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부대' 멘탈

아이의 보폭

by 겨자씨앗

요즘 강철부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 , 다큐멘터리보다 극적이고 빅진감 넘치고, 긴장감과 활력을 준다. 무엇보다 굵직한 울림과 울컥하게 만드는 투지와 인간애,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이기려는 안간힘을 보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각 부대 대원들 얼굴과 이름까지 익히니 친근하기까지 하다. 강철부대가 던진 메시지는 크고 깊었다. 그들에게 감동한 이유는 바로 '정신력'이었다. 불굴과 포기를 모르는 한계를 딛고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근성이었다.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부러웠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강철부대'같은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멘탈 강화 훈련을 받지 못했기에 그저 방긋방긋 웃는 아기를 보며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했지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노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잠 못 자는 것은 기본이요, 아무도 차려주지 않는 밥상, 피곤과 귀찮음,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아기의 감정 상태만 신경 써야 하는 오롯이 엄마라는 자리는 참으로 힘겹다. 자식은 부모의 신체와 정신과 마음을 온전히 요구한다. 육아서들은 아이를 향한다. 엄마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이고, 엄마의 표정이 아이의 표정이다. 모든 자녀의 잘못된 행동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부모라 단정 짓는다. 100프로 수긍하는 바이다.


나는 첫째와 셋째 얼굴에서 똑같이 내 표정을 본다. 첫째의 얼굴에선 나의 무표정과 불만스러운 표정을 읽는다. 셋째의 얼굴에선 하회탈 같은 미소와 명랑함을 본다. 뒤돌아보면 그렇게 키워온 것 같다. 탐탁지 않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첫째에겐 늘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메리엔 아줌마 같은 태도를 취했음을 깨닫는다. 대화가 아니라 훈계, 동생들을 돌보느라 제대로 파악해주지 못한 마음 상태는 자신감 없고, 손을 빨든가, 손톱을 물어뜯든가, 어떤 하나의 상황에 지나친 집착을 보이며 강박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 착하고, 온유하며, 친절한 어머니들의 자녀가 틱 현상, 자해와 자살 충동을 느껴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어머니들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중학교 자녀를 둔 어머니가 상담실에 불려 갔다. 정신과를 가야 한다는 상담사에게 "우리는 이 아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지금 아이와 충분히 대화하면서 상처를 보듬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지켜봐 주세요."라고 부모가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지금, 어머니께선 사태 파악을 못하신 듯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의도적으로 아이의 치료를 방해한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군요."라며 매주 2시간 정기적인 강제 상담을 종용했다. 정신과 치료나 심리 상담의 부정적 견해를 말하려고 함이 아니라, 아이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부모의 책임이고, 더 이상 부모 안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쐐기를 박는 것 같은 말이 오히려 부모에겐 더 큰 상처가 된다.


어느 정도 책임이 당연히 있을게다. 후회 없는 부모, 실패 없는 부모가 과연 있을까. 나도 알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초감정,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들과 자라온 환경 속에서 이미 완전히 배어버린 악한 습관과 뿌리, 감정이 전달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부모는 유전도 극복할 힘이 있어야 한다.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나 굴레를 벗어버릴 힘이 있어야 한다. 술과 도박과 폭력과 외도와 언어 폭행과 억압과 쓴 뿌리들... 내가 받았던 것들을 내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역행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떤 상황에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강철부대 정신력'이 필요하다. 또한 부모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녀를 믿어줘야 하는 '멘탈'이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고, 외면해도 어머니만큼은 그 자녀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여줘야 하는 신념 말이다.


부모의 생활 습관, 가치관, 태도, 정체성,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모두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방향을 바꾸고 싶다면 의도적 훈련이 필요하다. 강한 멘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실천하고자 마음먹은 세 가지 사항을 적어 본다.


첫 번째는 고마운 감사일기다. 감사와 고마움은 비슷한 말이지만 감사는 어떤 일의 결과나 상태, 성취, 이루어진 것에 대한 것이고, 고마운 것은 존재 자체, 안아주는 것, 있음이다.

감사는 불행을 역행하고, 과거를 거스르며, 미래를 창조한다. 감사가 기적과 축복을 주고, 견고함과 단단함을 만든다. 나와 타인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어주는 것, 자녀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어주는 것, 내가 부모님께 고마운 존재가 되기 위한 작은 몸부림과 노력들을 상상해본다. 이러한 시도들이 마음과 감정을 바꾸고 삶을 지배한다. 나는 매일 감사일기를 쓴 사람들이 이혼할 상황에서 부부 관계가 호전되고, 정신적 피폐함과 열등감에서 빠져나오는 일들을 봤다. 감사가 능력이다. 입으로 내뱉고, 기록하고, 나누면 유전자도 변한다.


두 번째는 독서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마주한 모든 상황들은 누군가가 겪은 일들이다.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비극적이든, 희극적이든 책엔 내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과 해소, 시련과 환난을 이겨낸 스토리, 다양한 각개전투를 대하노라면 내가 가져야 할 태도와 적용점들이 보인다. 책을 대하고, 실행한 것들을 꾸준히 기록해 나가다 보면,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근육이 생겼음을 어느 순간엔가 깨닫게 된다. 책은 선로를 바꾸고, 인생의 항로를 바꾼다. 책이야말로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세 번째는 '긍정 확언'이다. 말은 창조의 힘이 있다. 너무나 유명한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보듯이 비난과 원망, 악하고 저주하는 말을 한 물의 결정체는 악마의 모습, 불안하고 혼돈 상태의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사랑과 존중, 감사와 축복의 말을 하면 눈과 같은 보석 결정체를 만든다. 우리의 무의식은 '말'이 준 영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 또한 그렇다. 어렸을 때 덧붙이고 씌워진 자존감은 말로 형성된다. 나는 자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말이란 것도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영역이다. 매일 술을 마시고 자녀와 아내를 폭행하고, 가난과 소망이 전혀 없는 아버지 밑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된 분이 그랬다. "나는 매일 수백 번을 거울 앞에서 외쳤다. 나는 승리하리라! 나는 잘 되리라! 나는 축복을 받으리라! 나는 이기리라!"

긍정적인 믿음의 선포는 세포도 변화시킨다.


나와 내 자녀들은 매일 아침, 10가지 긍정 확언을 외친다.


나는 생명과 빛의 존재다.

나는 탁월하고 보배로운 하루의 보석을 캔다.

나는 긍정, 소망, 축복, 믿음의 언어를 쓴다.

나는 기쁨과 유머가 넘친다.

나는 부유하다.

나는 통찰력, 상상력, 창의력, 독창적이다.

나는 축복의 통로로 도움이 필요한 자와 나눈다.

나는 모든 일에 감사한다.

나는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킨다.

나는 감사일기, 독서, 긍정 확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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