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기고글 (2026.2.7.)
중동판 환단고기 4편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후세인-맥마흔 서신협상이 소재입니다. 원래 중동전쟁 편을 다루려다가, 점진적인 이해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이걸 먼저 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순서를 바꾸었습니다. 그랬더니... 글 한 편 완성하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구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시도해서 겨우겨우 완성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일정이 너무 꼬였습니다. ㅠㅠㅠㅠ
지난 3편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식은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지식이 살아남는가?"
4편은 이 질문에 답하는 글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현존하는 국제분쟁 중 가장 상세하게 연구된 주제입니다. 그래서 해외 서적에서는 이 문제를 촘촘히 다루는 게 일반적입니다. 물론, 짧고 가볍게 다룬 교양서적도 있지만, 탄탄한 학술서적이 배경으로 뒷받침되는 시장이라서 구조적으로 호환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제 책과 김재명 교수님 책, 그리고 번역서 몇 권을 제외하면 모두 책 1권(300쪽 내외) 분량으로 이-팔 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해외에서는 이런 짧은 글은 특정 주제나 시기로 한정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포괄적으로 다루느라 어떤 주제도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않습니다. 이런 문화가 이-팔 분쟁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긴 글은 단순히 더 많은 정보량을 담아내는 도구가 아니다. 사고의 깊이를 달리하기 위한 선택이다. 초등학생 때 읽는 글과 중고등학생 때, 그리고 대학생 때 읽는 글의 길이가 다른 점을 상기하면 이해하기 쉽다. 짧은 글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문제, 혹은 감성적인 주제와 잘 어울린다. 반면, 복잡하고 논쟁적이거나 입체적인 주제에는 긴 글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긴 글을 소비하는 층위가 옅다 보니, 짧은 글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잦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많은 경우, 근거나 과정이 생략되고 주장과 결과만 남는다. 논쟁적인 사안에서는 특정 주장이 확고한 사실처럼 제시된다. 이러한 단순화 과정은 크든 작든 인식의 왜곡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세간에 알려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도 그중 하나다."
이번 글에서는 후세인-맥마흔 서신협상을 국내 학자들이 연구하지도 않은 채 아무런 근거나 출처도 없이 '영국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약속했다'라고 단정적으로 서술하는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해외학계에서 결론이 합의되지 않았고, 굳이 따지자면 서구 학계에서는 독립을 약속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조금 더 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자들은 왜 서구 학계와 다른 입장을 내놓았을까요? 그건 바로 "영국이 하나의 땅에 두 개의 국가를 약속해서 분쟁이 생겼다."는 환단고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역사적인 서사가 널리 믿어지는 바람에 후세인-맥마흔 서신협상을 연구하지 않고도 '영국이 약속했다'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다는 점은 correspondence를 선언이나 각서 등으로 잘못 번역하는 데서 명백히 확인됩니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correspondence에 대응하는 단어가 없다 보니 가지각색의 번역이 난무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번역은 선언이다. 외교부는 각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각각의 서신은 8개월간 이어진 협상의 과정이었고, 그 어떤 서신도 각서나 선언문으로 작성되지 않았다."
"특히 선언은 형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함의에서도 잘못되었다. 영국이 일방적으로 아랍의 독립을 인정하겠다고 선언한 뒤 철회하는 경우와, 반란의 대가로 독립을 인정하겠다고 협상한 뒤 이를 어긴 것은 정치적 책임의 성격과 무게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선언으로 잘못 등재되어 있다."
이 문제 관련해서 2년 전에 브런치에 글을 썼고, 나무위키에 인용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쯤에 나무위키를 가 보니까 영국이 독립을 약속한 서신(=맥마흔의 두 번째 서신)에 대해서는 '선언'으로 볼 수 있지 않냐는 해석이 있더군요. 네, 절대 안 됩니다. 학자들이 그렇게 안 쓰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후세인-맥마흔 서신협상은 어떤 문서도 단독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10건의 문서가 하나의 협상 과정을 나타내는 세트입니다. 맥마흔의 두 번째 서신을 해석하는 데는 그 이후에 주고받은 서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독립을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후 서신에서 양측이 "북서쪽"만을 논의하는 것을 중요한 근거 중 하나로 내세웁니다. 반대로 독립 약속의 실효성을 문제 삼는 측에서는 이후 서신에 등장하는 아랍의 적극적인 참전 요구, 즉, 상호책무성을 부각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전시에 비밀리에 자기네끼리 협상한 걸 가지고 선언이라고 쓰는 경우는 없습니다. 영어로는 영국의 약속을 '부정확하긴 해도' 서술적 표현(동사)으로 declare를 쓸 수는 있습니다. Great Britain declared Arab Independence.
그런데 이걸 명사 Declaration으로 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명사로 쓰려면, 선언문이나 선언적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서나 행위는 대부분 공개적이며, 비밀리에 행해지더라도 그에 준하는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후세인과 맥마흔은 서신을 주고받으며 조건을 논의한 것이라 선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만약 맥마흔이 두 번째 서신을 보낸 시점에서 협상이 종료되었다면, 그 경우에는 선언이라는 표현을 다소 부정확하게라도 쓸 수는 있습니다.
저는 보통 검색을 영어로 해서 나무위키는 잘 모르는데, 이번에 보고 좀 놀랐던 게 2년 전에는 너무 부실하고 틀린 것도 많길래 아쉽다고 브런치 글에 적었었는데, 이제는 원문도 다 번역해서 올리고 엄청 상세해졌더군요. 시간이 없어서 읽지는 못했지만, 많이 개선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대체 누가 이런 작업을 하시는건지 진짜 궁금하네요)
한 가지만 조언드리자면, 해외 학자들이 쓴 글이라 해서 무조건 받아 쓰시면 안 됩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년 전에는 '조약이 아니니까 영국이 지킬 의무가 없다'라는 주장이 있더군요. 출처는 번역서였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 쉽게 눈치챌 수 있어야 합니다. 전시에 반란을 대가로 독립을 약속한 건데, 그게 지킬 의무가 없다? 영국은 단 한 번도 그런 소리를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누가 영국 정부랑 협상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영국은 당사자도 아닌 프랑스도 이걸 지켜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기까지 했죠.
제가 연구하면서 늘 느끼는 건 국내나 해외 학자나 가릴 것 없이 다 부족한 점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늘 조심조심하려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요. 그러니 어떤 글을 읽더라도 항상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숙고해 가면서! 비판적으로! 읽는 습관을 들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