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어떻게 사랑하게 됐을까

사랑

by 겨자씨앗

글을 쓸 때 나의 진정성이 드러날까, 만나보면 나라는 인간이 드러날까. 어느 쪽이 더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브런치에 글쓰기 좋은 이유는 나의 지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을 지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글이라는 것에 관심 있거나, 내가 이룬 쾌거를 보여주고 싶은 분들에게만 소수 알렸다. 지인들은 이미 나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 같은 것을 갖고 있는데 글을 보면서 어라~원래 이런 이미지였어?라고 생각하는 빌미를 주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에 대해 백지처럼 여기는 사람들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다.


사람을 만날 때 어느 정도 위선과 허영과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상대방이 더 위로를 받고, 안심을 하는지 분간하며 말한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나의 체면과 내가 어느 정도의 동정심과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음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일들은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상대방 의견에 100프로 동조하고 넘기려고까지 한다. 아직까지도 나는 사회적 위신과 평판을 중요하게 여겨서인지 내 진심을 다 쏟아내기 힘들다. 내가 정말 말하는 대로 마음까지 그러하다면 좋겠다.


작가는 다르다.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악당을 만들어내어 내 생각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나는 작품을 읽을 때 글 자체보다는 작가의 인생과 스토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사람이 왜 이 작품을 썼으며 어떻게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가진 자였는지 그것이 더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은연중에 그 사람의 진정성이 더욱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인이 그러더라.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지냈던 모습과 글로 읽는 내 모습이 다르다고 했다. 어떤 모습이든 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러한 것을 깨뜨릴 생각은 없다.

앞으로 쓸 이야기는 팩트와 픽션의 중간단계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아니기도 하다. 상대방 입장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처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이름만 소개한다면 우루사와 비타민이다. 결혼 즈음, 비타민이 붙였다. 곰과도 이런 곰이 없다고 날보고 우루사라고 했다. 그럼 당신은 뭐냐고 그랬더니 자신은 평생 내게 비타민 같은 존재가 돼줄 거란다.


부부가 사는 이야기는 극히 개인적이기도 하고, 살아봐야 아는 일이고, 남의 집 부부이야기가 뭐 그렇게 관심 있겠는가.

한 평생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제한적인 삶이다. 사실 로망이나 로맨스는 저 멀리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심장의 떨림, 두근거리는 설렘, 발그레한 홍조나 스치기만 해도 전기가 찌르르하는 느낌은 더 이상 없다는 얘기다. 아침에 찌뿌등해 보이는 피곤한 얼굴을 매일 봐야 하고, 결혼 전 눈치채지 못한 습관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언제 들어와요?(코로나19는 정시 퇴근은 이뤄냈다. 이젠 이 말은 뺀다.) 밥은 먹고 오나요?"가 퇴근쯤 보내는 유일한 메시지다. 밥을 먹고 들어오면 난 간단하게 아이들이랑 후다닥 먹을 수 있고, 좀 더 책이나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집에 와서 먹는다면 나의 시간은 현저히 줄어든다.

찌는 듯한 불볕더위다. 땅 속에 있는 지렁이가 너무 뜨거워서 지면으로 나와 피신하려 하지만 결국 타들어가고 마는 날씨다. 너무 더워서 모기가 부화되지 않는 날씨다. 갑자기 하루 전에 비타민이

-나, 2박 3일 휴가 냈어.

-에? 이 더위에 어디를 가요? 코로나 4단계에 뭘 한다고.. 워터파크도 성수기라 비싸서 우리 다섯 식구 못 가지~

-천안이 특가나왔어. 2만원대더라구. 천안갈까?

그렇게 하루 전에 결론 내리고 워터파크와 독립기념관을 가기로 하고 짐을 쌌다. 별다방에서 맛있는 케이크와 커피를 사주겠다고 해 무려 도합 1,000칼로리되는 케이크를 2개나 먹었다.


