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에 이상이 있음은 진즉에 알았다. 그저 노안이 왔나 보다고 생각하며 돋보기안경을 썼다. 내 나이는 40대 중반이다. 이 나이가 되니 여러 가지 몸이 보내는 신호가 왔다. 눈, 머리카락, 무릎, 혈관, 기력 등. 선천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관리 부족도 인정한다. 시력이 0.7, 0.2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책 읽는 것이 불편하여 이번엔 참고만 있을 수 없겠다 싶어 안경점에 갔더니, 백내장이 의심된다며 안과에 가보라는 것이다. 왼쪽 눈 시력이 아예 잡히질 않는단다.
백내장 들어보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다는 거지. 눈에 대해선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침침하긴 했지만 보이니까. 수정체 이상으로 수술비도 천차만별이고, 스마트폰 시대, 40~50대도 백내장이 급증하여 실비에서 제외시킬 정도이니 현대인들이 얼마나 눈을 혹사시키는지 모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전기가 주는 큰 혜택이 인류에겐 밤낮 구분을 없앴고, 산업 혁명과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심한 피로감과 몸의 학대가 급증하게 됐다. 대상 자체는 선과 악, 장점과 단점을 포함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늘 인간의 몫이다.
동네 안과에 가서 백내장 수술비가 얼마 정도인지, 진짜 그건가... 걱정하면서 양쪽 눈 CT 촬영까지 했다. 결과는 의외인 '황반 변성'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이건 또 뭔가. 딱히 치료법도 없고, 건성과 습성이 있는데 습성의 경우 2년 이내 실명, 건성의 경우도 차차 진행되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에 망연자실했다. 원래 '날벼락'은 하루아침에 느끼는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은 순식간이지만 내 몸속엔 20년 동안 진행되어 왔었거나,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할수록, 암담함과 참담함,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이 밀려왔다. 내가 눈을 잃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뭔가. 누군가에게 계속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주변에 시각장애를 가진 분이 있다. 늘 아내의 손에 힘입어 살아가신다. 고 강영우 박사도 훌륭한 일을 하셨음은 인정하지만 아내가 알뜰살뜰 늘 옆에서 보살피셨다. 청각장애, 농아인도 내 주변에 볼 수 있다. 역시 일반 사람들과 대화할 땐 아내가 옆에서 통역을 담당하신다. 그러고보니 장애우가 있을 텐데 보기 어렵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엔 장애우 주차구역에 늘 주차하는 차량이 있다. 젊으신 분이 휠체어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본다. 2020년도 기준으로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은 252,324명으로 전체 인구의 0.5% 정도다.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을 합치면 인구 5%를 차지한다.(보건복지부 등록)
당연한 것들로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싶을 때가 있다. 대단한 인생이 아니어도 건강하고, 알콩달콩 사는 것, 으리으리한 남부러워할 만한 집이 아니어도 한 몸 뉘일 곳이 오늘도 있다는 것, 아무 사고 없이 모든 식구들이 편안한 거처에서 안전하게 잘 수 있음이 감사하다는 것 말이다.
원인도, 치료도 알 수 없는 병명을 가지고 상급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한 결과, '황반 모세혈관확장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역시 이것도 희귀하긴 한데,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그저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니 못내 안심되었다. 그래도 실명은 아니잖아. 앞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선글라스를 끼고, 눈을 너무 혹사시키지 않고, 채식 식단으로 혈관을 맑게 하는 것 정도밖에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래도 너무 감사한 걸. 앞으로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들이.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갔는데, 일하는 아저씨가 스마트폰을 거의 3cm 정도 거리로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아련했다.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쓰시고 밤낮없이 일하시는 아저씨에게 새삼 박수를 쳐드리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감동되었다. 모든 사람은 '결핍'이 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가지고 있는 결핍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나도 주변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다. 앞으로는 보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 꼭 보아야만 하는 것을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고, 일상을 산다면 만족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