임즈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중동지역 보도와 9·11 테러에 관한 칼럼 등으로 세 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기자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글로, 1월 20일 어제 뉴스1에 "이스라엘·하마스, 둘 다 가자지구 통제력 상실"(박재하 기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돼서 올라왔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과거 인도가 파키스탄의 테러를 당했을 때 무력보복을 하지 않음으로써 피해를 줄이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칭송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 그런 참을성을 보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피해자'인 이스라엘이 앞으로 외교적 입지가 약화되고 경제적 손실이 지속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게 될 테니 휴전을 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중립적인 듯한, 심지어 어떤 측면에서는 친팔레스타인처럼 보이는 이 기사는 많은 사실을 왜곡하는 철저히 친이스라엘 입장에서 쓰인 글입니다. 한번 볼까요?


이스라엘이 보복하기도 전에 하마스를 지지하며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학생들과 진보주의자들의 반응에 개인적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유대민족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조국의 어느 지역에서도 자결권이나 자위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선, 오늘날의 이스라엘 영토를 포함한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 민족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 전혀 아닙니다. 유대 민족의 역사관!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기원전 1천 년 무렵부터 기원후 70년까지, 약 1천 년 정도만 팔레스타인에서 살았고 그 후 2천 년 동안 유럽과 중동을 떠도는 이산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절대 팔레스타인 땅을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 실제 역사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핵심만 간단히 말하자면, 유대 국가를 건국하자는 시온주의 운동이 탄생한 19세기말에 유대인들이 '고향'이라고 부른 지역은 자신들과 부모, 선조들이 태어나고 자란 유럽이었습니다. 제가 본 모든 유대인들의 기록 - 언론, 편지, 책, 일기 - 에서 고향은 독일,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등을 의미했습니다.


반면, 팔레스타인 땅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고 이곳을 '고향'으로 부르고 또 외부로부터도 그렇게 인정받은 민족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팔레스타인인입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뺏았고 추방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19세기말부터 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정확히는 시온주의자)입니다.


프리드먼은 학생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자결권이나 자위권을 부정한다고 경악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인 것이죠. 프리드먼의 논리에 따르면 하마스의 테러는 정당한 자결권인 셈이고, 진보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마스가 반대 의견이나 좌파를 결코 용납하지 않고 유대인 국가를 지구상에서 없애는 데 전념해 온 이슬람 무장조직이라는 점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프리드먼은 하마스가 반대 의견이나 좌파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표적인 좌파단체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 1987년 하마스 탄생 이후 계속해서 협력해 왔고 PFLP를 하마스의 동맹으로 보도한 기사도 있습니다.(기사 보기)


하마스가 유대 국가를 지구상에서 없애는 데 전념한다는 말은 사실일 겁니다. 비록 몇 년 전에 하마스는 이스라엘 타도라는 목표를 수정했다고 하지만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왜 유대 국가를 없애려 하는지 그 이유입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없애려는 이유는 프리드먼이 정당하다고 옹호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자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유대인 학살을 겪은 이스라엘 정부가 내린 끔찍한 선택에 대해 동정심을 품고 있다


저 또한 이번에 죽은 1,200명의 유대인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개인적으로 왈리드 시암 주일본 팔레스타인 대사를 만났을 때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하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2만 이상의 대량무차별학살이라는 이스라엘의 끔찍한 선택에 동정심을 품지 않습니다. 1,200명의 사망에 대한 보복으로 이런 동정심이 허용된다면, 지난 1백 년 간 최소 수만 명 최대 수십 만 명이 학살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여도 동정받아 마땅하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다만, 프리드먼이 글을 쓸 당시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는 약 1만 명에 그쳤습니다.)



프리드먼은 이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게 어렵고 경제적 비용이 심각하고, 내외부로부터 정치적 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휴전을 옹호한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휴전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스라엘의 예상된 대응이 그들의 삶과 가족, 가정,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수천 명의 가자지구 주민들은 매일 이스라엘로 일하러 가거나 분리 장벽을 넘어 농산물과 기타 물품을 수출할 수 있었다. 하마스는 이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이 점이 바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퓰리처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프리드먼은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이 신음한다는 점을 전혀 말하지 않고, 오히려 이익을 보고 있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과거 미국의 백인들이 흑인 노예를 채찍질하며 '내가 재워주고 먹여주는 데 왜 똑바로 일하지 않냐'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죠.


나는 하마스의 지도자들이 병원 아래 터널에서 나와 팔레스타인인들과 전 세계 언론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으면 한다. 그리고 왜 이스라엘 어린이와 할머니들의 신체를 훼손하고 납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묻고 싶다. 또한 그들이 가자지구 이웃들의 어린이와 할머니들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말했으면 한다


이스라엘의 악행을 선행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프리드먼은 현실을 짚는 데 실패했습니다.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하마스 지지는 급증했습니다. 하마스의 지도자들도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프리드먼 같은 맹목적 이스라엘 추종자들이 팔레스타인에 직접 와서 보고 왜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 현지에 있는 모든 유엔 기관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지, 왜 이스라엘의 인권단체와 양심고백한 군인들조차 정부를 비판하는지, 왜 식민 지배가 나쁜 것인지, 그리고 유럽계 인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향에서 살 권리를 빼앗기고, 땅과 물과 천연자원을 약탈당하고, 이동의 자유와 무역의 자유, 안보 등 모든 권리를 억압당하는 게 정당한지 1분만이라도 고민해 보는 날이 와야 다시는 이런 학살과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갈등과 휴전의 연속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항상 믿어 왔다. 양측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그 휴전기간 각자 무엇을 했는 가다.
이스라엘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인상적인 사회와 경제를 건설했고 하마스는 거의 모든 자원을 빼앗으며 공격용 땅굴을 건설했다.


끝으로, 프리드먼은 이스라엘이 지난 100년 간 경제사회 발전에 노력한 면 하마스는 군사력 강화에만 신경 썼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이스라엘은 건국 당시 팔레스타인인 인구 75만 명을 내쫓고 그들이 살던 집과 농지 등을 모조리 약탈했습니다. 거기에 미국의 엄청난 원조를 받은 덕에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또 그에 못지않게 '군사력 강화!'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요.


반면, 하마스는 1987년에 탄생했습니다. 이때는 가자지구가 20년 간 이스라엘의 식민지배를 받아 경제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었고,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대거 봉기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제와 억압 속에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하마스와 가자지구 주민들은 무력투쟁으로 독립을 달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경제 발전 대신 투자한 첨단 군사 장비'에 무참하게 학살당했지요.


이처럼, 프리드먼은 기사 내내 역사와 현재를 왜곡하고 또 비뚤어지게 말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지합니다. 그런데도 이 기사를 한글로 번역해 실은 뉴스1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


뉴스1이 야심 차게 소개한 이 기사를 과연 '사실'로 부를 수 있을까요? 팔레스타인에서 분쟁이 계속되는 주요한 이유는 이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자꾸만 사실로 둔갑시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는 기만자들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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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간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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