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브런치북-2편

내개 N잡러는 타인과의 연결이다

by 겨자씨앗

타인과 연결된 배움, 나를 찾아가는 여정



‘세상이 배움터다'라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시작했다. 처음엔 견학을 가겠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겠다, 자유롭게 커리큘럼을 짜보겠다,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겠다는 결심이었다. 또래가 학교에서 수업하는 동안 나와 아들은 광화문을 쏘다니고, 안중근 기념관에서 일본의 재판 과정을 듣고, 서점에서 하루종일 책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카페에서 함께 차를 마시기도 했다. 색종이만 주구장창 접어보고, 로봇 만들기만 하루종일 며칠을 하는 몰입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가는 곳엔 언제든 아들도 함께였기에 어른들과 만남의 자리도 잦았다. 하지만 혼자만의 배움을 2년 반 정도 이어나가면서 차츰 매너리즘과 시간 관리가 허술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아들과 나의 성격과 기질 차이였다. 나는 계획적이고, 반듯하고, 모범생 같이 주어진 것들을 해내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지만, 아들은 개의치 않는 성격에,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고, 틀에 맞추는 걸 싫어했다. 초등학교에 처음 가면 네모난 바른 글씨 안에 글씨쓰는 것부터 배운다. 같은 단어를 수십번 쓰게 하는 지루한 작업을 시키는 이유가 있다. 기초쌓기는 지루하고 인내가 필요하다. 아들은 공부하는 동안에 들썩들썩 하는 태도와 시키는 것들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이거나 하지 않으면 화가 나고 부딪히면서 서로 상처내는 일이 잦아졌다. 학교에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배움의 즐거움이고 뭐고, 내 한계는 여기까지구나. 공교육과 다른 배움의 참맛을 경험시키고 싶었지만 나는 안되겠다.


그때, 연락왔던 홈스쿨 엄마들의 모임. 갑갑하고 답답했던 혼자만 걷는 것 같은 외로운 길에 빛과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6가정에 자녀들이 5살부터 17살까지 19명의 공동체였다. 허물없이 형, 누나, 동생하면서 1주일에 1번이지만 함께 집에서 해온 밥을 나누고, 씨앗반, 틔움반, 나무반으로 나누어 비슷한 나이로 엮어 엄마들이 직접 수업을 준비했다. 미술활동, 과학실험, 독서토론, 프로젝트 수업, 발표 등을 함께하고 점심때는 농구를 하고, 봄과 가을이면 소풍을 다녔다. 학교와 직장으로 바쁜 시간에 우리는 자연과 계절과 여유를 느끼는 것도 삶의 선물이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가 터졌고, 이후 지금까지 근 2년 동안 대면이 중단됐다.


다시 혼자만의 배움의 동굴로 들어가게 됐다. 고시원에서 몇 년동안 시험을 앞두고 씨름하는 사람들의 괴로움과 자괴감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아마 도전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는 못살겠어. 알지만 한줄기 희망 줄을 붙잡고 버티는 것일게다. 아들이 겪는 것은 그대로 나도 겪는 길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가 이어지면서 사람과의 만남도 급격히 줄어들었고, 말도 줄었다. 일상의 대화는 꼭 필요한 학습적인 것과 안부를 묻는 정도 따위였다. 나도 아들도 만나는 사람이 별로 없어, 각자 시간을 가졌다. 박물관도, 도서관도, 교회도, 학원도, 심지어 두려움조차 갖게 했던 2020년이라는 한 해는 감각도 무디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그나마 성인인 내겐 SNS라는 것이 있어 어느 정도 소통하고 지냈지만, 4학년인 아들은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 지인이 없었다. 그렇게 지낸 아들은 무언가 뇌가 퇴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만큼 말을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표현들이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고, 한참을 뜸을 들였다. 자신도 답답한건지 급격한 감정의 변화가 온 것인지, 말도 잘 하려들지 않았다. 원래 조금씩 진행되는 것들은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고혈압과 당뇨병 같은 생활습관 병들이 서서히 몸을 망가트리며 시한폭탄처럼 자리잡는 것 같이 말이다.


언어치료나 심리치료, 정신과를 가보아야 하는 걸까. 그때 결심이 선 것이 아들 또래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를 내가 마련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홈스쿨 자녀들과 함께 책읽고 이야기 나눈 경험, 숭례문학당에서 배웠던 논제 뽑는 실습들, 오래 전 취득했던 독서토론 자격증까지 죄다 끌어모아 동네 도서관에 수업 진행을 의뢰했고, 관장님이 감사하게도 허락해주었다. 아들때문에 시작한 일이 어느새 나의 꿈이 되었고, 내겐 주부라는 10년의 직함과 함께 ‘독서활동가’의 새로운 N잡러 길이 열리게 됐다. 생각지도 못하게.


독수공방하며 자신의 지식 산맥을 이루는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이제는 지식은 상호연결되어야 하며, 다양한 견해와 극과 극으로 상반된 만남 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시대가 됐다. 내게는 아주 작은 연결이지만, 책을 통한 배움의 고리와 연결은 나를 찾아가는 또다른 방식이다.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홈스쿨은 진행형이다. 나는 매번 다른 배움의 형식으로 변형하며 나아간다. 아들도 자신을 찾아나갈 것이며, 무엇을 왜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으며 타인과 부딪쳐 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이 변화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변화시키면 안되는지를 분별하며 배움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njober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물 같은 하루, 공동 브런치북 발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