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안 통해도 마음은 통한다 - 삿포로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6

여행지가 홋카이도로 정해지고, 일단 구글 플라이트 가격 변동 알림부터 설정했다. 지역과 날짜를 입력해 두었다 적당한 가격이 되었을 때 표를 구매한다.

항공권 발권 후에는 숙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남편도 나도 한 동네에 오래 머물면서 근처 식당이나 가게를 기웃거리는 느긋한 휴가를 좋아하는지라 (좋아하는 줄 알았는지라…) 역 주변이나 스스키노 쪽이 아닌, 조용한 주택가에 숙소를 잡아 일정 전체를 보낼 계획이었다. 주방이 갖춰진 적당한 위치의 숙소를 예약했다. 방도 두 개라 중간에 손님을 초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감사하게도 같이 놀자고 하면 흔쾌히 응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넌지시 말을 건넸더니 망설임 없이 온다고 했다. 그런데 숙소 규정을 다시 확인하다가 아차 싶었다. 일본 숙소는 인원수에 따라 요금이 책정됩니다... 공간을 빌렸다고 내 맘대로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오는 날만 인원 변경을 하려고 알아보던 중, 열심히 유튜브로 예습을 하던 남편이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하코다테는 사흘 정도만 있어도 될 것 같아." (읭? 하코다테는 삿포로에서 기차로 네 시간이 걸리는 곳인데요...) 거기다 남편이 무척 좋아하는 만화 <은수저>에 등장하는 '반에이 경마'를 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 경마장이 있는 오비히로는 삿포로에서 기차로 세 시간이 걸리는 곳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하코다테와도 전혀 다른 방향이라고...)

결국 여행 일정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고, 어쩌다 보니 친구들과 보낸 일정 외에는 거의 매일, 길면 이틀마다 짐을 싸는 빡센 여정이 되었다. 새로운 숙소 다니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재미있는 경험이긴 했지만 계속 짐을 풀고 싸는 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어서, 다음 여행에서는 이동을 대폭 줄일 생각이다.




그렇게 정한 친구들과 함께 묵을 숙소는, 삿포로 역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꽤 걸어야 하는) 아담한 민박집이었다. 투숙객 리뷰가 매우 좋아서 별 고민 없이 결정했는데, 호스트 분들이 정말 친절하셨다.


노보리베츠 숙소의 송영버스 하차위치는 삿포로 역 북쪽 입구였다. 감사하게도 픽업을 나오신 안주인 메구미 상은 딸이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반가워하셨다. 밴쿠버에는 일본인이 너무 많아서 일부러 일본인이 없는 곳을 골라 유학을 갔다고 한다. (예전에 캐나다에서 한국분들에게 많이 듣던 이야기인데 ㅎㅎ 어디나 사람 마음은 비슷하구나.)

메구미 상은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한 달에 두 번 한국어 과외도 받고 계신다며, 이동하는 동안 서툴지만 한국어로 이런저런 말씀을 건네주셨다.


숙소는 깔끔한 작은 양옥집이었다. 현관으로 들어가면 한편에 2층 주인분들 공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1층에 방 두 개, 부엌과 식당, 그리고 각각 입구가 따로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데도 방 두 개의 입구가 엇갈리게 설계되어 있어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구조였다.


메구미 상은 여러 가지 안내를 해주신 뒤, 부엌에 비치해 둔 노란 맥심 커피믹스를 자랑스레 보여주셨다 ㅋㅋㅋㅋㅋ 본인도 무척 좋아하신다며. 워낙 친절하시고 하나라도 더 도와주려 하셨지만, 언어의 장벽 탓에 마음만큼 소통이 되지는 않았다. 일본어로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99% 못 알아들으면서 5% 정도는 알아듣는 척해서 죄송해요 엉엉.




비록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이번 삿포로 여행에서 따뜻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숙소의 메구미 상은 마지막 날 짐을 들고 나오는 동안 내내 배웅을 하시며 계속 곁에 계시다 우리가 택시에 오르려 하자 내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아쉬워하셨다. (그 행동에 내가 조금 놀라자 좀 민망해하시는 것 같기도... 죄송합니다 ㅠㅠ) 또 한 번은 시내버스에 사람이 많아 가까운 손잡이를 잡지 못하고 멀리 있는 걸 간신히 잡고 본의 아니게 코어 힘을 테스트하고 있었을 때. 버스가 흔들려 내가 휘청대자, 옆에 계시던 여자분께서 본인쪽으로 나를 잡아끄시더니 어깨를 살짝 감싸주시며 그 쪽 손잡이를 쥐여 주시는 것이 아닌가.


여행에서 돌아와 도쿄 토박이인 일본인 동료에게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주었더니, 역시 거긴 시골이라그런가 하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마치 어릴 적 한국에서 겪은 듯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인연이라는 건 신기하다. 이번에 일본에서 만난 친구들도, 오랫동안 알아오긴 했지만 이렇게 부부 동반 여행까지 함께 하게 될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이였다. 이전에 몇 주간 함께 지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오랜만이라 숙소를 공유하는 것이 불편하진 않을까 싶었다. (그 걱정이 무색하게 각자 아침 화장실 사용시간 예고 등의 TMI를 남발하며 금세 편안해졌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이 일본 공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메구미 상이 또 차로 짐이라도 날라 주겠다고 제안해 주셨지만, 죄송해서 사양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섰다. 여유있게 나왔지만, 룰루랄라 전혀 반대 방향으로 향하다 막판에 또 헐레벌떡 경보를 하고 땀을 찔찔 흘리며 친구들과 만났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까운 소바집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만나기로 했을 때 의기투합했던 대로 '일식일나마비루(1食1生ビール)'를 실천하고자 했지만, 아쉽게도 이 집엔 나마비루는 없고 병맥주만 있다고 한다. 귀여운 작은 맥주잔에 삿포로 병맥주를 따라 한 잔씩 나누며 일차 반가움을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먹거리도 살 겸 동네 마트 구경을 잠시 한 뒤 숙소로 돌아와 짐을 푸는데, 친구들이 챙겨온 쿠키와 간식류, 홍삼 엑기스 등을 잔뜩 내밀었다...

캐나다에서 미리 와인을 준비할까 어쩔까 하다가 '가서 거기서 같이 사먹지 뭐' 하고 속 편하게 빈손으로 온 우리는 미안해져서 저녁을 대차게 쏴주겠다고 결심했다.


don.jpg 맥주도 콸콸


숙소에서 가까운 야키토리 집이 있기에 기린 생맥주와 여러 가지 꼬치구이들로 2차.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며 편의점에서 또 주류와 각종 과자를 사서 식탁에 펼쳐놓고 3차인지 4차인지...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매우 즐겁게 나누면서.



주택가에 위치한 숙소이기도 하고 주인분들도 같은 집 위층에 살고 있어서 우리 숙소에는 밤 11시 '콰이어트 타임(Quiet Time)' 규칙이 있었다. 우리도 새벽 노보리베츠부터 시작해 긴 하루를 보냈고, 친구들도 한국 연휴와 공항 파업 등의 이유로 주차장 찾기가 어려울 것에 대비해 일찌감치 일어나 움직였기 때문에 다들 11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근데, 나는 다음날의 일정을 시뮬레이션하며 또 잠을 설쳤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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