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때

살아가다, 배우다

by 겨자씨앗

#1. 침묵하지 않은 이야기


우리 반에 확진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외출을 삼가해주시고 지금 즉시 가까운 보건소에 가셔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큰 숨을 들이마시게 된 이 문구는 날벼락 같은 것이었다.

내일 딸아이는 큰 행사에 순서를 맡아 리허설이 있는 중요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급한 마음에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를 약국에서 구매했다. 15분만에 나오는 결과였기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당연하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결과는 음성이었다. 보건소 PCR 검사도 음성.

보통 사무실에 일하는 성인들 경우, 음성이면 그 다음날, 바로 출근한다. 결과가 나오면 일상 샐활이 가능하고, 코로나 선별검사소 선생님도 음성 나오면 괜찮다고 했다. 물론 학교의 제재는 잠복기라는 경우를 대비해 내리는 강력한 방역이다.


이 상황을 3자의 입장에서 듣는 경우였다면,

어머~ 당연히 격리해야죠. 학교 방침에 따라 모두 안전할 때까지 지시에 따르는 것이 맞지요..라고 했을텐데..

막상 평생 2학년이어야 할 수 있는 행사에 ,다시 오지 않을 영광스런 기회를 놓치는 것이 도저히 마음에 용납이 되지 않고 들쑤시기 시작했다.


얘기 안하면 모르는 일이다...보건소 결과도 음성이고, 증상도 없으며, 가족도 모두 괜찮은 상태이고, 이건 함구하고 지나가면 되는 일이다...나만 입다물면 된다. 아이도 얼마나 기대하며 그동안 준비했는데. 새 한복도 구입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격려도 받고, 노리개도, 배씨도 준비하면서 옷걸이에 걸어놓고 한 번씩 들여다봤는데. 어떤 색깔이 곱고 좋을지 사극을 참고하면서 남편과 몇 시간을 상의했는데. 함께 하는 친구들과 통화하면서 엄마들끼리 감사와 소망의 말을 나누었는데. 더군다나 최고 리더의 자제분도 함께하는 자리라서 인사드리고 싶은 자리이기도 했다. 말을 하게 되면 그 행사에 아예 우리 가족은 모두 참석할 수 없다.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한 편에는

아니다...혹시 모르지. 우리 아이로 누를 끼칠 순 없지. 나중에라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비난받을 일인가. 사람이 혹시라는 일이 있는데 만에 하나...잠복기라도 있다면...보건소에서 역학조사라도 한답시고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어디어디 간 것을 숨길 수 없을텐데 뒷 감당을 어찌하려나...


침묵하느냐, 마느냐 고민은 밤새 이어졌고 뒤척이며 처절한 양갈래의 기로에 서게 됐다.


다음날, 리허설 30분 전, 결국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나는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결과에도 승복하자. 음성이니 괜찮다고 하면 하도록 하자. 당연히 안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딸도 한참 울었다. 나로 인함이 아닌 타인이 겪은 일들로 막힌 것이 하염없이 슬펐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진정 평안했다. 깨끗하게 고요해졌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고,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침묵하지 않았던 이야기다.


#2. 침묵한 이야기


아들은 어린이 대회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나와 공부를 했다. 예전 같으면 함께 모여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준비하는 시험이었는데, 코로나로 모이지 못해 가정에서 준비하라고 했다. 매일 30분씩 조금씩 시간을 정해 한학기 분량을 해야했다. 드디어 내일, 시험날이 다가왔다. 안내 문자가 오지 않아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담당자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어머님...죄송하게 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확인했어야 했는데...00가 시험 등록을 한 줄 알았는데 누락되어 있더라고요.

네 아니...어떻게 그런 일이. 제가 선생님께 신청했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당연히 00가 지원신청서를 낸 줄 알았는데...너무 죄송해요. 주관측에서 시험은 볼 수 있지만 순위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처음엔 너무 황당했다.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신청이 끝난 줄 알았던 나의 잘못도 있었고, 확인해 주지 않은 선생님이 섭섭하기도 했고, 담당자분도 아들이 나가는 것을 알고 계셨을텐데 여러가지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난감했다.


아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포기할 것인가.

모른척하고 메달 순위에 상관없이 대회에 나가게 할 것인가. (속으로 너는 어떤 상도 받지 못하게 될거야. 그냥 참여만 하는거야...)


이걸 침묵해야 돼, 말아야 돼...늘 이걸 말해야 하나 말하지 말아야 하나는 내 결단과 결심을 요구한다. 책임과 방향을 필요로 한다. 파급효과를 예상하게 한다. 어떤 것이 옳은 길인가. 거짓과 진실. 우월함과 진정성. 고민은 끝이 없다. 그러나 결론을 요구한다.

그래. 이번 사건은 덮자.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다. 만약 사실대로 엄마도 선생님도 착각한 것 같아. 서로 신청을 했겠거니...생각했던 것 같다. 어떡할래 시험을 볼래 말래...했다면 아이는 얼마나 원망스럽게 생각할 것인가. 이후 선생님과의 관계도 틀어져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이건 선생님도 모르게 해야 한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다음날 아침, 동메달이라도 따면 좋겠다며 기도해달라고 기분좋게 나서는 아들을 보며 시큰하고 저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그럼그럼! 우리 아들 최선을 다해줘~~~! 엄마가 기도하지~~

웃으며 보내야 했다.


사람이 말할 때와 말하지 말아야할 때를 가늠하는 것이 참 어렵다. 말이란 생명체이기에 뱉는 순간 엄청난 기세로 온 몸과 마음을 휘감는다. 말을 절제한다는 것은 더 큰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명예와 희생을 담보로 한다.



지나고보니 말하길 잘 했고, 말 안하길 잘 했다.

지금 닥친 순간보다 저 먼 지점에 섰을 때 나와 남이 어떤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 생각하며 말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3. 에필로그


아들은 시험 주최측 배려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담당자분과 아들은 이후 더욱더 친밀하고 많이 생각해주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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