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판 환단고기② 유대인들이 유대 국가를 거부했던 이유

오마이뉴스 기고글 (2026.1.25.)

by 정환빈

중동판 환단고기 2편이 올라왔습니다. 1편에서 설명하지 않은 부분, 즉 유대인들이 유대 국가를 거부한 이유와 민족의 고향 -> 유대 국가로 넘어가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원제는 브런치 제목과 같은 "유대인들이 유대 국가를 거부했던 이유"입니다.

담당 기자님께서 제목을 조금 더 흥미롭게 바꾸셨는데, 다만 시제가 불분명해져서 약간 걱정이네요.



1편이 의외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메인에 노출된 적이 없는데도 이틀 만에 조회 수가 2천이 넘었습니다. 추천이나 공유 횟수가 없어 실제로 얼마나 많은 분들이 끝까지 읽으셨는지는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해외 역사 글이 이렇게 노출이 많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습니다.


환단고기는 원래 4편으로 기획된 짧은 연재물이었습니다. 2편에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3편은 종교, 4편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마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1편을 읽고 궁금하셨는지, 밸포어 선언 관련해 옛날에 올렸던 브런치 글을 찾아 읽으신 분들이 여럿 있더군요. 아마도 유대인들이 유대 국가를 거부한 이유, 그리고 민족의 고향이 어떻게 유대 국가로 이어지게 되었는지가 궁금하셨을 듯하여 이를 주제로 한 2편을 새로 작성했습니다.


이왕 이번에 디테일한 요소까지 다룬 김에, 전체 기획을 다시 해서 6~10편 정도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2편은 그간 써온 글 중 가장 깔끔하게 정리된 듯하여 흡족합니다. 밸포어 선언의 함의에 대해서 이만큼 적확하게 다룬 글은 국내에는 없고, 해외에서도 없거나 드물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엔 어떠셨나요?


영국이 약속한 ‘민족의 고향(national home)’이 유대 국가로 이어지는 과정은 축약되거나 생략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간극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글에서는 밸포어 선언의 함의로 크게 2가지 요소를 설명합니다.


1. 유대 여론의 왜곡


유대인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유럽 땅을 고향으로 여기며 오래도록 살아왔다. 근대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태동했을 때 이들은 유대 민족이란 개념을 거부하고, 같은 유럽인으로 받아들여달라고 간청했다. 그런데 갑자기 유대 민족 국가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팔레스타인으로 쫓겨나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여기에 시온주의가 유대교 금기를 범했다는 종교적 반감까지 더해졌으니, 거센 반발로 이어진 것이다.


1947년 CIA 보고서 : "많은 시온주의자 단체들은 유대인을 위한 민족의 고향이란 목표를 지지하면서도, 팔레스타인에서 독립 유대 국가 (건설)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2. 그로 인한 아랍과의 민족 분쟁 야기


아랍인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영국은 유대인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책임을 전가했다. ‘유대인을 위해 민족의 고향을 세워야 하니, 독립은 불가하다.’


밸포어 선언 이후 팔레스타인 문제는 졸지에 70만 아랍인과 1천만 유대 '민족'이 권리를 다투는 문제라는 프레임이 조성되었다.


1922년,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은 영국에 팔레스타인의 통치를 위임했다. 통치 목표는 유대 민족의 고향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서 민족의 고향이 완성될 때까지 독립은 유보되고 강제 지배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언젠가 영국이 철수하게 된다면, 민족의 고향은 유대 국가로 전환될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아마도 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밸포어 선언을 영국이 유대 국가 건설을 위해 도움을 준 사건 정도로만 이해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유대 국가는 영국의 관심사가 아니라 직접적인 지원은 없었고, 밸포어 선언은 시온주의자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정확히는,


밸포어 선언의 역사적 함의는 서구 국가들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에서 시온주의가 '유대 민족의 열망'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 있다. 이는 전 세계 유대인들이 시온주의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온주의로 인해 팔레스타인으로 쫓겨날지 모른다는 우려를 잠재워주었다. 게다가, 극소수의 지지만을 받는 극단주의적 정치 집단이 유대 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하게 공인된 정치권력으로 급부상해 민족의 미래를 좌우하게 되었다.


어떤가요? 이제 역사적 맥락이 정확히 보이나요? 왜 유대인들이 유대 국가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아랍-유대 민족 갈등이 유발되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밸포어 선언을 이야기하며 영국의 책임만을 말하는 건 정말로 잘못된 해석입니다. 영국 이전에 시온주의자들을 반드시 지적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밸포어 선언을 정확히 읽는 것은 곧 이-팔 분쟁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다수 우리 학자들은 밸포어 선언이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는 서사를 퍼트려 왔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반세기도 전에 검증이 끝나고 확고하게 진실로 자리 잡은 사실을, 왜 우리는 그동안 몰랐을까요?


이어질 3편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 첫 주제는 바로 누가 전문가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중동 전문가'가 과연 이-팔 분쟁의 전문가일까요? 무슨 말인지 바로 감이 오시죠?


학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인지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민감한 주제입니다. 밥그릇 문제니까요. 어디까지 파고들지 또 조심해야 할지, 수위를 적당히 조절하려고 고민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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