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란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28일에 시작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자,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섰고 1월 13일 자 기준, 수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1만 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추정도 인용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 전복을 주문하며 군사적 개입을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발언을 했습니다. 아래는 오늘 자 한겨레 보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의 애국자들이여, 계속 시위하라. 여러분의 (정부)기관들을 점령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여러분을) 살해하고 학대하는 이들의 이름을 남겨라. 그들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난 (이란 정부가) 시위대에 대한 무분별한 살해를 멈출 때까지 이란 당국자들과의 모든 회의를 취소했다. 도움의 손길이 가고 있다”.
미국의 개입은 이란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들에게도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관련해서 몇 가지 쟁점을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1. 누가 시위를 주도하나?
이번 시위를 처음 주도한 것은 상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정권의 핵심 지지층으로 손꼽혔으나, 최근 급격한 물가 상승 등으로 정부에 불만을 품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합류했고, 이제는 단순히 경제 정책 실패가 아니라 국정 전반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고 일부는 정권 교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2. 이란 정부는 시위대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작 세력으로 주장하는데, 사실인가?
시위대에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연계된 인물들은 아마도 존재할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공작 시도는 흔하니까요. 그러나 요원이나 협력 단체들은 시위 도중 폭력 행위 등으로 정부와의 갈등을 키우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서 그칩니다. 지금처럼 전국적 수준으로 시위가 확산한 것은 시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원인입니다.
3. 무엇이 불만인가?
시민들의 불만은 전방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뉴스에서 널리 보도되었듯이 우선은 급격한 물가 상승, 통화 가치 폭락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불만이 있고, (최근에 정책이 완화되었긴 하지만 그래도) 엄격한 이슬람 율법 강제에 대한 종교적 불만이나, 억압적인 정치에 대한 불만도 꾸준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의 긴장 속에서 커진 안보 불안, 미국과의 관계에서 체감되는 외교적 무력감까지 겹쳤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해외 언론에서도 아직은 조명하지 않는 듯한데, 2023년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를 보고 무슬림 연대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크게 실망하고 불만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4. 가자지구 전쟁과 이란 지지층의 분열
현 이란 정부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수립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대중에는 무슬림들이 광신적 신앙 때문에 이슬람 율법 국가를 세운 것처럼 단순화되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혁명 이전에 이란은 서구 세력과 결탁한 팔레비 왕조가 통치했습니다. 팔레비 왕조는 서구와의 거래로 쌓아 올린 부를 독점하며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이슬람 정신'에 기초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정의'를 기대했습니다. 그 결과, 1979년에 이슬람 혁명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특히 상인들이 현 이란 정부에 큰 기대를 보내며 열렬히 지지해 왔습니다.
혁명 지지 세력이 공유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는 반서구-반제국주의-범이슬람 연대였습니다. 많은 무슬림은 19세기 이래 이슬람 세계가 서구에 잠식되어 가는 정치적 현실에 위협을 느꼈고, 팔레비 왕조의 억압적인 정치를 그러한 서구 제국주의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았습니다. 팔레비 왕조가 같은 무슬림인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친이스라엘 정책을 추진했던 것 역시 그런 인식을 강화했습니다.
혁명 정부는 출범 이후 전세계 무슬림 연대를 외치며 서구에 대항하자고 목소리를 키워 왔습니다. 하마스에 대한 지원 역시 그러한 국가적 가치와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 이란이 사실상 팔레스타인을 외면하는 듯한 모습이 이어지자, 무슬림 연대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전쟁 중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직접 타격하면서 여론이 분열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사정은 안타까우나 국내 문제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커졌고, 이는 이란 정부의 외교 노선에 대한 지지 재고로 이어졌습니다.
5. 시위의 목적은 무엇인가?
거리에서 정권 교체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는 있습니다만, 아직은 시위대에 뚜렷한 목적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단계라고 봅니다. 시위가 시작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고, 시위에 참여하는 집단마다 원하는 바가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종교적, 정치적 억압 구조에 불만을 품은 학생 등은 이란의 신정체제를 무너뜨리길 원하는 반면, 상인 집단들은 경제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와 국내 문제 우선 기조를 요구하는 데서 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현실화되고 정권이 전복된다면, 시민 사회 내부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질 것입니다.
