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브런치북 3편

내게 N잡러는 타인과의 연결이다

by 겨자씨앗

3. '사람책'을 만나는 기쁨

독서활동가로 살자고 결심하게된 건 책이 주는 믿음때문이었다. 책은 재료다.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요리하여 먹고 나눌 것인지는 내 몫이다. 오래도록 혼자 읽어온 책을 소위 ‘사람책'을 경험한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유시민씨와 독대할 기회를 갖게된다면 책 10권 이상을 읽는 효과를 누리게될것이다. 그분에게서 핵심 중의 핵심, 최근 견해를 듣게 될것이다. 더구나 그의 강의가 아니라 나와 대담한다고 상상해보라. 짧은 시간에 나의 시야와 혜안이 얼마나 넓어지겠는가.


혼자만의 사유는 편협과 울타리 안에 갇히기 쉽다. 나는 독서토론 현장에서 사람들 말에 귀 기울이며 속으로 감탄과 감복을 많이 했다. 같은 장면을 다르게 보는 능력, 숨겨진 의도를 알아차리는 심리관찰력, 연결 고리를 이어 맞춰 첫과 끝을 꿰매어 가는 추리, 유창한 말솜씨와 탁월한 해석을 해내는 분들을 보며 주눅이 들려다가도 세상 재밌는 썰전이 이곳에 있구나 싶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읽어주는 남자]는 15살의 미하엘과 35살의 한나의 사랑을 통해 전범 세대와 전후 세대의 미묘한 관계를 말해주는 책이다. 처음엔 작가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뭐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하는 여자를 이해하라는거야? 동정을 사려는겐가. 불쌍히 여기라고? 왜 이런 책을 썼을까. 책을 두 번 읽었다. 영화를 두 번 봤다. 토론을 두 번했다. 그제서야 문맹인 한나의 심정이 내 마음까지 들어왔다.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얼룩져 구원받지 못하는 아픔이 독일이었고, 전범 세대가 걸었던 길이었다. 내가 한나였다면 어쩌면 나도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몰랐다.


사람이 책이라면 책이 그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2년 정도 중학생 독서토론을 이끌어왔다.


한동일 작가의 [라틴어 수업]을 함께하면서 공부와 성공, 습관과 학업, 고민과 진로 등을 나눌 수 있었다.


"너희들이 가진 위대한 유치함은 뭐니?"


어떤 친구는 가족들이 자신의 일기장을 보지 못하도록 헬라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또 한 명은 세계 역사책을 읽다가 메소포타미아어가 신기해서 자기 이름과 여러 문장을 써보았다고 했다. 중학생인데 화이트 해커가 되고 싶어서 C언어와 자바책과 씨름 중이라 했고, 연설을 잘하고 싶어서 유명 연설문을 찾아본다는 학생, 본인이 작곡한 곡을 그 자리에서 들려주기도 했다. 왜 시큰거렸는지 모르겠다. 이들도 책상 앞에서 고뇌하며 성찰하는 한 인간의 군상이구나. 고치 속에서 날개를 펼칠 순간이 오길 기다리고 있구나. 나는 그 순간 청소년이 아닌 장성한 객체로 그들을 대하게 됐다.


"너희들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니?"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사람이요.

"긍정적이고 도전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하는 사람이요."

"순수하고 따뜻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요."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이요."

"한결같이 청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요."


그래 그래. 너희들이 바라는 그런 어른의 모습이길 나도 바라.


관계는 누군가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다. 사람책모임은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이어주었고, 단 한 번의 만남조차 인상 깊은 각인을 남겼다.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았어도 책을 보면 함께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흔적과 자취를 남긴다. 더군다나 인생 띵작과 함께한 사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그리하여 어느 때부터인가 점점 참여자에서 인도자로, 방관자에서 설계자로 나아가게 됐다.


책이란 존재는 자신도 모르게 영혼과 감정, 마음에 스며들어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형성한다. 책의 힘을 알고 믿기에 나는 오늘도 자라날 아이들에게 심어줄 작품을 신중하게 선택한다. 성별연령을 초월하여 타인과 연결되길 바란다. 참된 지식이란 타인과 동질감, 일체감을 느끼며 그 사람의 영혼을 껴안고 보듬을 줄 아는 것임을 알게 됐다. 사람에게 배어나오는 그윽하고 다양한 향기를 맡으며 나를, 남을 변화시키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일을 하게 됐다. 내게 N잡러는 수단이 아닌 인생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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