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기고글(2025.1.28.) 및 한국석유공사 사태 정리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제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제 미들 이스트 모니터에 이어 오늘 오마이뉴스에 같은 주제의 기고글을 올렸는데, 이 글은 크게 3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 반식민주의의 날 제정의 중요성
제가 거듭해서 소개해 드린 반식민주의의 날은 단순히 식민주의를 종식시키기 위해 도입된 상징적인 날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많은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은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강대국들로부터 억압받고 자원 수탈 등을 겪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문제들 역시 식민주의의 한 형태이므로, 식민주의에 대한 개념을 확장시켜 '탈식민화'의 과업에 포함해야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모든 형태와 양상의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날", 줄여서 반식민주의의 날입니다.
현재 80차 유엔총회는 처음으로 "모든 형태와 양상의 식민주의 종식"이라는 의제를 상정했고, 앞으로 매년 자원 수탈 등 다양한 유형의 식민주의의 해법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2. 65년 만의 제도적 확장의 성공 배경
유엔에서 탈식민화가 확장된 것은 65년 만입니다. 그 과정에서 가자지구 전쟁이 촉매 역할을 하였습니다.
뜻밖에도 가자지구 전쟁이 수십 년간 정체된 탈식민화 전선에 돌파구를 여는 촉매가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유엔 제4위원회에서 모든 형태와 양상의 식민주의의 필요성으로 거론되어 온 사례 중 하나였다. 1967년에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지구를 점령했을 때 유엔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철수를 요구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은 탈식민화의 대상인 비자치령(NSGT) 목록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은 채 임시적인 "점령지(Occupied Territories)" 상태로 다뤄지게 되었다. ...
그러나 점령 상태는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되었고, 사태는 나날이 악화해 갔다. 여러 나라들은 유엔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보다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점령 상태를 탈식민화의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 전쟁이 발발하자 이틀 만에 이란이 "모든 형태와 양상의 식민주의" 개념을 다시 꺼내 들며 팔레스타인 문제와 연결했고, 이후 "유엔헌장 수호를 위한 우호 그룹"이 논의를 주도하게 된다.
식민주의 개념을 "모든 형태와 양상"으로 확장한 것은 팔레스타인 하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국제정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구의 반발을 무마하고 제도적 확장을 추진하려면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했는데, 가자지구 전쟁이 마침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오직 이스라엘과 미국만 반식민주의의 날 결의안에 반대표를 행사했고, 다른 서구 국가들은 불참 또는 기권했습니다.
지난 12월 18일, 유엔에서는 반식민주의의 날을 기념하는 고위급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날 많은 국가의 대표들이 연단에 올라 팔레스타인을 외쳤습니다.
유엔헌장 수호를 위한 우호 그룹을 대표해 나온 베네수엘라, 비동맹 그룹 대표인 우간다, 그리고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대표를 포함해 무려 12개 국가가 팔레스타인을 언급하며 확장된 개념의 탈식민화를 옹호했다. 여기에 그룹 대표인 베네수엘라 또는 우간다의 성명에 동의한다고 밝힌 국가들의 수를 포함하면 22개에 이른다. 자국 문제로 연단에 오른 이스라엘과 일본을 제외하면, 70%의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탈식민화로 연결 지은 것이다. 즉, 국제사회는 가자지구 전쟁을 지난 500년간의 식민 전쟁의 연장선에서 보고 있다.
3. 한국에 주는 함의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식민주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식민 역사를 비판해 온 한국은 언제나 친이스라엘 정책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비도덕적이고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최근에는 선을 심하게 넘었습니다.