6. 향후 전망은?
이번 시위는 지금까지의 이란 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사회적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란 전문가가 아니라서 실제로 정권이 교체될지 등에 대한 미래 예측은 불가합니다. 대신 여러분이 고민하시면 좋을 요소를 짚고자 합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이란은 유엔에서 '반식민주의' 결의에 앞장서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에 비판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평화의 목소리를 내오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정부가 지금은 수많은 국민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란 정부는 선일까요, 악일까요?
오래전 인터넷에 무단횡단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선악은 단면적이지 않고 다면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습니다. 인간의 집합체인 국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그 어느 나라도 순수하게 선하거나 악한 나라는 없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이익에 비추어서 도덕적 가치를 무기로 삼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과 지배 시도는 '마약 단절', '독재 정권 교체' 등의 도덕적 명분을 내세웠으나, 결국에는 원유 등의 자원 수탈이 핵심 목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란을 포함한 여러 권위주의 국가들이 추진했고, 남반구 국가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반식민주의의 날' 또한 도덕적 명분 아래 '미국-이스라엘 등의 서구 세력 견제'라는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국제정치의 민낯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저는 우선 행위자가 아닌 행위 그 자체를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진압에 나서 대규모 인명 학살을 저지르는 것은 그게 이란이든 대한민국이든, 미국이든 관계없이 잘못된 범죄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정치 환경이 형성된 배경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란의 경제는 왜 어려워졌을까요? 아래 프레시안 기고 글(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저)은 미국 주도의 경제 제재를 지적했습니다.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에 휘청이던 이란 경제는 2015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으로 불리는 핵합의가 타결되면서 회생의 기회가 생기는 듯했다. 그런데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이 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 지난해 9월에는 민생을 포함한 이란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는 결정이 나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0년 만에 이란 제재를 복원키로 한 것이다. 이러한 결의는 이미 도탄에 빠져 있던 이란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일례로 작년 9월 28일 이란의 화폐인 리알은 달러당 112만 리알까지 폭락했는데, 이는 2015년 이란 핵합의 당시에 비해 3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한 것이었다."
이란은 전통적으로 자원 강국입니다. 서방의 제재만 아니면 경제적으로 풍족합니다. 그러면 왜 서방은 이란을 제재했나요? 이란이 이슬람 혁명 이후 반서구 노선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왜 이란 국민들은 이러한 변화를 지지했나요? 서구와 결탁한 팔레비 왕조가 자신들을 착취하고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오늘날 이란의 일선 지휘관들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시위대를 강경 진압해야 할 '합리적인 명분'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현 시점에서 정치적 대안 없이 정부가 무너지면 최악의 경우 친서방 괴뢰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갈등 구조는 사실 외세의 지배나 간섭을 경험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서 매우 흔합니다. 오늘날까지 여러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가 권위주의 정권이나 내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작동하고요.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저 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미개하다’라는 식의 편견을 가지곤 하지만, 정작 우리도 일제의 지배와 미소의 개입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지금까지 대치 상태에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구조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외세의 내정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차원의 담론 외에는 학자들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각각의 상황마다 조건과 맥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란의 경우 정부가 권력을 원만히 이양하거나, 아니면 권력 체제를 대폭 수정해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는 시나리오만이 평화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시위를 명분으로 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개입이 유력하게 점쳐지는 상황이지요.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만약 이번에 외세의 개입으로 현 정부가 무너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앞으로 이란에서 어떤 성격의 정부가 탄생하든, 끝이 보이지 않는 혼란과 내전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란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탄압을 중단하고 시민들의 요구에 응해야 하며, 보다 근본적으로, 그 어떤 명분으로도 시민들의 권리를 억압하거나 학살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상기해야만 합니다. 그게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며 현 정부가 내세웠던 도덕적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