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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Dec 11. 2023

전쟁이 한창인데, 식민촌을 확장한다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아니라 식민촌이 올바른 용어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 짓고 있다는 '정착촌'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각에서는 점령촌이라고도 부르지요.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한창인 지금,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또다시 유대인 이주자를 위한 5,700여 채의 집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https://apnews.com/article/israel-palestinians-settlements-west-bank-biden-49c4788ffc5f5ee41d5c48365ac5395b


오늘은 이 정착촌과 관련해 가장 기본적인 문제, 즉 '용어'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정착촌(settlement)은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정착해서 지은 거주지입니다. 그런데 자기 집단의 영역, 즉 국가의 영토 안이 아니라 외부에 지을 경우에는 식민촌(colony)으로 부릅니다. 고대 로마나 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만든 식민촌/식민지(둘 다 영어로는 colony)가 전형적이지요.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짓는 정착촌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유럽의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시온주의 운동을 시작한 것은 1881-2년부터입니다. 이때 팔레스타인의 아랍 인구는 50만 명인데 반해 유대인들은 2만 명 내외였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현지 유대인들은 아랍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거나 아랍 문화를 받아들여 유럽 유대인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래서 유럽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지은 마을을 '식민촌'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식민촌이 그 자체로 나쁜 뜻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유럽인들의 사고관에서는 말이지요. 유대인들은 나중에 정착촌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나,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는 대체로 식민촌이라고 불렸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지배한 영국 역시도 식민촌으로 불렀고요.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식민촌이란 용어는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대대적인 인종청소로 인해 이스라엘의 모든 국토가 아랍인 땅에서 유대인 땅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식민촌이 그냥 평범한 마을이나 도시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식민촌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67년에 서안과 가자지구를 선제공격해 점령한 다음부터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포함한 점령지 곳곳에서 식민촌을 지었습니다.


식민촌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건설되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토지 소유권을 강탈해서 국가 주도로 식민촌을 짓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총기로 무장한 유대인 테러리스트들이 도시나 마을, 농지 등을 무력으로 강탈한 후, 정부가 사후적으로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는 방식입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화했던 전형적인 방법이지요.


이스라엘은 서안과 가자지구를 자국 영토로 병합하지는 않았습니다. 국제사회의 반대와 아랍 주민들의 반발, 그리고 아랍인의 인구 비율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서안과 가자에서 지은 유대인 이주자 주거지는 정착촌이 아니라 식민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정착촌으로 규정했고, 서구 국가들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이 국가 지위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더해 언젠가는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를 병합하고, 1948년에 그랬듯이 또다시 주민들을 청소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2012년팔레스타인은 유엔총회에서 '국가'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과거에 지은, 그리고 그 이후에 지은 서안지구 내 모든 유대인 정착촌은 명명백백하게 식민촌이 되었습니다.(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면서 그곳에 지은 식민촌을 철수시켰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이를 반영해 식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국내에 없습니다.


제가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에서도 고민과 고민 끝에 1967년 이후에 이스라엘이 지은 식민촌은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서의 '정착촌(Settlement, not settlement)'으로 표기했습니다. 관련해 주석에다 설명을 달았고요. (하필 이 부분이 글의 서론이자 여행기인 1장에서 나오는 바람에... 독자들이 처음부터 어렵게 느낄까봐 본문에서 다루지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놀라울 정도로 숨겨져 있습니다. 언론의 무지 또는 친이스라엘주의로 인해 대중에 알리지 않은 탓이지요. 우리 국민들이 현실을 올바르게 인지하려면, 우선 올바른 용어부터 정립해 나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식민촌'을 확장하는 이스라엘, 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지 않나요?


관련글 더 보기

- 팔레스타인 여행기 (역사와 현재에 대한 개괄적 설명)

- 유대인 식민촌 주민들의 만행과 테러

- 하마스와 가자지구의 주민들이 싸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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