워터파크로 가기로 한 날, 나는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타이레놀을 두 알 먹고, 비타민과 오메가 3을 챙겨 먹고, 꿀을 잰 마늘을 먹으며 오늘 하루 잘 버티기를 바랐다. 수영장은 미취학 아동을 물에 혼자 절대로 내버려 둘 수 없기에 보디가드 역할을 해야 하는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장소다. 골골한 두 사람은 늘 워터파크나 놀이공원 가기를 두려워했다. 놀이공원을 가면 한 명은 토하거나, 또 한 명은 머리가 어지러워 한참을 속의 메스꺼움을 가라앉히려고 앉아 있어야 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12시에 들어갔는데, 1시쯤, 왜 시간이 멈춰있나... 폐장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져 절로 한숨이 나온다. 썬베드에 누우니 좀 숨이 쉬어진다. 파도풀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눈이 스르르 감긴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 그나마 바람이 땀을 좀 식혀준다. 의식을 찾았다가 잃었다가, 정신을 잃다가 다시 깨어나길 반복한다.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고, 피가 다 머리로 쏠린 것 같다. 눈을 뜨니 다섯시다. 1시간을 온천물에서 버티고, 딸과 사우나실에 와서 겨우 주섬주섬 챙기고 숙소에 들어간다.


다음날, 독립기념관에서도 두통의 시작이다. 잠을 자도 해결이 되지 않으니 혈압이 높아서 그런가... 뇌종양이 머리가 아프다던데... 위염인가, 편두통인가. 더위를 먹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이대로 계속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력으로 가족들을 위해 버틴 후, 3시쯤 서울로 가자고 했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두통이 가라앉질 않는다. 독립기념관에서 순국 열사들을 보며 나는 명분 없고 의미 없는 이 두통에 절망을 느낀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고, 어떤 의욕도, 기력도 없게, 먹을 수도 없게 만드는 이 고통은 서글픔마저 든다. 책도 읽을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고, 함께 이야기도 할 수 없으니 나는 누워서 기도만 할 뿐이다. 최소한의 생활만 간신이 이어간 3박 4일 동안 비타민은 세 아이를 워터파크에서 종일 돌보고, 독립기념관에서 따라다니며 설명을 해주었고, 집에 와선 밥을 차리고, 키즈카페를 데려가서 놀리고, 자장면을 먹이고, 삼계죽을 사 오고, 장을 보는 일을 했다. 저녁엔 머리와 발 마사지를 해주고, 청소를 했다. 나는 꼼짝 않고 누워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유서'라는 걸 생각했다.


"비타민님. 나는 다른 생애에 태어나면 비타민님과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종종 말했죠.

비타민과 결혼하고 지낸 10년... 사실은 내게 후할 정도였습니다. 넘치게 사랑받았고, 금쪽같은 세명의 새끼들을 보았고, 꿈을 꾸게 해 주었죠.

가난한 남편과 결혼해주어 고맙다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평생 대할 거라는 약속 지켜냈지요.

핸드폰 연락처엔 '이오일사'로 저장되어 있지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사랑.

사랑하며 꿈꾸고 살았으니 참으로 족한 삶입니다. 늘 때가 있을거라며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가다보면 나만의 길을 갈 수 있을거라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된 것이라고 말해주었지요.

싱크대가 늘 물 범벅이 되고, 밥이 설익고, 무좀 발톱에, 잠버릇 고약한 허당이라도

이 세상에 여자는 우루사뿐이라며 싱글벙글해대는 남편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집 마련은 적당하게 하고, 평생 맛있는 거 먹고, 여행 가서 글 쓸 소재 많이 주겠다며,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독서활동가도 마음껏 하게 될 날 있을 거라고 했지요.

별다방 컵에 내 얼굴을 붙이고 싶다는 당신께 정말 여한 없는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며 살게 됐을까...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모험과 로맨스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면서 기록을 남기고 싶은 사람의 마음 아니겠어요?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을 기억하며, 앞으로 이 부부가 사는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