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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Feb 26. 2024

분쟁의 시작과 끝은 프레임 - 가자지구 휴전협상의 진실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연구하며 서구 학자들의 학술서적만 약 500권을 읽었습니다. 그중 종교 관련 고대-중세사를 제외하고 분쟁을 다룬 책만 계산하면 350권 정도 될 텐데요. 이런 책들을 보며 가장 답답했던  중 하나가 잘못 설정된 프레임입니다.


짧게 몇 가지 예를 들자면, 1917-1948 영국강점기 때 설립된 팔레스타인 정당은 서구 학자들에 의해 '극단주의자'와 '온건주의자'로 분류됩니다. 전자는 '독립'을 입에 담은 파벌입니다. 이들이 무장투쟁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불립니다. 반면, 온건주의자는 영국/유대인과의 뒷거래로 독립을 '포기'하거나 적어도 단기적 목표로 삼지 않은 파벌입니다.


뭐가 문제인지 보이시나요? 같은 잣대로 보면,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은 죄다 극단주의자에 테러리스트이고, 이완용 등은 온건주의자입니다. 실제로 윤봉길 의사 등은 유럽 언론에서 테러리스트로 지칭했습니다.


또 다른 예는 유대 국가를 건국한 민족주의자들, 즉 시온주의자들을 분류하는 방식입니다. 1917년 이전까지 시온주의자들은 유대 인구의 1% 내외에 불과했고,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유대 국가에 반대하거나 무관심했습니다. 전통적인 공동체 지도자인 랍비들은 거세게 반대했고요. 그런데도 시온주의자들은 '극단주의자'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시온주의자들은 식민 활동을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무기 등을 밀수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불법무장단체를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군사적 정복은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할 한 가지 가능성으로 약하게나마 상상되었고, 1930년대 중반부터는 진지하게 논의됩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각종 테러를 일으키고요. 그런데 극단주의자로 불리지 않습니다.


1925년에 시온주의자들 내부에서는 수정주의자라는 파벌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1940년에는 수정주의자에서 이탈한 또 다른 파벌인 레히가 생기고요. 극단주의자라는 칭호는 소수 파벌인 이 두 정당으로만 한정됩니다. 이들은 시장과 호텔 등지에서 폭탄테러를 일으켜 다수의 인명 살상을 저지르는 등 실로 테러리스트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지만, 그렇다고 주류 시온주의자들이 테러와 무관했던 건 아닙니다. 무려 91명을 죽인 데이비드 호텔 테러에는 레히와 공동으로 작전을 수립했고, 1948년에 170명 이상(아기 30명)을 죽인 데이르 야신의 학살 때는 지원사격과 물자를 제공했습니다.


이런 이중잣대는 팔레스타인 역사 곳곳에 적용되어 있고,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라마단을 앞두고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상이 큰 진척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 언론은 그동안 협상이 실패했던 이유가 하마스 때문이고, 이번에는 하마스가 '유연한 태도'를 보여서 협상이 성사될 것 같다고 보도합니다. 그런데 언론이 칭찬하는 이 유연한 태도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완전한 휴전'을 포기하고 '일시 휴전(6주)'을 받아들이기로 한 점입니다.


세상에...여러분들은 이게 이해가 되시나요?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침공 직후부터 완전한 휴전과 인질 교환을 요구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일시 휴전만 고집했고요. 하마스의 선제공격을 문제 삼을 수야 있지만 - 물론 이스라엘의 봉쇄와 식민 지배를 함께 봐야 함 - 적어도 휴전협상에 있어서 누가 걸림돌이 되고 있었나요? 몇 주 휴전 뒤 전쟁 재개하겠다는 이스라엘은 문제없고, 완전한 휴전을 요구하는 하마스가 협상의 걸림돌이었다는 비판이 말이 되나요? 어떻게든 이스라엘을 두둔하려는 서구 언론과, 이를 받아쓰기하는 국내 언론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2024.3.3. 추가 : 하마스의 '유연한' 태도는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자 영구휴전이 아닌 '임시휴전'을 받아들이라는 서구 국가들의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하마스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후 이스라엘이 구호물자를 받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향해 발포해 혼란이 발생해 100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휴전 협상은 더욱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2024.3.5. 추가 : 카이로에서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마스는 완전휴전을 내놓았고, 이스라엘은 6주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은 "이스라엘은 전향적인 협상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받아들일 책임은 하마스에 있다"고 말합니다.(출처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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