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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Aug 09. 2020

단어의 진상 #46

너의 낡고 헐렁한 양복 사이로

빛바랜 망토를 보았다     


너의 닳고 헤진 소매 틈으로

녹슨 무쇠 팔을 보았다   

  

애써 잊었던 우리의 과거를

나는 보고 말았다     


그날의 위대한 맹세는

알코올 속으로 날아가 버리고     


삐걱거리는 무릎으로는

땅을 박차오를 수 없어도

    

우리는 언제나 우리였다  

   

때가 오면 언젠가는

지축을 울리며 

하늘로 날아올라

지구를 구해내고 말 거라는 것을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기어이 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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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


<진상의 진상> 슈퍼 히어로     


마징가와 태권브이가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에 얼마나 흥분했었나. 슈퍼맨과 배트맨이 지구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나. 

망토를 휘날리며 무쇠팔 무쇠다리로 세상을 지키겠다고 또 얼마나 다짐했었나.      


우리는 한때 모두가 슈퍼히어로였다.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지구를 지키겠다고 다짐했었다. 

불의에 맞서 싸우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자고 서로를 격려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고 우리의 초능력이 쉽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지구는커녕 가족을 지키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를 잊어버린 수많은 ‘전직’ 슈퍼 히어로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 

망토는 색이 바래지고 무쇠팔은 녹슬었다. 관절염에 절뚝거리고 술 한 잔에 비틀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아파트에 목숨 걸고 주가에 쩔쩔매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빈약한 지갑에 실직의 공포에 안절부절못하는 소시민이 되었다. 조그마한 이해관계에도 네 편 내 편 나눠서 싸우는 찌질이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영웅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실에 숨고 세상을 핑계 대는 겁쟁이는 되지 말아야 한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에 기세등등한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한다.

지구를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펄럭이는 망토와 꿈틀거리는 무쇠팔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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