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숭고한 고뇌는 언제나 의미 있다
햄릿_윌리엄 셰익스피어
인생을 살면서 억울한 일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억울한 일 앞에서 선택의 몫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도, 의미도, 방향도 달라진다. 셰익스피어 작품 [햄릿]은 ‘숭고한 고뇌’의 극치를 보여준다.
어느 날 밤, 햄릿 앞에 나타난 아버지의 혼령은 “복수를 해다오. 근친상간과 살인에 대한 복수를. 너의 어미에 대해선 나쁜 마음도 품지 말고, 해칠 계획도 세우지 말기를” 당부하며 홀연히 사라진다.
이때부터 햄릿의 고뇌가 시작된다.
우선 증거를 찾기 위해 연극을 꾸미고, 현재 왕인 백부 클로디어스와 대신 플로니어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오필리어에게 상사병에 걸렸다는 듯 미친 척도 한다. 오랜 친구들에게나 사랑하는 연인 오필리어에게도 진심을 보이지 않는다. 햄릿의 고뇌엔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하는가 보다는 복수를 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상심이 있다.
이 지점에서 그토록 유명한 명구절이 탄생한다.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것이 더 숭고한 정신인가.
변덕스러운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허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파도처럼 몰려오는 많은 고난에 대항하여 물리치는 것일까."
죽는 것이 더 쉽다. 죽이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더 어려운 순간이 있다. 김완 작가가 쓴 [죽은 자의 집청소]는 홀로 생을 마감한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는 청소부 이야기다. 죽은 자가 직접 말하지 않지만 그가 마지막 숨을 끊은 현장은 언제나 깊은 죽음의 고뇌로 가득 차 있다. 햄릿은 "죽음의 여행에서 되돌아온 여행자가 한 명도 없는 미지의 나라로 간다는 것이 과연 참으로 이 고뇌를 끊을 수 있는 길인지에 대한 확신 없이는 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
햄릿의 고뇌의 중심엔 ‘고결한 정신이란 무엇인가’에 있다. 햄릿에겐 부도덕한 왕 한 명을 죽임으로 타락한 덴마크를 구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내게 주어질 왕좌를 기다리면서 숨죽이고 기회가 오길 기다리며 죽은 채로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뇌. 여기에서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는 것은 목숨의 죽음보다는 자신이 어떤 존재로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것이다.
결국 햄릿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클로디어스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가 하려던 복수는 어쩌면 죄를 지은 왕이 진정으로 참회하고 돌아섰다면 그의 고결한 정신으로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햄릿은 곧장 왕비에게 죄상을 고하고 “어머니의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라”며 현실을 바로보기를 촉구하지만 오히려 플로니어스만 죽이게 되는 참상을 낳는다. 햄릿이 복수를 지연시킴으로 결국 햄릿을 비롯해 왕과 왕비, 플로니어스, 연인 오필리어(플로니어스의 딸로 아버지의 죽음으로 미쳐서 강에 빠져 죽는다.), 오필리어의 오빠인 레어티즈, 햄릿 친구들까지도 모두 죽음으로 내몬다. 햄릿이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얽히고설킨 복수의 실타래의 비극적 참상 그 자체다. 초기에 왕을 죽였다면 이런 참담한 결과는 아니었을 테지만 햄릿의 숭고한 영혼과 고결한 정신으로선 그리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햄릿 작품엔 3가지 복수 형태가 나온다. 세 명 모두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칼을 들지만 행태는 다르다. 햄릿의 심사숙고하는 복수, 플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즈의 충동적이고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복수, 노르웨이 왕자로 선조가 잃어버렸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비록 승부가 희박하더라도 명예를 위하여 묵묵히 움직이는 포틴브라스.
선택의 기로에 서면 그 사람이 품은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상황이 어떻게 되더라도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선택과 내 안에 형성된 가치 기준과 의미, 철학과 신념을 바탕으로 ‘옳은’것, ‘진실한’ 것, ‘참된’ 것을 결정하길 원하는 마음이 갈린다. 햄릿은 '고뇌의 결정체'를 보여주어 비록 그 결과가 악의 파멸을 위해 선이 희생된다 하더라도 값진 것이며 소망과 희망의 항해를 향한 디딤돌이 됨을 보여준다. 햄릿의 희생으로 포틴브라스가 새롭게 덴마크 왕으로 등극하며 진실한 친구였던 호레이쇼의 기록과 증언으로 그의 인생은 신화와 전설처럼 남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숭고한 선택을 위한 숭고한 고뇌의 시간은 언제나 의미 있고 값지다. 그 결과가 참담하며 비극적이라도. 적어도 고뇌하는 인간만이 진실로 살아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