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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Mar 12. 2024

라마단에 왜 전쟁을 걱정할까?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의 라마단

2024년 라마단이 밝았습니다. 올해 라마단은 가자지구에서의 전쟁 때문에 유난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요. 이번 글에서는 라마단과 관련된 잘못된 상식을 짚어보고 팔레스타인에서 충돌이 염려되는 이유를 들여다봅시다.


다들, 라마단이 뭐 하는 날인지 조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슬람교도, 즉 무슬림들이 한 달간 단식을 하는 날로 유명하지요. 그런데 단식은 사실 라마단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그저 오랫동안 단식하는 게 힘든 일이다 보니 널리 알려졌을 뿐이지요. 단,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단식을 하는 건 아닙니다. 일출과 일몰 사이에만입니다.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종교기관에서 매일 육안으로 해를 관찰해서 금식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방송을 해줍니다.


흥미로운 듯하면서도 뭔가 원시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아니, 그냥 대충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을 테고요. 실제로 단식 시작 시간이 매일매일 달라지고 혼자서는 예측이 어려우니, 기상청의 예보를 담은 라마단 전용 앱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무슬림들이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전통적 규칙을 지키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라마단의 본질이 그러한 편의주의를 비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마단은 물질주의를 멀리하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의식입니다. 모든 역사적 종교는 사회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도구로서 출발했습니다. 재화의 불균등한 소유는 언제나 공동체의 불화를 조성했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나 종교는 물질을 멀리하도록 가르치고 정신적 가치를 숭상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교는 평소에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를 상당히 제한하고 24시간 동안의 금식일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단식을 하는 종파가 있고 불교는 육식을 멀리하고요.


이슬람도 같은 이유에서 라마단을 도입했고, 라마단 기간 동안에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도록 '사회적 기부'를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실제로 많은 무슬림들이 기부를 실천하는 것을 팔레스타인에서 직접 보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나눔의 날/달이라고 이름 붙여 기부를 장려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공동체 의식이 무슬림만 못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라마단 기간에 기부가 활발해지는 까닭은 무슬림들이 물질적 행복을 멀리하는 생활을 반강제로나마 '실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굶으면서 빈곤층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단식은 대표적인 예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단식 시간에는 음식과 물뿐만 아니라, 커피와 차, 담배 같은 각종 기호품도 금지되고 성교행위도 금지됩니다. 라마단 동안에 배고픈 게 제일 힘들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흡연자나 커피애호가들은 금식 기간이 끝나면 담배랑 커피부터 찾습니다. 고작 10-13시간 정도만 참을 뿐이니 중독 치료가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유혹을 인내하는 데서 삶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자기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옵니다.


물론,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게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해봅니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하는 것 등이 모두 일종의 물질적 유혹을 인내하는 거고, 이를 성공했을 때 만족감을 느낍니다. 라마단은 그저 이런 평범한 일상을 제도화해서 공동체 구성원 전부가 동시에 경험하게 만들고, 정신적 가치가 삶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진리를 집단적으로 일깨워줄 뿐입니다.


바로 점을 이해하셔야 라마단의 본질을 있습니다. 무슬림에게 라마단은 고행의 달이 아니라 축제입니다. 매일 단식을 성공적으로 끝낸 사람들은 즐겁게 웃고 떠들며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라마단의 밤은 어느 때보다도 밝습니다.


사진 :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과 라말라에서 찍은 라마단의 밤 사진들.


라마단에는 또 다른 본질적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신앙생활의 강조'입니다. 물질적 행복을 멀리하면 사람은 정신적 가치를 찾기 마련이고, 무슬림들에게 그 끝은 바로 이슬람입니다. 라마단 기간에 종교 지도자들은 기도를 빼먹지 말라고 강조하고, 꾸란을 낭송하고 그 정신을 기리도록 요구합니다.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휴전협정이 성사되지 못하면서 라마단 기간에 큰 충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뉴스에서 이미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 정작 '왜 라마단'에 충돌이 크게 발생한다는 건지 이해를 못 하고 그냥 넘기셨을 겁니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중시되는 라마단에는 많은 무슬림들이 모스크로 모이게 되고 자연히 '집단행동'이 가능하게 됩니다. 특히 금요일이 관건입니다. 이슬람은 금요 기도와 설교를 성스럽게 보기 때문에, 라마단의 금요일은 가장 많은 수의 무슬림들이 모스크로 모이는 날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종교의 기본적인 목적은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입니다. 그러니 팔레스타인의 무슬림들은 모스크에 모여 앉아 당연히 이런 류의 설교를 듣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은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이고, 우리는 언제나 아랍 유대인들과 이웃하며 화목하게 잘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에 살고 있던 유럽 유대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 유대 국가를 세우겠다고 쳐들어오고, 우리를 내쫓아냈다. 우리의 권리는 유럽 유대인 편에 선 기독교 국가들에 의해 무참히 박살 났고,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난민으로 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서안과 가자지구의 땅과 물, 자원을 약탈해 가고 주민들을 학대하는 데도 기독교 국가들은 침묵한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평화 운운하는 건 오직 우리가 유대인들에게 저항할 때뿐이다.


여러분이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면 저런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 거 같습니까. 그것도 단식을 하고 삶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난 직후에요. 오늘날 팔레스타인 주민의 대다수는 태어날 때부터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족과 친척, 친구를 때리고 죽이는 걸 목격하고, 이웃 마을과 도시로 갈 때면 검문을 받고 그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내가 고향에서 살아가는 매 순간을 이스라엘과 기독교 국가들의 '자비'에 기대야 하는 족쇄를 참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 설교가 끝나고 나면 충동적으로 집단행동에 나서는 게 의례적입니다.


물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참습니다. 소수는 평화 시위만 하고, 극소수만이 이스라엘군이나 식민촌 주민을 공격합니다. 그렇지만 모두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그저 남을 상처 입히는 거에 익숙하지 않고, 또 용기를 내서 저항해 봐야 무참히 학살당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참고 또 참을 뿐이지요.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언젠가는 터집니다. 한꺼번에. 작년 하마스의 공격이 그러했고, 이는 지난 백여 년 간 계속해서 되풀이되어 온 역사입니다.


이슬람은 사실 라마단 기간에 화목함을 강조합니다. 이웃의 말을 존중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려 들여서는 안 되고, 언쟁하거나 남을 증오하지 말고 긍정적 감정을 유지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정반대라니 참 아이러니하지요? 어차피 종교는 사회적 도구에 불과합니다. 가자지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굶어 죽어 가는 와중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떻게 긍정적 감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부디 영구적 휴전이 조속히 타결되고,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21세기에도 여전히 식민 지배를 받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고향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만을 바랍니다.


관련글 더 보기

- 8년간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출간

- 라마단으로 풀어보는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이해

- 독서가이드(해제)| 2장 3절-이슬람의 폭력성이 분쟁을 일으켰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마스 성폭력 UN 보고서를 직접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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