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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Dec 06. 2023

하마스의 성폭력에 대한 증언들, 어떻게 봐야 할까?

'누가'가 아닌 '무엇'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할 때

지난번 글에서 하마스의 영유아 참수가 순전히 거짓말, 그것도 기획성이 대단히 짙은 사기극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최근 며칠간 이슈에 오른 하마스의 성폭력 증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10월 7일, 약 1,200명의 이스라엘인과 외국인들이 하마스에게 학살당했습니다. 이중 여성 사망자들이 죽기 전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마스는 거짓이라고 항변합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번 글은 '이 문제를 제가 어떻게 고민하는지 그 과정'을 잘 봐주시길 바랍니다.


1. 먼저 누구의 말이 진실일지를 고민해야겠지요? 아직까지는 성폭행에 대한 '증거물'이 나오지 않은 듯합니다. 이 점이 꽤 의아한데, 아시다시피 성폭행은 증거물을 반드시 남깁니다. 그런데 어떤 기사에서도 증거물에 대한 언급은 찾지 못했고(시체 훼손이 심해서 확인이 어렵다고만 말함) 지금 도마에 오른 것은 '증언'뿐입니다. 다만, 앞으로 심층보도가 나올 가능성은 있습니다.


2. 두 번째로 고민할 점은 시기입니다. 성폭행은 분노를 자아냅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스라엘이 '보복'전쟁을 시작할 때 유용한 선전 도구로 쓰고 싶었을 법합니다. 영유아 참수라는 거짓말은 파괴력은 크지만 후폭풍이 있으니, 이 편이 더 유용한 도구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도 무려 2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시체에서 성폭행 흔적을 찾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린 것일까요. (생존자의 증언은 사건 당시의 트라우마 때문에 늦게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은 가자지구의 식수 수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비판이 큰 터널 수몰 작전이 실행되기 직전이지요.


3. 세 번째로, 성폭행 피해 당사자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고 하며 지금 나오는 '증언'은 이 극소수의 피해 생존자가 아니라 소리를 들었다는 등의 현장 목격자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증거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로 봐서는 아직 대규모 부검이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므로, '수많은' 여성이 성폭행당했다는 주장은 과장되거나 조작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폭행 추정 규모가 수치로 얘기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자, 여기까지가 누구나 상식으로 판단이 가능한 선에서의 고민입니다. 그럼 이제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조금 더 더해서 분석을 해보도록 합시다.


4. 이-팔 분쟁에서 강간은 역사적으로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타 전쟁이나 다른 지역의 분쟁에서처럼 흔한 일은 절대로 아닙니다. 무슬림 하면 강간의 대마왕 같은 이미지인데, 의외지요?


그래도 가장 먼저 성폭력을 저지른 건 팔레스타인인들입니다. 1920년 나비 무사 소요나 1929년 서쪽벽 소요 사건 등에서 수 건, 어쩌면 십여 건까지의 강간 사례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례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역사 연구에서 성폭행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분위기기 때문에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도 중요치 않아서 거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꽤 큽니다. 그렇다고 해도 관심을 줄 만큼 많지는 않았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성폭행이 이-팔 분쟁에서 다시 크게 돋보이는 시점은 1948년 데이르 야신의 학살입니다. 당시 시온주의자들은 30명의 아기를 비롯해 200명 가까운 주민들을 죽였는데, 이때 많은 젊은 여성을 성폭행한 뒤 학살했다는 영국의 기록이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많은 성적 잔학행위가 자행되었다. 많은 여학생이 강간당한 뒤에 도륙당했다. 나이 든 여성들 역시 희롱당했다. 한 어린 소녀는 말 그대로 두 쪽으로 몸이 갈라졌다. 많은 영유아도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 여성들은 팔과 손에 차고 있던 팔찌와 반지를 뺏기고, 귀걸이를 빼내다 귀가 잘린 여성들도 있었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667)


이외에도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로 일어난 전투와 정복 후에 어느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인을 강간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는 내부 증언이 있고, 또 어린 소녀가 수십 일간 이스라엘군 캠프에 감금당한 일 등 성폭행이 의심되는 여러 정황이 있습니다.(Ilan pappe, Ethnic Cleansing) 그러나 데이르 야신을 제외하면 강간이 큰 규모나 구체적으로 보고된 사례는 없는 듯합니다.


1948년 이후는 제가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언급을 삼가겠습니다만, 제가 읽은 책들 중에서는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성폭행 사례가 없거나 기억에 남은 게 없습니다.


