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흐르는 이발소

동네 가게 이야기

by 겨자씨앗

-오늘은 휴뮤일인데요~


컴퓨터 앞에서 심심풀이 카드 게임을 하는 여사장님 말씀이다. 아이들과 함께 동네 벽화를 찍고 걷다 눈에 띄는 이발소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추억이 흐르는 이발소>란다. 이발소 전경도 만화와 50년 전통이라는 큼지막한 글씨체가 돋보이는 것이 여느 가게와 분명 다르다. 표주박, 장작, 옛가로등도 풍취를 더한다. 휴무일이라는 말에 다시금 발을 돌리려 했지만, 왠지 이곳에서 머리를 깎고 싶다. 잠시 볼일보러 나가셨다는 사장님을 기다리기로 하며 내부를 둘러본다. 빈틈없이 천장까지 꽉 메운 소품들은 미니 박물관이다. 1965년 국어교과서를 비롯해 축음기, LP판, 옛날 엽전, 10전짜리 지폐부터 시작해서 안중근 의사 사진, 종 금상, 특별상 수상 상장과 이무송 등 유명 연예인들과 찍은 사진이 쭉 전시되어 있다. 옛날 영화 포스터, 전화기, 단검, 장검, 각종 이발 용품이 즐비한 가운데 음악도 다방에서 나올법한 트롯트가 흘러나온다.


한쪽 벽면엔 <성실>이란 글귀가 눈에 띈다.

하루의 일과를 성실하게 보내라

하루의 아침은 오직 한 번 뿐이고

젊음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이윽고 들어선 백발 사장님. 목소리도 우렁차시고 위엄있으셔서 직접 대하지 않으면 아직도 왕성한 중년이시겠거니 할 힘있는 음성이다. 쉬는 날이라 맘껏 구경하고, 사장님도 흔쾌히 아들 둘 머리를 깎아주시겠단다. 새하얗고 빳빳한 흰 색 가운엔 오른쪽 앞에 명징하게 이름이 새겨져있다. 70년 전 제작한 수동 바리캉으로 다듬더니, 구렛나루 부분은 60년대 면도칼을 사용하며 뽀족하게 세심한 마무리를 지으신다. 가위를 한 바퀴 돌려가며 리듬을 타는 모습이 공연을 보여주는 것 같다. 10분 만에 완성된 이발은 숯을 많이 쳐냈음에도 전혀 적어보이지 않으며 처음 그대로의 양을 간직하듯 그대로 머금고 있다. 앞머리는 마치 펜으로 머리칼을 그린듯 한가닥 한가닥이 살아 유연하게 움직이며, 지금까지 보지 못한 스타일을 만들어내셨다.


-이야~ 너 멋있다. 머리 모양이 끝내준다. 아주 잘했다. 멋있어


우리 아들에게 하는 소리였지만 사장님은 마치 제대로 된 예술작품을 완성했다는 듯이 흡족한 표정이다. 지난 60여년 가까이 저 가위와 면도칼, 바리캉을 얼마나 휘두르며 한 명 한 명 완성해내셨을까. 한 길 걸은 외길 인생. 자부심과 자신감 가득한 눈빛과 태도로 오늘도 멋지게 살아가실 것 같은 사장님 눈에서 행복한 빛을 본다. 그분의 식견과 몰입하는 모습에 성스러움을 느낀다. 성스러움은 꼭 수행이나 묵상, 기도할 때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밤낮 사투를 벌이는 모습(일중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지에 올라 초월하기까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나보다 남을 위해 헌신을 선택하는 모습에서 평범한 일상에서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것 같다.


학생 컷트값 8000원. 유명 미용실에서 한 것보다 더 멋진 작업이 싸기도 싸다. 사장님. 제가 드리고 싶어서요. 20000원 드릴께요. 아들 둘을 깎았으니 겨우 4,000원 팁드린 거였는데 한사코 세자녀 키우는 건 애국자지~ 하시며 거스름돈을 돌려주시고, 가게 앞에서 같이 사진 한 번 찍지 하신다.

아들 숙제로 나선 동네 탐방, 이것이 제대로 된 과제지.


손에 힘이 허락하는 한, 후회없이 끝까지 이 길을 갈 것이라는 말씀에 머리 까만 젊은 시절 캐리커쳐들이 마치 살아있는듯 응원하며, 우리에게 잘가라고 손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