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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Mar 04. 2024

구호품 학살 소식을 들으며 떠올린 역사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다.

최근 전쟁이 길어지고, 이스라엘이 국경을 통제하여 구호물품의 반입을 크게 제한하면서 가자지구 주민들이 식량과 식수가 부족하고 그 밖의 생활필수 물자가 없어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미 10명의 아이들이 탈수와 영양실조로 사망했습니다. 구호 단체들은 이스라엘의 방해를 피하기 위해 구호품을 공중에서 투하하는 최후의 수단까지 쓰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구호물자 차량에 몰려든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인근에 있던 이스라엘군이 탱크로 사격하여 112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건이 2월 29일에 발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탱크 근처로 오지 못하도록 경고사격을 했을 뿐 사람을 향해 쏘지 않았고, 사망자는 압사로 인해 발생한 것뿐이라고 변론했습니다. 실제로 BBC가 인터뷰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압사로 사람들이 죽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출처 : BBC


그러나 참사 인근의 병원장은 이송된 부상자 중 142명이 총상을 입었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출처 : AP뉴스/연합뉴스 재인용) 이는 물리적 증거인만큼, 조만간 언론의 검증을 거쳐 자세히 보도될 듯합니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 등은 사건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미국은 뒤늦게 3만 8천 명 분의 구호물자를 공중투하하며 비판을 줄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마취제, 산소통, 인공호흡기와 같은 필수 의료물자의 반입마저 막아왔다는 구호단체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스라엘이 사람을 향해 총을 쏘았는지 아니면 경고사격만 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망자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이스라엘의 침공에 있습니다. 혹자는 5개월 전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원인으로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 거슬러 올라간다면 하마스가 공격한 원인인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를 말해야 합니다.


사망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 역시 사격에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주장대로 '경고사격'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사격이 주민들의 공황을 일으켜 압사로 이어졌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총상에 대한 증언이 사실이라면, 다수가 총에 맞아 쓰러진 후 압사당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사흘 전에 소식을 듣자마자 눈앞에 떠올린 것은 1948년에 팔레스타인의 항구도시 하이파에서 일어난 인종청소였습니다. 당시 유대 민족주의자=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만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토착민인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추방하고 있었습니다. 하이파를 점령한 뒤에는 이미 피란을 떠나기 시작한 주민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피란행렬에다가 박격포를 쏘아댔습니다. 그러자 오늘날과 같은 압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음은 이스라엘 유대인 역사학자 일란 파페의 책 '팔레스타인의 인종청소'에서 나오는 인용글입니다. 번역하니 느낌살아서 원문을 함께 올립니다.


Men stepped on their friends and women on their own children. The boats in the port were soon filled with living cargo. The overcrowding in them was horrible. Many turned over and sank with all their passengers.


남자는 친구를 밟았고, 여자는 자기 자식을 밟았습니다. 항구의 배는 곧 생활물자로 가득 찼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올라타서 끔찍했습니다. 많은 배들이 뒤집혔고 사람들과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Illan Pappe, The Ethnic Cleansing of Palestine (Oxford: Oneworld Publications, 2006), 96.


이때가 1948년 4월 22일이었고, 이 같은 인종청소는 이미 팔레스타인 곳곳에서 발생해서 100-200개의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고 30만 명이 난민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구하러 가기로 결심한 건 일주일 뒤인 4월 30일이었습니다. 그러나 5월 14일까지는 팔레스타인의 공식적인 통치정부가 영국이었기 때문에 국경을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바로 그다음 날인 15일에  아랍 국가들이 국경을 넘고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시작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구 국가들에서는 이런 인종청소는 쏙 빼놓고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선제 침략했다고 가르칩니다. 이러니 아랍인들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이 생기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라보고, 진실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다투게 됩니다.


끝으로 하마스를 비롯해 가자지구 주민들이 종교적으로 보수화된 이유를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슬람이 전파되고 천 년도 넘는 세월 동안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 쪽은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1967년에 이스라엘이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부터 주민들이 종교에 심취하고 정신적 구원을 바라게 되면서 보수화됩니다. 왜 그렇냐고요? 오늘날과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래 CNN/동아일보 보도를 보시지요.


이스라엘이 마취제, 산소통, 인공호흡기 등 필수 의료품의 반입을 막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1일 CNN은 마취약 부족으로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17세 조카의 다리를 주방 세제로 소독하고 부엌칼을 이용해 절단한 팔레스타인 의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맨 정신으로 다리를 절단한 조카에게 이슬람 경전 ‘꾸란’을 낭송하며 참으라고 했다”며 개탄했다. (출처 : CNN/동아일보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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