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4
신치토세 공항 지하 1층에는 JR (Japan Railways) 역이 있다. 온라인으로 미리 구매해 두었던 JR 홋카이도 패스 7일권을 수령하러 역으로 갔다. 패스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인 데다 매일같이 기차를 타지 않으면 오히려 일반 티켓을 사는 것보다 비싸질 수 있다고 해서 애초에는 고려하지 않았지만, 여행 후반부 우리의 이동 경로를 계산해 보니 패스를 쓰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다시 말해 티켓이 무지막지하게 비싸다는 이야기이기도…)
창구에 가서 여권과 예약 이메일을 보여주고 패스를 수령했다. 역무원이 혹시 쿠시로에 갈 예정인지 물었다. 한 주 전의 폭우로 쿠시로에 가는 철도가 운행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였다.
자주 가는 동네 공원 이름이 쿠시로 공원이라 (버나비의 자매도시라고 한다) 약간 궁금했던 곳이긴 했으나, 대표 볼거리인 습지 (야생동물이 많다고)를 순환하는 특별 열차가 10월 초까지만 운행을 하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 일정에는 맞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지만, 쿠시로까지 가는 철도는 우리가 홋카이도에 있는 동안 복구가 되긴 했다.)
일주일 후 개시할 두 장의 패스를 소중하게 지갑에 넣고 호텔에서 짐을 찾아 다시 공항 1층으로 갔다.
이번 여행 숙소를 예약할 때는 송영 버스를 제공하는 곳들을 우선으로 했다. 꽤 비싼 일본의 교통비를 아낄 수도 있는 데다 부실하지 않은 듯 부실한 남편과 함께이니 짐을 가지고 환승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노보리베츠도 송영버스로 공항에서 이동이 가능한 숙소가 있었고, 거기서 다시 삿포로까지 또 송영버스가 운행된다기에 얼른 일정에 포함시킨 것. (송영 버스 이용 요금은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우리는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해서 신치토세 공항-노보리베츠는 인당 편도 500엔, 그리고 노보리베츠-삿포로는 무료로 이용했다. (2025년 9월 기준) 부킹닷컴이나 아고다 등의 다른 예약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소정의 요금이 부과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약속 시간이 되어 십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고, 남편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잠에 들었다. (나는 버스에서 잘 자지 못해서 이런 능력이 꽤 부럽다.)
책도 읽고 바깥 구경도 하고 하면서 약 한 시간여를 달려 노보리베츠로 들어간다. 유튜브 영상에서 보던 거대한 빨강 파랑 도깨비 상을 실제로 보니 생각지도 못한 귀여움에 깜짝 놀라 웃음이 나왔다.
호텔에 도착하니 직원분이 기다리고 있다. 정중한 안내를 받아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갔다. 교자상이 있는 좌식 방이다. 방문을 여는 순간 (아마도 오래된) 다다미방의 독특한 냄새가 확 난다. 남편이 묘사한 대로 천정 구석이나 창틀 등에서 세월의 때가 느껴지는 방이었지만 방바닥이나 화장실 등 실제로 사용하는 부분은 잘 청소해 두어서 크게 불편이 느껴지진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동네 산책을 하러 나가기로 했다. 관광을 위해 조성된 지방 소도시의 느낌. 오랜 시간 관광지로 버텨왔으나 시간의 흔적은 감출 수가 없는, 뭔가 옛날 느낌 나는 마을. 걷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길게 늘어지는 타령조의 음악 소리가 들려서 과연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가 궁금해졌다.
지옥 계곡 산책로에 들어서자 마을 전체에 감돌던 유황 냄새가 훨씬 강하게 났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헐벗은 황토색 지형 곳곳에 김을 내며 튀어 오르는 온천수가 장관이다.
이 동네에서 머무르는 것이 온천욕으로 몸에 좋을지 아니면 유황 과다 흡입으로 인해 몸에 좋지 않을지 등등의 결론도 없는 부부 만담을 나누며 슬슬 걷다 (허접한데 왠지 끝까지 보게 되는) 염라대왕 쇼까지 보고,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서 호텔로 돌아간다.
아까부터 들리던 음악 소리는 거리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노~보리~베츠~하는 늘어지는 타령조의 노래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다음 날까지 머릿속에 남아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며칠 후 전혀 다른 지역에서 지나친 한국분들이 노보리베츠 노랫가락을 흥얼거리셔서 혼자 실소를 ㅎㅎ
하루만 묵는 짧은 일정이라 석식과 조식 포함 플랜으로 예약했다.
저녁은 꽤 즐거웠다. 뷔페식이었고, 음식들이 신선했다. 밥에 생선회를 얹어 직접 만든 카이센동도 좋았다. 뭐랄까, 굉장한 맛은 아니었지만 작은 화로를 테이블 위에 가져와서 징기스칸 고기를 굽거나 솥밥을 지어먹을 수 있는 등의 이벤트성이 강한 메뉴를 준비해 둔 것도 재미있었다. 관광지답게 그룹으로 놀러 온 사람들이 즐겁게 떠들며 술을 마시고 떠드는 소리도 흥겨운 마음을 돋웠다.
밥을 먹고 방으로 가니 이불이 펴져 있었다. 방에 준비된 옷 (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 긴 가운과 그 위에 걸쳐 입을 수 있는 겉옷)으로 갈아입고 목욕을 하러 갔다. 물에서 유황냄새가 은은히 난다. 날씨가 약간 쌀쌀해서 노천온천을 하는 기분이 제법이다. 어두워서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아 내일 아침의 목욕이 조금 더 기대되고. 따끈한 목욕을 마치고 방에 돌아가 캔맥주를 한 잔씩하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