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제의 받은 날

by 겨자씨앗

함께 합창 봉사를 하는 선배님께서 느닷없이 일자리를 제의하셨다. 올해 셋째가 초등 입학생이다. 더구나 홈스쿨을 하고 있는 내게 일자리라는 건 상상도 못 하고 있는 처지다. 10시부터 7시 근무. 집 근처. 하는 일은 콜센터. 글 쓰는 삶을 지향한 이후, 나는 모든 일을 경험하고 싶기에 어떤 일이든 의미 있게 잘할 자신은 있다. 일이란 것을 놓은 지 12년째 되니 고것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생계에 도움도 되고, 색다른 경험을 부딪혀보고 싶기도 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이런저런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학구파였던 나는 몸 쓰는 일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학부도 행정학이었고,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기에 지식 쓰는 일을 좋아했다. 대기업에서 겪어야 할 경쟁 구도도 싫고, 조직 사회 어느 한 구석에 톱니바퀴도 되고 싶지 않아 일찌감치 작은 기업에 눈을 돌렸다. 그저 내 영역에서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10년 동안 사회생활을 했는데, 3개 회사를 각각 3년 반 정도 다녔다.


당시 나는 사람의 감정보다 일이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첫 번째 회사에선 마감날이 되면 그야말로 진돗개였다. 내 자리에서 마구 상대방을 들볶았다. 그런 날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모두 핏대를 올리며 키보드를 두드려가며 출력한 면지를 오가며 오케이 사인이 날 때까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숨 돌릴 수 있었다. 인쇄소에 필름을 넘기면 나는 택시를 곧장 타지 않고 아주 깊은 밤거리를 정처 없이 걷곤 했다. 그곳은 낮이면 시장, 거리 밖으로 나온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 차의 소음과 매캐한 냄새들, 오가는 사람 어깨가 부딪힐 만큼 좁은 길이었건만 새벽길은 이따금 술 취한 객들만 보일 뿐, 같은 장소가 이리도 달라질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즐겼다. 그때마다 느끼는 무언가 뿌듯한 충만함과 얽매었던 것들을 풀어버린 해소, 느긋하고 안락한 기분, 세상에서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지라는 포근함으로 한주를 마무리 짓곤 했다. 다음 날, 출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단 하루 악마였음을 인정하고 다른 인격의 천사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그때는 잘 몰랐다. 일의 의미를.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며, 무엇을 어떻게 이루고 싶어하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가장이 되면 더욱 그렇다. 점점 우리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잊혀간다. 나이가 들면 은퇴를 향해, 노후 보장 때문에 할 뿐이다. 자영업자는 안 그런가. 1인 기업가도 어느 순간 첫마음의 시큰거림과 달리 탄성에 의해 움직이는 매너리즘을 겪는다. 우리의 월급이 그토록 중요하다.


남궁인 의사가 초등학생 기자와 인터뷰하게 된 칼럼을 읽었다. 어린이와의 인터뷰에 진땀 흘렀다는 제목이 흥미로웠지만 내용은 매우 씁쓸했다. 아니, 솔직했다. 4~6학년 학생들은 유익한 질문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꺼진 상황에서 그들의 질문은 이랬다.


-연봉이 얼마예요?

-왜 피부과,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더 돈을 잘 벌어요?

-서울에서 집 살 수 있나요?

-의사 선생님은 예쁜 여자만 만나나요?


4학년 양갈래 머리 땋은 모양이 예쁘다고 하니

-엄마가 예쁘다고 하는 사람 조심하래요. 납치할 수도 있대요.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일을 부여하는 의미의 현주소다.

일과 돈이 불가분 관계에 있음이다.


첫째 아들은 돈만 생기면 덥석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산다. 자신에게 들어온 돈은 내 것이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5학년쯤 되니, 무언가 생각이 달라져 있다. 만원을 가져갔는데, 닭꼬치, 닭젤리, 컵밥을 먹었더니 3,000원이 남았는데, 되돌아보니 돈을 함부로 쓴 것 같다며 갑자기 용돈기입장을 써야겠단다. 도서관에 가서 [존 리의 경제 마스터]를 빌려서 읽더라.


소크라테스가 된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는 돈의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글쎄, 내가 사고 싶은 거 살 수 있는 거?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건 돈의 쓰임새이지 네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지.

-엄마는 사고 싶은 거 사잖아요. 엄마가 먹고 싶은 거 사고. 그런데 왜 저는 내 돈인데 내가 사고 싶은걸 못 사게 해요?

-엄마가 사고 싶은 것을 다 산다고 생각해? 엄마는 거의 생존에 필요한 걸 사지. 먹고, 입고, 생활해야 하는 것들. 아빠가 이~~~~따만큼 벌어오면 나는 기본적인 것들 사고 난 다음, 이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를 매기게 되겠지만 엄마는 그럴 돈은 없다. 하지만 네가 가진 돈은 어떻게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지니까 네가 가진 돈의 기준과 철학이 필요하지.


늙어갈수록 암묵적 동의, 같은 패턴, 고수하는 수준에서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처럼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성공은 어떤 모습인가?"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돈은 어떻게 써야 하나?"

"이 일은 왜 해야 할까?"

"자녀를 잘 기른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좋은 질문은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다.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삶의 방향을 보게 한다.


제이컵 니들먼 철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에서-


니들먼 교수는 질문을 경험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질문을 경험한다는 것은 자신이 추구한 답대로 살라는 말같이 들린다.

질문에 그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깨달은 바대로 살아낸다면. 깨닫지 못한다면 멈추고 음미해본다면.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속도전이 아니다.

성공의 모습은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내면 된다.




브런치를 둘러보다 급한 헌혈 요청을 보고

조금이나마 알리고자 링크걸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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