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모처럼 산책 길이다. 나는 7살 아들과 한 시간도 넘게 재잘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건 바로 브롤 캐릭터들이다. 처음엔 금방 끝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족들과 멀어져 가는 거리를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젠 나머지 가족들이 안 보인다. 게임에 0.00001%도 관심 없는 나는 도대체 캐릭터가 몇 명인 거야? 묻는다. 음... 50개 정도 될걸요?
"새리는 중간중간 데미지가 엄청 깎이고요, 다른 애들은 5번 장전해서 쏘는데 얘는 3번밖에 못 써요. 궁을 쏠 때마다 크게 들려요.
팬다 리타, 곰 리타도 있고 레이저를 쏴요.
가젯은 위에서 돌을 굴려서 공격하고요,
제시는 레이저를 리타처럼 던지고 총을 쏩니다. 중간으로 팡팡하는데 빠릅니다.
콜트는 총을 쏘고 벽을 뚫으면서 갈 수 있고, 기관총처럼 더 많이 날아가요. 데미지가 한 발이어도 아파요.
로사는 주먹에 가시가 있고 머리에 쓴 것에도 가시가 있고, 팡팡하면 이만큼 날아가요. 한 번에 두 세명을 죽일 수 있어요. 엄청 힘이 세죠.
불은 세 발이 한 발처럼 던져요. 자기 몸을 던져서 들어가요.
엔프리모 펀치를 하는 애는 점프하면서 이렇게 하면서 뻥! 자기 몸을 던져요.
미스터 피는 가방을 던져요. 뭘 던지면 적들에게 가서 터져요.
슈트는 손가락에서 레이저가 나와서 옆으로 쏜살같이 나가서 칩니다
스키크는 침을 뱉습니다. 침을 던지면 '빡치다'(음.. 이런 말은 옳지 않은데.. )는 생각이 나고 진짜 짜증이 나요. 침이 따라와서 터져요. 몰래 던질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스키크에게만 보여요.
루는 아이스크림을 던져요. 지면 아이스크림을 자기 얼굴에 묻혀요. 뭘 던지면 미끄러워요.
레온은 표창을 던져요. 사탕 먹으면서. 주머니에 네 발을 막 던져요.
샌디는 코에 빨갛고 못생긴 게 나와 있는데 깜깜한 곳에 들어가면 자기 모습이 안 보여요. 몰래 쏠 수 있어요.
재키는 뽀잉뽀잉 뛰어요. 엄청 쌔고 몸에 붙을 수 있는데 데미지는 안 깎여요
팬은 엄마처럼 뚱뚱하고 가방이 안 보이는데 매고 있어요. 기관총을 쏘고 데미지가 엄청 쌔요
페니는 돈이 떨어지는 무슨 대포 같은 것을 던져요.~~~"
혹시 브롤 스타즈를 하시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해도 양해를 부탁드린다. 1주일에 2시간 게임하는 7살 아이가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한 것을 난 메모했을 뿐이다. 사실 더 긴데 잘랐다. 누나 어디 갔지? 우리 어서 쫓아가 보자!
문득 이렇게 기억 왕성한 암기력으로 세계사나 한국사 좀 줄줄 외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사람이 가장 행복한 때는 정신과 감정과 이성과 마음이 온전히 하나에 몰입했을 때라고 한다. 이때는 도파민을 넘어 세로토닌의 분비가 활발하여 뇌가 활성화되고 창조와 무한한 영감이 발현된다.<몰입, 윤홍식 지음> 비록 게임이지만 하나하나 캐릭터를 눈앞에 그리듯 몰입하여 읊조리는 아이 모습에 자발적으로, 즐거워서 하는 일에 대한 가능성을 본다.
최근 숭례문학당 독서토론 리더과정을 수료했다. 1주 1권의 책을 읽고, 분석하여 논제를 뽑고, 진행 실습하는 프로그램이다. <투명인간>, <모멸감>, <침묵으로 가르치기>, <달과 6펜스>, <자유론> 등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메시지가 담긴 책으로 8주간 씨름했다. 마지막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끙끙대며 이해하려고 3일 밤낮을 붙잡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자 희열이었다. 나는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고, 삐뚤게 보고 싶었고,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 토론하는 시간을 상상하며, 내가 소화하고 터득한 의견을 내고 싶었다. 타인과 전문가와 칼럼과 대중의 말이 아니라 내가 사유한 것들 말이다. 결과적으로 내 성에 차진 않았지만, 나는 한 권의 책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몸부림치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배움이란 이런 것이다. 90세 만학도 할머니가 영어를 통달하는 이야기, 세 자녀를 돌보면서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20대와 나란히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야기, 8살 아이가 한국사 왕들의 계보가 너무 재밌어서 줄줄줄 암송하며 자랑하는 이야기, 우리는 배움이 즐거움이란 것을 너무나도 늦게 알았다. 왜 배움이 즐겁지 않을까. 우리 자녀들 학창 시절이 가장 배움에 대한 빛나고 찬란한 욕구로 채워져야 할 것인데 어디에 눈을 돌리고 있는걸까.
나는 작은 도서관에 중학생 독서토론 수업 제의를 해보았지만 반응은 "중학생들은 지난번에도 모집을 여러 번 해봤지만 책 읽을 시간이 없나 봐요. 모집이 되지 않더라고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방학 동안 유튜브, 코딩은 하지만 독서수업은 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중고생 프로그램은 아예 기획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학 동안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함께 책 읽고 토론하는 즐거움은 어릴 때 알게 될수록 더 흥미진진한 일인데 아쉽기 그지없다. 하긴 나 또한 40대가 되어서야 진실로 하고 싶은 것들을 맞닥뜨렸으니까, 생각할 여유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성찰할 새도 없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배움의 기회는 언택트 시대를 맞아 엄청나게 열렸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네트워크로 유수한 명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대다. 배움에 목마른 자들은 누구나 광장으로 들어와 명품 세계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유독 공교육은 20세기 내용과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입시와 취업과 스펙에 여전히 짓눌려 있다. 3-4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닭장 같은 생활을 견뎌야 하는 자녀들이 너무 불쌍하다 못해 화가 난다. 최근에 이어지는 고등학생들이 성적과 관계에 대한 비관으로 소중한 생명을 끊는 사례를 보며 분통 터진다.
교육부는 혁신학교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학생 개개인을 들여다보겠다는 교육을 천명하고 나섰지만 그런 시도는 초등학교에 머물러 있다. 사회 인식과 고등학교와 대학의 연계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나 또한 대안 교육으로 홈스쿨을 선택하고 고군분투했었지만 어느새부턴가 공교육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비극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수학 문제집을 사주며 '학교 진도를 따라가자'고 격려하는 나 자신을 보며 '그래도 기초교육은 시켜야지'라는 마음과 '배움의 즐거움을 어떻게 조화롭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실험 중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과 '배움의 즐거움'이다. 행복한 시절, 잊지 못할 어린 날을 간직하게 하는 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사랑받았다는 자존감과 작은 꽃을 보며 우주를 봤던 경이로운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일 게다. 세 자녀 엄마로 자녀들에게 다시는 오지 않을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선물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