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어디까지 침해당할 수 있을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by 겨자씨앗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받고 있다. 더구나 이런 억압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정부 지침에 준수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비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사업장 문을 닫고, 학교를 가지 못하고, 종교 생활을 하지 못하고, 더군다나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에 모두 수긍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상황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당연히 제한할 수 있다는 확고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맞다. 치료제도, 백신도 변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심하고, 방역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에 대하여 한 번 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고귀한 자유'의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가 어느 정도 개인과 가정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지 논의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4주전, 코로나 4단계가 되면서 종교 대면 예배 금지에 대하여 몇 교회들이 "개인의 종교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행정법원에 이의 신청하였고, "침해가 인정된다며 19인까지 예배/미사/ 법회를 허용한다"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최근 99명 '허용'이란 허락이 떨어졌다. 처음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유럽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사업장을 제한한다는 조치에 항의하는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국가가 시키는대로 무조건 따르기만 하는 준칙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에 뿌리깊은 문화 차이를 느꼈다.


원래 좋은 것은 있다가 없어지면 확연히 드러난다. 이 좋은 것을 얻기까지 선조들은 많은 피를 뿌렸다. 나는 1년에 한 번 씩은 천안 독립기념관이나 서대문형무소,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 전쟁기념관 등을 찾아간다. 이러한 풍요와 여유를 얻기까지 얼마나 큰 격변을 겪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다. 최근에도 천안 독립기념관에 다녀왔다. 아이가 어렸을 때 데리고 갔을 땐 나오지 않던 반응이었는데, 9살이 되고보니 느껴지는 것이 있었나보다. 아이는 며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감옥에서 고문 당하고, 전쟁의 참혹한 영상을 보면서 너무 무섭고 두렵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또 전쟁이 나면 어떡해요....."하며 울먹였다. "그래. 지금도 우리나라 반대편에선 아직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단다. 우리나라도 잠시 쉬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 이 땅에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돼. 그러니까 나라를 잘 지키고, 소중한 것을 잊지 말고 감사하자꾸나."


얼마 전에 독서토론 수업책은 <안네의 일기>였다. 든 것들이 빼앗긴 순간에도 그녀를 버티게 만든 건 '내면적 의식의 자유'였다, 양심과 생각과 감정,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에 대하여 마음껏 사유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인간만이 가진 신성하고 고유한 진리다. 그만큼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은 육체와 정신, 영혼까지 책임있는 존재이며 권한이 부여된 만큼 자신과 타인을 존중히 여기고 함부로 다루어선 안되며, 그렇기에 인간은 숭고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인간은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는 나무와 같은 존재다."


19세기 존 스튜어트 밀은 나무의 모습이 다르듯 개인의 고유한 개별성도 이처럼 소중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명저인 <자유론>을 썼. 밀은 책에서 당시 사람들이 고귀하고 특별한 개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중매체나 여론에 이끌려 자기 고유의 기질보다는 군중 속에 파묻히거나 굴레에 묶여 있는 것을 좋아하여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어떤 것도 강력하게 열망하지 않는 상태, 즉 '영혼의 노예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20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지금도 유효한듯 하다.


분명히 과거보다는 다양성과 개성이 증가됐다. SNS의 발달이 획일화라는 면에 기여하고 있지만, 반면 독특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소위 뜨려면 차별화, 독특성, 고유성, 전문성을 요구한다. 또한 그동안 각광받지 못했던 분야들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대중매체와 여론으로 몰개성 시대를 살아간다. 소위 뜨는 사업, 직종, 몇몇 인플루언서나 다국적 CEO들 한마디에 세계 전체가 출렁인다. 언젠가 동네에 왠 떡볶이집이 이렇게도 많은지 놀란 적이 있다. 한 골목 건너 떡볶이집이 즐비하고, 바로 옆에 치킨 가게가 있고, 빵집이 있다. 카페는 말해 무엇하랴. 대형 프랜차이즈 옆에 작은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비슷비슷하다. 이런 모습들은 '자본'이라는 거대한 이념과 '대중과 여론'이라는 매체에 파묻혀 깊은 사유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간과한 채 추종하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코로나19로 사실, 더 자유로워진 부분이 있다. 제한된 만남으로 우리는 더많은 시공간상 자유를 갖게 됐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의식과 기호와 표현과 결사 등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지만 그것이 방만함이나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기에 사실 '제한된 자유'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자녀가 생기면 부부와 자녀에게 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따르듯이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자유를 말함이다. 품격있는 사회를 이루려면 고도의 시민의식이 필요하듯, 이 자유는 타락하고 변질된 의미의 자유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난 렇게 결론을 내고 싶다.

자신의 색깔과 고유의 기질을 대중과 여론에 흔들리지 않으며 지켜나갈 것.

내게 주어진 자유는 제한된 자유로 책임과 결과가 수반된다는 것.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할 때, 의문을 가지며 신중하게 생각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