자, 이렇게 역사까지 함께 보시니 어떤가요? 하마스가 성폭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확신이 좀 강하게 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성폭행이 있었을 가능성이 꽤 높고, 다만 그 규모가 지금 거론되는 것처럼 많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5. 하마스 대원들은 이번 침공 전을 수행하면서 전투마약이라 불리는 캡타곤을 복용했습니다. 전 마약에 대해 모르지만, 분명 흥분제일 테니 성적 충동도 강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검색해 보니 정말로 그런 효과도 있다고 하네요.


하마스 대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군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인들처럼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입대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과 가족을 지킨다는 사명으로" 정말로 죽을 각오를 하고 입대합니다. 그리고 하마스는 30여 년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이스라엘에 성공적으로 피해를 입힌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은 달랐죠. 죽을 각오로 기습전을 실행했는데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면 마약까지 복용한 군인들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우리는 그 선례를 이스라엘의 1948년 인종청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데이르 야신은 시온주의자(=유대 민족주의자)에 의해 최초로 파괴당한 마을은 아니지만, 최초로 철저하게 청소된 마을입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자신들과 평화협정을 맺어서 방심하고 있는 주민들을 손쉽게 정복했고, 무차별 학살을 피해 도망가는 주민들을 보며 승리에 심취했습니다. 그래서 성폭행은 물론이고, 포로로 잡은 주민 20여 명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서 개선행진을 벌인 후 죽이는 광기를 보입니다. 이런 게 전쟁입니다. 하마스 대원들이라고 이런 유혹을 느끼지 못했을까요? 성폭행은 자신이 강자이고 상대가 약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마약까지 복용한 상황에서 이런 유혹을 이겨내는 게 오히려 놀라운 일이겠지요.


6. 그런데도 하마스가 성폭행을 대규모로 저지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약자였기 때문입니다. 1948년에 데이르 야신이나 다른 인종청소한 마을에서 이스라엘군이 느낄 수 있던 안정감을 하마스 대원들은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존자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계속해서 수색하고, 갑작스럽게 잡아들인 수많은 포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리고 언제 마을을 떠나서 가자지구로 복귀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을 것입니다. 성폭행은 승자가 뒷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저지르는 것이지 이토록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 여기까지가 사실 관계에 대한 제 나름의 분석이었습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제가 말한 것들은 '사실'이 아니라 상식에 근거한 '추정'입니다. 세상일이 상식대로 굴러가지만은 않습니다. 하마스 대원들이 대규모로 성폭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고, 반대로 마약의 유혹을 이겨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보다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보통의 사례라면 기다리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다릅니다. 우선, 이스라엘은 정말로 국가적 신뢰도가 낮은 나라입니다. 건국 이전부터 거짓말을 주된 전술로 삼으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았고, 건국 이후에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사실관계를 실제로 확인하고 정확하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더라도 친팔레스타인계는 이를 믿지 않을 것이고 BBC 등 소위 '중립'적 언론들도 불신할 것입니다. 그러니 기다린다고 의혹이 해소되지는 않으며 '확실해질 때'는 영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우리가 '하마스'에 집중하지 말고 '성폭행'에 집중하면 된다고 봅니다. 성폭행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니 성폭행이 있었다면 비판한다는 원칙을 바로 세우면 됩니다. 하마스의 성폭행 증언들이 나왔다고요? 네, 그럼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하마스가 정말로 강간을 했다면 그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나는 성폭행규탄한다. 나아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가 끝나기를 바란다."


하마스의 민간인 살해, 특히 어린이 학살은 이번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런데 하마스를 열심히 비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먼저 어린이를 학살하고 또 백 배 이상으로 많이 학살했다는 사실에는 침묵의 서약을 하지요. 이런 사람들이 바로 분쟁을 확시키고 심화시키는 분쟁의 숨은 주역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전반적으로 피해자의 입장이라는 이유를 들어 '소소한' 잘못을 감싸려고만 하는, 그래서 분쟁을 되려 키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마스는,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이나 한국인보다 특별히 나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습니다. 독일인이 저지른 대량학살, 유대인들도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저지른 어린이 대량학살, 하마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편을 세워서' 입장을 정하지 말고 '행동'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인종청소와 대량학살이 잘못되었다고요? 그럼 마찬가지로 1948년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도 비판하면 됩니다. 이번 하마스의 강간을 비판한다고요? 네, 그럼 1948년 데이르 야신에서의 강간도 비판하면 됩니다. 그게 바로 분쟁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추가 : 최근 하마스는 성폭행이 다른 무장단체 대원들에 의해서 행해졌을지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하마스'라고 포괄적으로 말한 것은, 하마스는 단순히 알카삼 여단으로 구성된 군사 기구가 아니라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행정기구이며 따라서 가자지구 내 다른 무장단체/정당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추가 : 하마스 성폭력 UN 보고서를 직접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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