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인간 실존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변신_프란츠 카프카

by 겨자씨앗

건실하고 촉망받는 집안의 기둥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온 ‘내’가 하루아침에 그 기능과 역할을 잃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깨어나 보니 자신이 갑충으로 변했음을 알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른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했다는 설정은 지금까지도 다의적인 해석을 가지며 출판된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재해석되었다.

<변신>은 프란츠 카프카의 자전적 소설이다. 카프카의 삶은 ‘고독’, ‘소외’라는 화두를 늘상 지녔다. 1남 3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아버지 기대와 집안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하고 싶은 ‘작가’의 길을 힘겹게 걸어야 했으며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심판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숨죽이고 살았다. 이런 가부장적인 계승을 끊어내고자 자신을 갑충으로 변신시켰던 것일까. 또한 작가는 유대인으로서 서유럽 기독교 문화 가운데 동화되지 못한 음울한 이방인의 삶을 벌레같이 보았던 걸까. 그는 40세에 결핵으로 죽었고, 남은 여동생들은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자의든 타의든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가족들은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적대적이다. 벌레로 변한 그를 처음 본 아버지는 문지방 안으로 거침없이 밀어 넣는다. 문틈에 끼어 발들이 짓눌려도 가차 없이 눌러버려 피투성이가 되게 만든다. 결국 사과를 그레고르 등에 던져 치명상을 입히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물이다.
어머니는 모성애와 혐오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레고르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려 했으나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렵고 외면해버리는 존재로 전락한다.
누이동생은 가장 변화가 심한 인물이다. 처음엔 음식도 챙겨주고 가구도 옮겨주고 마치 오빠가 듣기라도 하듯 말을 걸지만 점차 가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그레고르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주장까지 서슴없이 한다.

“이 괴물로부터 벗어날 궁리를 할 때가 온 거예요. 우리는 이 괴물의 시중을 들고 이 괴물로 인한 고통을 참으며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은 이제 다 했어요.”
“내쫓아야 해요. 저 괴물은 우리들을 괴롭히다 못해 하숙인들을 내쫓고 끝내는 이 집을 혼자 차지하여 우리까지 길바닥에서 자게 할 거예요.”

누이동생의 결정적인 한마디에 그레고르는 그동안 겨우 부지해왔던 생을 놓는다. 사체는 가정부 할머니가 처리하고 해방과 자유를 맞이한 가족은 나들이를 떠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설계를 시작한다.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변신 앞에서 자신들도 변신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이 가정 안에서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 아침식사를 1시간 동안 느긋하게 먹으며 침대에 파묻혀 신문 읽기로 소일거리 하던 아버지는 어느새 빳빳한 제복을 입고 생기 있는 눈빛, 윤기 나는 머리로 은행 마크를 달며 밤에도 제복을 벗지 않는다. 천식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도 바느질로 생계를 돕기 시작한다. 늦잠 자고 집안일이나 거들며 바이올린 켜고 친구나 만나러 다니던 누이동생은 고객들을 상대하며 가게에서 밤낮으로 열심히 일한다. 인간의 역할과 기능이 물질로 연결되고 고리가 끊어진 그레고르는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고립당하여 종국엔 쓸모없는 존재, 치워버려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는 산업혁명 시대 부속품이 된 인간이 겪어야 했던 충돌이었고, 유대인이라는 숙명적인 혈통으로 배척당하는 민족 정서의 반영이기도 하다.

“쉿쉿” 벌레 소리만 냈던 것도 단절의 원인이다. 갑충이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만 있었어도 가족들은 끊어졌던 유대관계를 재정립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통의 단절은 서로의 뜻이 전달되지 못한 채 그저 죽여야 하는 벌레로 치부되었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서야 진정한 자아와 자유를 맛보긴 했으나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을 상실한 자에게 돌아온 대가는 비참한 최후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 계급사회,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 아톰(원자로 이루어진 세계)과 비트(가상현실) 세계의 혼재를 앞두고 불안감과 기대감이 존재한다. 자본의 계급이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계급을 만들어 기계의 대용물이 될 뿐만 아니라 정신세계까지 침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 실존에 대한 성찰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변하지 않아야 할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무엇인지 카프카는 지금도 살아서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