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1: 맥베스보다는 작지만 더 크시다. 마녀 2: 운은 좀 덜 좋지만 훨씬 더 좋으시다. 마녀 3: 왕은 아닐지라도 왕을 낳을 분이시다.
이런 예언을 들은 두 사람. 그들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맥베스를 향한 마녀의 첫 번째, 두 번째 예언이 왕을 만난 순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모든 유혹에 흔들리진 않는다. 연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맥베스는 예전부터 사촌 덩컨 왕을 보며 ‘내가 왕이 되었다면...’이라고 생각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맥베스는 왕이 될 자제 감이야!’이런 소리를 들었을지 모르겠다. "내가 왕이 된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 집어치워!"가 아니라 그때부터 '심장을 벗어나고', '끔찍한 상상'이 시작되고 '살인에 대한 생각'으로 온몸이 사로잡힌다. 여기서 마녀는 욕망의 현현화, 깊은 수면에 잠겨있던 내면을 표출하는 소리, 감춰있던 권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 매개체가 된다.
예언을 전해 들은 맥베스 부인은 덩컨 왕 살해하기를 주저하는 남편의 용기 없음을 비난하며 적극적으로 종용하여 바라는 바를 이룬다. 내면의 깊은 간구와 외부의 지지로 그는 결국 덩컨 왕을 살해한다. 그는 칭송받는 스코틀랜드 장군이 되길 거부하고 지존의 자리에 앉는다. 유혹에 넘어간 치명점은 바로 그다음 죄악을 양산한다는데 있다. 맥베스가 왕이 되어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뱅코 장군이었다. 자신의 후손이 왕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다.
“뱅코에 대한 내 두려움은 깊이 박혀 있으며 제왕 같은 그 성품엔 두려운 게 군림한다. 그는 실로 과감하다. 그리고 그 불굴의 기질에 덧붙여 용맹을 이끌어 안전하게 행동하게 만드는 지혜 또한 가졌다.”
뱅코는 맥베스를 믿었던 것 같다. 마녀의 예언이 성취될 것이라 짐작하고 어리석게도 스코틀랜드에 남아있었다. 결국 뱅코는 살해당하고 아들은 망명자가 된다. 맥베스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잉글랜드로 도망친 덩컨의 아들 왕자 맬컴과 도날베인, 맬컴을 따르는 맥더프 역시 가만두지 않는다. 맥더프 성을 기습하여 일가를 모두 도살한다. 이것이 죄악의 구렁텅이다. 굴비를 엮은 것과 같다. 한 구덩이를 덮고자 또 다른 구덩이를 파야 한다. 뱅코를 살해하고 나서도 마녀는 뱅코의 후손이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고 예언하자 맥베스는 굴곡된 망상에 사로잡혀 진실은 막히고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유혹에 굴복당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이 때문이다. 톨킨의 작품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화신 반지를 가지고 싶은 ‘유혹’과 버려야 하는 ‘시험’ 사이에서, 파멸한 골룸과 끝까지 유혹을 물리친 프로도가 대비된다. 유혹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이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면의 소리가 들릴 때, 밖에서 종용할 때 가만히 고요히 앉아 이 길을 가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이 순간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반추하고 점검해야 한다. 또한 결말을 예상해보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 정의로운가, 좀 더 세상이 유익해지는가. 내가 이 일을 행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환영과 몽유병과 깊은 신음에 시달리는 것을 보며 인간은 죄악을 저지르게 되면 선한 양심과 고귀함을 잃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시련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맥베스를 단순히 악인이라 폄하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라면 언제나 이러한 유혹을 매일 받고 있으며 또한 유혹에 넘어가는 똑같은 성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맥베스 부인은 몽유병에 걸려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맥베스 마저 맥더프 손에 최후를 맞게 된다. 이들의 죽음은 오히려 평안과 안식을 가져오는 것을 보며 고통과 고뇌의 종식, 형벌이 끝난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 버리는 것,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은 건데 소음, 광기 가득 하나 의미는 전혀 없다.”
반면 맬컴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왕이 되라는 맥더프 말에 맬컴은 신중함과 자제력을 가지고 이것이 유혹인지 시험인지 확인한다. 맥더프의 충심과 신의를 알게 된 이후에야 맬컴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난 아직 여자를 모르고, 위증하지 않았으며 내 것조차 탐내본 일 거의 없고, 한 번도 신의를 깬 적 없소. 마왕이라 할지라도 악마에게 팔지 않고, 생명만큼 진실에도 기뻐할 것이오. 참된 나는 당신과 불쌍한 내 나라의 명령을 따르겠소,”
성경에는 유혹에 넘어가는 수많은 인물이 나온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하와부터 다른 남자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다윗,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는 삼손, 장자의 권리를 동생에게 내어주는 에서 등 모두 비극적 파멸을 초래한다. 예수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친 열쇠는 ‘겸손’함에 있었고 ‘본질’에 있었다. 마음을 높이지 않는 것. 사명에 집중하는 것. 이것은 시험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
순간순간 우리는 유혹과 시험 사이에서 흔들린다. 자질구레한 지극히 개인에게 국한되는 유혹부터 물질, 권력, 성(性), 도박, 폭력에 이르는 남을 해하는 종류도 있다. 유혹을 받지 않는 인간은 없으며 완벽하게 선함을 실천할 인간도 없다. 고결하고 고귀한 인간이 되는 것은 이 양극 사이에서 어떠한 길을 걸어갈 것인지 현명한 선택을 하는 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