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환빈 Mar 07. 2024

하마스 성폭력 UN 보고서를 직접 읽었습니다.

우리 언론은 언제쯤 이런 노력을 기울일까

예전에 하마스 성폭력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걸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작성한 글에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마스의 성폭력에 대한 증언들, 어떻게 봐야 할까?)


"하마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성적 충동을 강화하는 전투약물을 복용한 점 등 제반 상황에서 성폭행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목격자 증언만 있고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거의 모든 여성 사망자가 성폭행을 당했을 거라는 식의 주장은 매우 과장되었고, 실제로는 소수의 사례에 그쳤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식수 수질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터널 침수 수몰 작전을 시행하기에 앞서 비판을 줄이려고 성폭행을 뒤늦게 과장해서 이슈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바닷물을 끌어와 터널을 침수시켰고 서구 국가들의 반대는 미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폭행 규탄 직후 유엔에서 별도 조사단을 꾸려서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그 결과가 3월 4일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5일부터 외신을 요약해 간결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핵심을 짚어서 보도한 사례가 안 나오길래 제가 직접 보고서를 읽고 뒤늦게나마 알려드립니다.




우리 언론 보도 등에서 이미 확인하셨겠지만, UN 조사단은 하마스 등의 팔레스타인 단체들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성폭력이 있었다 없었다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럴 거면 유엔은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피해자있었는지 니다. 민간인 대량학살이나 식수를 크게 오염시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집단 처벌을 내리는 터널 수몰 작전 등과 같은 잔혹한 행위가 '보복성'으로 인정받을 있는지를 따져야 하니까요.


* 수몰 작전 이전에도 가자의 식수/생활수 오염 문제는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봉쇄가 된 이래로 식수원이 지하수 밖에 없다 보니  지하수가 고갈되고 자리에 바닷물이 들어와 섞였습니다. 제가 5성 호텔에서 묶은 적이 있는데 양치할 때 짠맛이 느껴지고 샤워를 하고 나니 피부가 따끔거렸습니다. 말 그대로 바닷물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무려 10년 전이니 지금은 그냥 바닷물 마시는 거랑 다를 바 없는 수준이겠죠....


아마 기사 보도를 읽었을 당시에는 성폭력이 많았다는 인상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수량화'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애초에 UN조사단이 그런 내용을 요약문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독자가 성폭력 사례가 많았다는 인상을 받는 것은 여러 사례가 언급되면서 인지적 착오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럼 실제로 얼마나 많은 성폭행이 있었을까요? 예상대로 소수의 사례에 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부터 이런 판단의 근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조사단은 시신을 직접 확인하거나 생존자로부터 증언을 듣지 못했습니다. 시신을 조사한 법의학 증거도 제한적이고 전문적이지 못해서 대체로 신용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5,000개의 사진과 총 50시간의 녹화비디오, 그리고 34명의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성폭행이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만 내렸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러한 판단의 핵심 증거로 내세운 건 단 한 가지입니다. 하반신이 탈의된 시신의 증언/사진/영상입니다. 긴박한 전쟁 중이라는 맥락을 고려하면, 하반신이 탈의된 여성의 시신성폭력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는 합당한 증거일 겁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확언은 못하지만, 그 외의 이유로 하반신이 탈의되는 경우를 상상하지 못하겠습니다.


*단, 주의하세요! 성폭력은 강간과 같은 성폭행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성적 학대를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유엔이 밝혀낸 강간 사례는 5건에 그칩니다. 그리고 이런 성폭력은 남자도 피해자에 함께 집계되고 있습니다. 성기 폭행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유엔조사단은 이러한 사진/영상/증언 속에서 발견된 하반신 탈의 여성 시신의 총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수량적 증거가 될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은 까닭은 시신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중복되는 사례가 매우 많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제 보고서에서 구체적으로 수량이 언급되는 방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조사단은 보고서에서 지역별로 분석을 남겼습니다.


1. 노바 축제 장소와 인근 : 강간과 집단 강간의 복수의 사건(multiple incidents)이 있었다고 볼 근거가 있다고 말함. 그 이유는

- Credible information was obtained regarding multiple incidents whereby victims were subjected to rape and then killed (복수의 강간 발생을 신뢰할 수 있는 정보)

-There are further accounts of individuals who witnessed at least two incidents of rape of corpses of women. (두 건 이상 시신 강간 목격)

-Other credible sources at the Nova music festival site described seeing multiple murdered individuals, mostly women, whose bodies were found naked from the waist down, some totally naked (복수 시신 하반신 탈의)


2. 232번 도로에서는 "수많은" 시신(numerous bodies)이 발견되었다고 말함. 그러나 성폭력에 대해서는 종합적 의견에서 수량 표현 없이 그저 발생했을 근거가 있다고만 말합니다. 구체적 사건으로는

- witness accounts describes an incident involving the rape of two women (두 명 강간 목격)/ 그 외 여러 증언에서는 성폭력 근거를 찾지 못했고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함.

- multiple bodies of women and a few men were found totally or partially naked or with their clothes torn, including some bound and/or attached to structures, which – though circumstantial – may be indicative of some forms of sexual violence (복수의 시신 탈의)


3. 레임 집단농장(Kibbutz Re’im)

-  rape of a woman (한 명 강간)

- the bodies of at least two women were found inside a home, on the floor and naked (적어도 두 명 시신 탈의)

- 다른 증언 있으나 검증 안되고 추가 조사 필요하다.


