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판 환단고기 ⑤] 이-팔 분쟁은 운명이 아니었다

오마이뉴스 기고글(2026.3.3.)

by 정환빈

거의 한 달 만에 중동판 환단고기를 다시 연재했습니다.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흐른 줄 몰랐네요. 이번 글의 주제는 이-팔 분쟁의 핵심인 '추방' 문제인데, 이를 어떻게 해야 한 편의 글에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소재와 구조에만 무려 3주 쓰고, 정작 글 쓰는 건 하루 만에 끝냈습니다. ㅠㅠ 그래도 오마이뉴스에서 이 글을 포탈 메인에도 올려주셔서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글의 제목은 '케냐에 세워질 뻔한 이스라엘, 분쟁은 운명이 아니었다'입니다. 이스라엘이 케냐에 세워질 뻔했다니, 당황스럽죠?


사실, 사상적으로 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의 연관성은 매우 약합니다. 시온주의는 유럽에서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구하는 걸 대의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유대 '국가'가 필요한지도 모호한데, 더 나아가 그러한 국가를 팔레스타인에서 건설해야만 한다?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됩니다. 이 때문에 시온주의 사상을 실질적으로 창시한 레온 핀스커는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습니다.


"끝없는 이산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민족을 부흥시킬 수 있도록 안전하게 지낼 국가를 가지고자 한다면, ... 당면한 목표는 '성지'[팔레스타인]가 되어서는 안 되며 ... 외세 지배자가 추방할 수 없고 민족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는, 가여운 동포들을 위한 넓은 땅이 필요할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핀스커는 북아메리카를 제안했다. 그런데 그의 사상에 공감한 대다수 지지자들은 팔레스타인을 고집했다. 이들은 박해받는 유대인을 구한다는 목표 못지않게 '유대 민족의 부흥'을 꿈꿨다. 팔레스타인 이외에서 세워질 국가는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기 어렵고, 단순히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국가가 되기 쉬웠다."


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은 것에 대한 자기 변론으로 내세우는 대의명분은 유럽에서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민족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1903년에 크게 불거집니다. 당시 동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거세지자, 영국이 동아프리카 식민지(우간다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케냐 서부)에 유대인을 정착시키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이제 선택해야만 했다.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당장 동아프리카에서 유대 국가나 대규모 정착지를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내버려 둔 채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을 목표로 할 것인가? 격렬한 논쟁 끝에 다수의 시온주의자들은 후자를 택했고, 1905년 제7차 (시온주의자) 대회에서 팔레스타인을 포함하지 않는 계획은 금지하기로 결의했다."


자, 이처럼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에게 피란처를 제공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팔레스타인을 택했습니다. 이때 유대인의 생명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한 소수파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에는 토착민이 많이 살고 있어서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 어렵다'는 반론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소위 '아랍 문제'라고 부릅니다.


아랍 문제는 사실 시온주의의 탄생과 거의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최초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시온주의자 중 한 명인 엘리에젤 벤예후다가 1882년 9월과 10월에 쓴 편지에 보면 이런 내용이 전합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강해져서 조금씩 은밀히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 ... 간첩처럼 은밀하게 행동하고 계속해서 (땅을) 사야 한다."

"우리는 신뢰하는 ... 사람들을 제외하곤 정보를 노출하지 않도록 규칙을 정했다. 우리가 강해지고 다수가 되기 전까지 아랍인들의 적대감을 일깨우지 않고 전략적으로 행동한다면, 땅을 쉽게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시온주의자들은 이런 의도를 공공연히 밝혀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에는 팔레스타인이 "버려진 땅"이라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고 선전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지도부를 중심으로 아랍인들을 추방시켜야 한다는 인식은 공감대를 이루었습니다. 친이스라엘 학자인 베니 모리스도 이를 인정하며, 1937년 무렵에 이르면 지도부가 사실상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말합니다.


"국내에서 이-팔 분쟁은 종교와 민족이 달라서 발생한 불가피한 숙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껏 본 것처럼 이러한 서사는 환단고기다. 이스라엘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종교적 충돌은 사실상 없었다. 민족이 달라서 싸우게 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유대인만의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싸움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번 글의 주제문입니다. 민족이 달라서 싸움이 일어난 게 아니라,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 아랍인들을 희생시키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학계는 "아랍 유대인(Arab Jew)"이란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유대인들은 아랍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고 아랍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아랍화된 유대인(musta'rab)"으로 불렸다. 즉, 아랍과 유대는 역사적으로 배타적인 정체성이 아니었다. 나아가 여러 학자들은 민족주의가 전파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아랍 지역의 유대인들이 아랍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보며, 이들을 '아랍 유대인'으로 지칭한다."


"이러한 역사적 공존 관계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민족을 부흥시키겠다는 시온주의자들의 정치적 열망으로 단절되었다. 만약 시온주의자들이 없었더라면, 아랍 지역의 유대인은 오늘날 아랍 기독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아랍 민족'의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이-팔 분쟁이 운명이란 단어 따위로 미화될 수 없는, 정치적 기획의 희생물이라는 점을 상기한다." (끝)


최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중동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이번 전쟁은 누구의 잘못인가요?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 의사가 없다고 하지만, 설령 있다고 한들 그게 왜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을까요. 미국도, 이스라엘도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반세기 넘게 불법 소지 중이고요.


또 다른 전쟁 명분으로 거론되는 게 이란 정권의 독재와 얼마 전 있었던 시위대 학살입니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렇다고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을까요? 정작 미국이 이란 국민들의 민주 정권을 무너뜨린 전적도 있으면서 말이죠.


"1950년대 이란 내부의 정치 격변은 미국과 팔레비 왕조의 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집권한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총리는 왕권을 약화하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반외세적 행보에 나섰다. 이에 미국에서는 이란이 소련 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됐다.


결국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1953년 영국과 함께 팔레비 왕조의 힘을 키워주는 이란 내 쿠데타를 지원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강력한 힘을 되찾은 팔레비 왕조는 1959년 미국과 군사 안보 협력을 시작하며 강력한 친미 노선을 택했다. 이란은 냉전 시기 중동의 ‘친미 보루’ 같은 역할을 했다."

(출처 : https://news.nate.com/view/20260301n12759)


역사는 현실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역사를 모르면, 선동과 선전에 끌려다니기 쉽습니다. 이-팔 분쟁의 역사는 그동안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이를 조금도 연구하지 않은 '중동 전문가들'이 담론을 주도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실이 아닌, '운명'과 같은 낭만적 서사만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낭만적 서사가 감춘 것이 이번 전쟁처럼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란 걸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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