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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Aug 23. 2020

단어의 진상 #47

괜찮다

다 괜찮다

빛나는 노란 눈동자     


괜찮지 않아도 

다 괜찮다

그 맑은 눈으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렇게

다 괜찮다고   

  

지금처럼 그렇게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내일은 그냥 내일이라고     


어두운 밤 불쑥

그 맑고 큰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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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진상의 진상> 길고양이     


우리 동네 길고양이 중 한 마리가 새끼를 넷이나 낳았다. 

노랗고 커다란 눈을 가진 하얀색 암고양이는, 자신을 닮아 너무나 예쁜 새끼들을 이끌고 골목길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바빠졌다. 사료와 물이 떨어지지 않게 밤낮으로 신경을 썼다. 

그리고 그때부터 걱정도 많아졌다. 

행여 굶지는 않을지, 어린 새끼들이 차에 치이지는 않을지, 이상한 사람이 혹시 해코지는 하지 않을지, 내일이 폭우라는데, 다음 주에는 폭염이 이어진다는데……. 걱정에 걱정이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시궁창을 전전하면서,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자신이 먹을 끼니 한 끼 제대로 못 챙기면서 무슨 각오로 새끼를 네 마리가 낳았나, 무슨 이런 무책임한 모성애가 있나, 도대체 아비란 놈은 어떤 놈이냐,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저러나…….          


그러던 어느 날 늦은 귀가 길, 집 앞에서 어미와 마주쳤다. 

녀석은 그 노랗고 커다란 눈으로 나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나도 홀리듯 녀석의 눈을 바라봤다.

너무나 맑은 눈동자. 평화롭고도 우아한 눈빛. 

그때 깨달았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나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을.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폭염이 쏟아지든 무슨 상관이냐고.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지든 지금 무슨 상관이냐고. 

걱정해서 무엇하냐고. 지금 그대로 그냥 괜찮다고.     


녀석은 그 맑고 큰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더니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술이 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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