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었던 문제점은 정착민들을 대하는 것이었어요. 내가 여섯 살이었던 1970년대 초반부터 정착민들이 난민촌을 통과해 지나가는 걸 보면서 자랐죠. 정착촌 남쪽에서 베들레헴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연결되는 주요 도로는 디샤(Deheisheh) 난민촌을 지나거든요. ...
정착민들을 이끄는 사람은 랍비 모세 레빈저(moshe Levinger)였는데, 그는 모든 서안지구 땅을 이스라엘의 일부로 간주한 사람이에요. 그와 정착민들은 난민촌 주위의 토지를 이스라엘이 소유하기를 원했고, 우리의 생활을 비참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냈죠.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버스 여러 대를 타고 찾아와 난민촌 안에서 사방을 향해 실탄을 쏘아댔어요. 그들은 고함을 지르고 돈을 던지며 싸움을 자극했죠. 난민들이 저항해 싸우려고 할 때마다 정착민들은 이스라엘군에 알리고, 군인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골목까지 쫓아와 최루탄을 발사했죠. ...
내가 다니는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학교에 정착민들이 들어와 책상과 문과 창문을 부수던 일도 기억해요. 선생님들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죠. 항상 공포와 불안감을 느꼈어요. 내가 어렸을 적에 이런 일들이 막대한 영향을 끼쳤죠. ... 얼마 후부터 나와 다른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아무 힘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존경심을 잃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1980년대 초반에는 이스라엘군이 난민촌 주위에 담장을 설치했어요. ... 난민촌에는 통행 제한 명령이 내려졌어요. 저녁 7시 안에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입구를 지키는 군인들이 문을 통과시켜 주지 않았거든요. 통행금지가 내려진 이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난민촌을 나갈 수 없었어요. 7시에 입구가 봉쇄된 이후 몇몇 사람들은 병원으로 가지 못해 죽기도 했어요.
14살이 되던 해 생애 처음으로 책가방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전까지는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 비닐봉지에다 교과서를 넣어 다녔어요. 마침내 책가방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어요. ... 등굣길에 여섯 명의 군인과 무장한 정착민 한 명이 저를 불러 세웠어요. 정착민은 저를 발로 차고 뺨을 때리더니 가방을 뺏어 배수구에 던졌죠. 내가 가방을 꺼내자, 군인들이 나를 구타하고 가방을 다시 배수구에 집어던졌어요. ... 그들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어요. 난민촌의 난민들은 돌을 던지며 정착민들에게 보복했어요. 나는 10살 때부터 던지기 시작했죠.
-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7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