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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자씨앗 Aug 08. 2022

농아인들과 보낸 가족 휴가

영성일기 4화

어쩌다가 가족 휴가를  농아인들과 보내게 됐다. 우리가 머무르려던 곳에 농아인들 수련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와 식사를 제공받으려면 등록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그렇게 했다. 나는 철저히 우리 가족들 휴가 왔다는 마음으로 편안한 숙소와 눈치 없는 식사를 하려고 신청한 것이다. 문제는 '마니또'였다. 주최 측에 우리 사정을 얘기하고 마니또는 빼 달라고 했다. 그러나 총무님은 무조건 참여하라며, 우리 가족 이름을 이미 다 써서 뽑기함에 넣었다는 거다. 나는 모든 종이를 일부러 펴서 우리 가족 이름을 없애버리려고 했으나, 이미 우리 가족들 이름을 누군가 가져간 뒤였다.


마니또는 비밀친구 아니던가. 이름 석자만 보고 누군지 파악에 나섰다. 명찰과 방 배정표를 보면서 30여 명 되는 사람들  특징을 익혔다. 젊은 청년은 12명 정도. 마니또 3명이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수련회에서 둘째 날은 제천 청풍호반에 케이블카를 타러 나들이를 갔는데, 젊은 남자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여자들은 해변가 분위기 마냥 원피스를 입고 신나게 재잘댔다.(들리진 않는다.) 일단 농아인 한 명을 붙들어서 핸드폰으로 이름을 써서 누군지 물어봤다. 오~ 알겠어. 사진 찍어주는 멋쟁이가 신 00구먼. 웃는 미소가 너무 멋있는 김00, 키 크고 잘생긴 장00, 꽃무늬 원피스 입은 샤방샤방한 이00~~가르쳐준 대로 머리에 넣어 놓고, 열심히 외웠다. 그렇지만 찐빵을 주면서 이00님 맞죠? 아닌데요... 아... 네... 찐빵 같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말도 걸어보고 예쁘다, 멋지다 수화로 날려주고.. 일단 맡겨진 책무는 최선을 다했다. 알아가는 기쁨도 있었고.


반대로 우리 가족에게 느닷없는 친절과 아는 척을 하는 분이 생겼다. 우리 아이들 이름을 물어보면서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편의점으로 데려가시는 거였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구슬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었고, 표고버섯도 나눠주셨다. 이제는 마니또여 서라기보다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농아인들은 여러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일단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분들이 계셨다. 전혀 소통이 안됐다. 누군가 옆에서 통역해줘야 가능하고, 핸드폰으로 써서 전달해야 했다. 들을 수 없지만 득순술(구화)로 내 입모양을 보고 완벽하게 대화하는 분도 계셨다.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겼다고 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던 것이 점차 다른 쪽 귀까지 전이됐다. 어떤 분들은 발음이 정확하지 않게 "모~오르~게엤써여~카아~도옥이나 저어~언나 해보게에여~" 수화로 대화한 후, 말은 조금씩 하는 분도 계셨고, 경중증으로 다양한 불편함을 가졌다.


나는 농아인들을 보기 전에 우리가 동원하는 감각의 80%는 시각이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청각이 사라진 '고요함'을 보니 우리는 의외로 청각을 통해 의식,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감각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끼게 됐다. 그들은 알람 소리를 어떻게 듣고 깨지? 전화가 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몸에 항상 차고 다녀야 하나? 취업은 어떻게 하고, 차가 고장 나면 어디로 가야 하지? 운전할 때, 위험 신호는 어떻게 감지하지? 본인을 확인하는 전화가 오면 어떻게 대응하지? 음악은 어떻게 느끼지? 농아인들끼리는 비밀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겠구나... 인공 와우가 개발됐지만 매우 비싸고, 인공적 혜택을 받지 못한 분도 많다. 농아인들은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경계인이다. 장애인올림픽대회도 농아인들만은 출전에 대한 시비가 있다고 한다.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신체 조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능도, 신체도 청인들과 차이가 없지만 소통하는 어려움이 크다.  그 답답함과 외로움, 서글픔과 두려움. 그들은 자신을 '고요한 바다'라고 표현한다.


내가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수화를 배울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의 가족이 농아인이거나, 내가 수화가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면, 그 어려운 수화를 배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2박 3일 짧은 기간이긴 했으나 내게 다가와서 관계를 맺으려는 농아인은 없었다. 우리가 같은 교회를 다니기에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나 또한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손을 내밀지 못했다. 아니, 그들에겐 내가 필요 없었으리라. 구경꾼 입장에선 신기함과 호기심이 컸지만, 점차 측은함과 이어지지 않는 대화에 실망도 느껴야 했다. 저들은 얼마나 수많은 좌절과 포기, 기회의 문이 닫혔을까 싶다. 청각장애인이면서 4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김수림 씨도 있지만,  일반화시키기는 어렵다.


<언터쳐블: 1%의 우정>이란 프랑스 영화를 봤다. 전신불구인 백만장자 필립은 자신을 돌봐줄 간병인으로 범죄와 가난에 얼룩진 흑인 청년을 뽑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흑인인 청년이 아랍인이라는 것만 빼고 거의 비슷하다. untouchable이란 뜻처럼 '만질 수 없는', '만날 수 없는' 관계다. 필립이 드리스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을 환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 돌봐주는 대상이 아니라 도전하게 만드는 자극을 준다는 것. 드리스는 다시 연애를 하게 해 주었고, 따뜻한 가정을 만나게 해 주고, 진한 우정을 선사했다. 세단을 타고 과속을 하고, 행글라이더를 태운다. 그들은 지금도 1%의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들과 관계 맺는 법을 다시금 생각한다. 2박 3일은 너무 짧았다. 내 인생에서 농아인과 맺는 우정을 위시리스트에 추가했다. 다가서지 않으면 내가 다가가야 하고, 어떤 관계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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