윤석열 정부 시절 한국석유공사의 자회사가 가자지구 해역 가스 탐사권을 이스라엘로부터 획득했습니다. 당연히 국제법상으로 불법입니다. 팔레스타인 인권단체들이 소송 경고까지 했습니다만, 무시했습니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석유공사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우리 시민단체들이 시위를 하고, 한국석유공사, 산업통상부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으나 전쟁 이후 국제 정세를 관망하며 추진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대한민국은 이제 식민 국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해역에서의 '자원 수탈'은 유엔이 모든 형태와 양상의 식민주의를 제도화한 총체적 이유를 응축하고 있다. 확장된 식민주의 개념에서 볼 때 한국은 새로운 식민 세력으로 인식된다. 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은 가자지구 해역의 자원 수탈에 연루된 기업의 국적 중 하나로 명시적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다나에 대한 소송이 시작되면 국제적 인식이 더 나빠질 것이다. 심지어 유엔총회 신설 의제 "모든 형태와 양상의 식민주의 종식"에서 이 문제를 다루게 될지도 모른다.
달라진 국제사회의 시선 앞에서 지금 우리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불의를 식별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4. 한국석유공사의 입장 관련 해석
(아래는 시민단체들을 위해 작성한 기술적인 내용입니다. 관계자분께서 읽으신다면, 내부적으로 공유 좀 부탁드립니다.)
가자 해역의 가스 탐사권을 획득한 주체는 다나 패트롤리엄이라는 영국 소재 회사입니다. 한국석유공사는 2010년에 이 다나를 적대적 인수·합병하였고, 다나의 대표이사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석유공사는 공기업이므로, 이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법하에 '국가책임' 문제로 연루된 상황입니다.
지난 2025년 11월 26일에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석유공사 유럽사업팀과 면담을 갖고 사업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이후 12월 18일에 석유공사는 "이-팔 전쟁 종료 이후 국제 정세 모니터링 후 운영사인 에니 등 컨소시엄 참여사들과 탐사사업 추진여부를 검토하여 진행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석유공사의 메시지는 다분히 부정적입니다. 만약 석유공사가 사업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면 굳이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릴 이유가 없습니다. 즉, 석유공사는 국제사회의 감시가 약해지는 등 법적 문제 소지가 약화하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시민사회에서는 석유공사가 조만간 포기할 것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다나는 이번 사업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컨소시엄은 운영사인 이탈리아 기업 에니와, 이스라엘 기업 라티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2월 4일, 에니가 국내외의 항의에 견디지 못하고 사업 철수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운영사인 에니가 철수하면 컨소시엄을 유지하기 어렵고, 다나와 라티오가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규모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에니가 포기했으니, 석유공사도 포기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우선 애니의 발언이 확대 해석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이탈리어로 된 에니의 공식 입장을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Eni participated in a legally announced international tender for offshore exploration licences in waters located within Israel’s Exclusive Economic Zone bordering Egypt … Eni does not foresee being involved in activities in the area in the future.”
여기서 마지막 문장을 봅시다. 에니는 앞으로 이 지역에서의 활동에 관여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포기하겠다, 철수하겠다'도 아니고, '포기할 것 같다, 철수할 것 같다'도 아닙니다. '아마 안하게 될 것 같은 걸로 보인다'라는 뉘앙스의 '관측'입니다. 자신의 행동 의지를 담은 표현이 아닙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향후 에니가 사업을 추진할 때 이 표현은 입장을 번복한 게 아니라 그런 관측을 했었을 뿐이라는 방어적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에니가 법적 소송을 대비하는 듯한 태도는 첫 문장에서도 보입니다. 에니의 입장문은 이탈리아 공영방송에서 "가자지구 연안 분쟁 해역"에서 활동할 계획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니는 가자 해역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이집트와 맞닿는 이스라엘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참여했다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해역은 이집트 해역과 인접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가자지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에니는 대체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에니와 다나 등이 참여한 입찰에서 이스라엘 당국은 해당 탐사 구역을 이스라엘의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정의했습니다. 다만, 해양경계선의 구획이 확정되지는 않았으며, 향후 탐사 구역이 축소될 수 있다고 사전에 고지했습니다. 따라서 애니나 다나의 입장에서는 가자 해역 침범 여부는 최종 결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변명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만약 에니가 사업을 철수할 의도가 강했다면 굳이 이처럼 에둘러 표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업을 추진할 의향이 있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한 것입니다. 다만, 이탈리아와 해외 시민사회 입장에서는 애니가 사업 철수를 시사했던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해야만 에니를 옥죄기에 유리하고, 향후 에니가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법적 소송에서 승소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저 역시도 미들이스트 모니터 기고문 등에서는 에니가 마치 포기한 것처럼 읽히는 문장만 적고, 해석은 달지 않았습니다. 만약 에니의 발언이 사업 철수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해석을 공론장에서 제시해버리면, 향후 법적 소송에서 에니가 인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시민단체에서는 이런 숨은 의도를 읽지 못하고 에니가 사업 철수를 결심한 것처럼 오해하는 듯합니다.