4. 집단농장 베에리(Kibbutz Be’eri)

성폭력 증언이 언론에 가장 많이 나온 장소. 그런데 조사단이 찾아가자 증인들이 잘 기억 못 하겠다는 등 태도 변하고 일부는 언론에서 했던 발언을 철회함. 조사단 검증으로 과거 매체 보도된 증언 중 최소 2건은 거짓으로 밝혀짐.

- 거짓으로 밝혀진 증언 하나는 임신한 여성이 살해당하기 전에 자궁이 도려졌고 태아를 찔러 죽였다고 보도되어 이스라엘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낸 사건임.

- 탈의된 시신들이 있어서 성폭행 가능성 있음 (bodies 외엔 수량 표현 없음)

- 종합적으로 볼 때, 이곳에서 성폭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음. Overall, the mission team was unable to establish whether sexual violence occurred in kibbutz Be’eri.


5. 크파르 아자 집단농장(Kibbutz Kfar Aza)

수량 표현 없음

- reported discovering bodies of women naked(탈의된 시신들)


6. 나할 오즈 군사 기지(Nahal Oz Military Base)

- 이곳에서 촬영된 41명의 군인 시신 사진이 있는데, 그중 시신이 손상되지 않 여성 군인 9명의 사진에는 성폭력 증거로 볼 만한 게 없음.


7. 가자지구

- 풀려난 인질의 가족 증언으로 몇몇(some women) 성폭력 사례 확인됨.


8. 그 외 불특정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과 영상에서 성폭력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는 찾지 못함. 옷이 훼손되어 가슴/성기를 포함하는 신체부위가 노출된 시신은 20건 이상 있음. 이는 남자를 포함하며, 탈의된 시신이 아니라 성폭력 가능성이 낮음.




유엔 조사단이 내린 성폭력 사례는 이게 전부입니다. 굉장히 적은 걸 알 수 있죠? 사실 조사단이 고작 2주 반 동안 연구한 거라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근거가 없어 보인다고 결론 내린 증언이나 사진 분석도 시간을 들이면 다른 근거를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스라엘 정부와 언론이 대대적으로 모아놓았던 증언과 자료를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증거는 거의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럼 대체 얼마나 많은 성폭력 사건이 있었을까요? 보고서에는 피해자 수나 폭력의 유형과 강도에 대해서 결론 내리지 못했다고 나옵니다. 유엔도 조심스러워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제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서 말씀드리는 게 전반적인 이해에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감히 말해봅니다.


유엔 조사단의 수량 표현 방식을 고려하면, 성폭력 사례가 10건은 넘, 아무리 많더라도 50건 미만을 찾아낸 듯합니다. 여기에는 소수의 남성 피해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간은 5건 이상이 확인되었으나, 이게 전부라기보다는 검증된 사례가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다만 이전 글에서 설명드렸다시피 하마스 등의 대원들은 성적 유희를 즐길 상황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하반신 탈의된 여성이 강간 없이 성적 학대/고문만 겪었을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추측합니다.


주의할 점은 시신이 훼손되어 조사단이 증거를 찾지 못한 사례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훼손된 시신의 규모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단이 찾은 사례가 아니라 실제 성폭력 피해자의 수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할 오즈 군사 기지(Nahal Oz Military Base)에서처럼 시신의 사진이 다수 촬영된 장소에서 어떤 성폭력 증거도 나오지 않은 점이나 대다수의 증언이 검증되지 않고 소수는 거짓말로 밝혀진 점 등을 고려하면 큰 차이는 없을 듯하며, 정말로 아무리 많게 잡아도 두 자릿수를 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거짓선전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독립을 옹호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쉬쉬하기보다는 더 소리를 높이고 자세히 알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 목표는 '모든 사람'이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에 대한 애도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은 애도가 유대인 사망자들에게도 향해야 하고 이들이 겪은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재발을 방지하지요.


역사와 가자지구의 현 상황을 안다면, 하마스의 무장투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무장투쟁의 정당성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다만, 팔레스타인도 잘못했으니 이스라엘 잘못도 넘어가도 된다는 식의 물타기는 피해야 합니다. 1,200명의 희생자와 3만 명의 희생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마스는 이유 없이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150년 가까이 계속된 유대인 식민주의와, 1967년 이래 계속된 서안과 가자지구의 식민 지배, 2007년 이래 계속된 봉쇄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유엔은 이번 성폭력 사건을 모두 "분쟁과 연관된 성폭력"(conflict-realted sexual violence)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성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은 뭘까요? 하나밖에 없겠지요. 바로 분쟁을 멈추는 것 말입니다.


추가 : 유엔은 이번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지른 성폭력 사례도 조사했고 이스라엘 역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여기서 같이 다루면 팔레스타인 측의 잘못이 덮일 것 같아서 피하고자 합니다.


추가 : 2개월 간 인질로 잡혀 있던 중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하마스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피해상황에 대한 증언이 자세해서 사실로 보인다고 합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하마스가 조직적으로 성폭행을 저지른 게 아니라, 한 감시원이 비밀리에 한 차례 강간했다고 합니다. 언론에서는 이걸 하마스가 성폭행 했다고 보도 중인데 이렇게 표현하면 오보입니다. 10월 7일 기습공격 당시처럼 집단적으로 가담한 정황이 나와야 하마스가 성폭행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피해자는 스스로 단 한 명만 일탈적으로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824982?cds=news_edit



매거진의 이전글 구호품 학살 소식을 들으며 떠올린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