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수업

by 겨자씨앗


어제 아이가 종업식을 했다. 며칠 전부터 선생님께 편지를 써놓고, 친구들과 헤어질 거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아쉽다는 말을 계속했다. 마지막 날, 점심도 먹지 않은 채, 11시쯤 하교했다. 3학년 교과서를 잔뜩 가져오고, 자신의 물건도 싹 정리해서 끝냈다. 일 년 동안 무탈하게 잘 지낸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에게 맛있는 걸 해주고 싶은데 준비가 안됐다. 몸도 천근만근이었다. 먹고 싶다는 것을 대신 사 오라고 시킨 뒤, 잠시 누웠다. 5개 메뉴를 써주고 보냈다. 잠시 후 아이가 다녀왔다고 말한 뒤, 엄마가 시킨 메뉴가 없어서 3개만 가져왔다고 했다. 순간 식구가 4명인데, 가게에서 메뉴를 정해서 너희들이 먹고 싶은 걸 사 와야지, 집에 밥도 하나도 없는데, 3개만 사 오면 어떡하느냐고 다그쳤다. 아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1시간이나 기다렸다고... 너무 힘들었어... 하면서 억울하다는 듯이 울어댔다.

아이고... 잠시 누웠는 줄 알았는데, 한 시간이나 기다려서 겨우 양식을 사 온 딸아이에게 진짜 몹쓸 엄마가 됐구나 싶었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 선생님은 한 번도 나한테 화낸 적도 없고. 항상 친절하고 따뜻하게 이야기해줬는데... 3학년 되어서도 선생님 만나고 싶다... 엉엉엉"


아이의 아쉬움은 아마도 새로운 만남으로 점점 흐릿해질 것이다. 아쉽다는 것은 시간이 더 주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많이 사랑했다는 것이고, 아직은 만족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함께 보낸 시간은 충만했다는 것이고, 떠나보내기 싫다는 것이다.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다.


후회는 다르다. 무언가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고, 해소하지 못했고, 미안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면 그리 선택하고 싶은 것이다. 미련으로 남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아쉬운 관계, 아쉬운 시간이 있다. 보부아르는 말했다. 끝마치지 못한 일을 남기지 않는 인생은 제대로 살지 못한 것이라고. 아쉬운 발견이 다음 세대엔 큰 밑거름이 된다. 튀코 브라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절충하여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이 운행하고 지구가 또 하나의 중심이 되어 달과 태양이 도는 구조를 그려낸다. 그는 평생 연구한 모든 관측 자료를 케플러에게 넘겨주었고, 케플러는 천체물리학의 새 지평을 연다. 그는 태양 중심으로 행성이 부등속 타원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행성끼리 작용하는 자기력을 발견한다. 그 역시 불행한 생으로 마감했지만 이 연구는 갈릴레이와 뉴턴으로 이어져 유럽의 근대화 물결을 여는 초석이 된다. 인류의 발전은 무명들의 수많은 시간을 봇짐 삼아 도로를 닦는다.


내게 가장 아쉬운 순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자녀가 커가는 것,

그리고 부모님을 뵐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업적이나 일들은 후회가 많이 남는다. 내가 왜 그 학과를 선택했을까. 내가 왜 거기로 이사했을까. 내가 그땐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

그러나 사람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다. 좀 더 잘할 걸. 참을 걸. 내가 양보할 걸. 그렇게 대하지 말 걸.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알면서도 내가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아쉬움을 더 남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실컷 이야기하고도 헤어질 때에는 아쉽다, 헤어지기... 우리 또 언제 만나? 미련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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