에니와 석유공사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는 날짜를 들여다보면 답이 나옵니다. 에니가 사업 포기를 시사하는 듯한 입장문을 내놓은 게 12월 4일입니다. 그런데 한국석유공사의 사태 관망 입장문이 나온 건 그보다 2주 뒤인 12월 18일입니다. 컨소시엄의 운영사로서 에니는 입장문을 발표하기 전에 당연히 석유공사 측에 알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석유공사는 "운영사인 에니 등 컨소시엄 참여사들과 탐사사업 추진여부를 검토하여 진행될 예정"이라는 답변을 내놓은 것입니다.
사기업인 에니와 달리, 공기업인 석유공사 입장에서는 '나 사업 포기할 생각 없어'를 가장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저런 방식입니다. 만약 에니처럼 '활동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입장을 발표하면, 법적으로는 안전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크게 비판받게 됩니다. 따라서 에니와 석유공사 컨소시엄은 사업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상황이며, 현 가자지구 정치 상황은 이들이 사업을 추진하기에 매우 유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가자지구는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에서 관리, 개발하기로 결정된 상황입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거론된 적은 없으나, 가스 소유권에 대해서도 팔레스타인 정부가 아닌 평화위원회가 결정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이탈리아-한국-이스라엘 기업의 가자지구 가스 탐사&시추를 금지할까요? 평화위원회에 세금만 잘 내라고 하고 오히려 독려하겠지요.
지금 상황은 매우 암담합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식민 국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상황인데도 국민들이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 정부가 정책을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시민단체에서 많이들 노력하시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힘들 듯하여 걱정스럽습니다.
어제 미들이스트 모니터에 이 문제를 기고하고, 해결책으로 유엔의 탈식민화 제도 이용을 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평화위원회를 상대로 규탄이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가 유엔이고, 이 문제가 만약 결의안에서 다루어지게 되면 우리 정부가 물러설 가능성이 생기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만, 다른 대안이 안 떠오릅니다.
10여 년 전, 제가 팔레스타인 문제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우리 국민들이 이스라엘의 지배가 식민주의인 것을 몰라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 연구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불러오는 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믿고 오랫동안 분쟁의 원인을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제 착각이더군요. 그 사이에 국민 정서가 바뀌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하마스의 1,200명 학살이 충격적이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습니다만, 이제는 식민주의라는 걸 인정하고도 이스라엘을 비판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이스라엘 비판해서 우리한테 뭐가 이익이 되냐는 식의 태도를 종종 봅니다.
저는 세계적으로 식민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게 이런 이유라고 봅니다. 서구인들이 5백년 넘게 식민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일본인들도 뭐 사악해서 우리를 그렇게 괴롭혔겠습니까. 다 국익을 위해서 필요한 거야, 우리가 조선인을 왜 신경써야 해, 우리 국민만 잘 살면 되지 등 이런저런 구실로 죄책감을 지워서 그런 거죠. 인간이 다 거기서 거기다 보니, 세상을 평화롭게 만든다는 건 참 힘든 일이라는 걸 나날이 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