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8
큰 이동 경로는 분 단위로 세세하게 계획하지만, 매일 매일 무엇을 할지는 텅 비워두고 남편의 의견도 많이 참고했다. (친구들은 애초에 뭐든 좋다고 우리에게 전권을 맡겼다.) 홋카이도 대학에 가보자는 것도 남편이 제안한 것인데, 여행지에서 대학교나 도서관 등에 다니는 걸 좋아하는지라 흔쾌히 동의했다.
남편이 홋카이도 대학 탐방을 원했던 이유는 좋아하는 만화책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다만, (글을 쓰려다 보니.. 껄껄) 나는 무슨 이유로 여행을 가는 걸까?
일단 지난해 동생, 조카, 아빠와 함께했던 일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건 뭐였나 생각해 본다. 우선 청수사 같은 관광지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멋진 곳들이었지만 사람 많은 곳을 다니다 보니 금세 진이 빠졌다. 몇 군데 들른 후로는, 한적한 동네 식물원이나 변두리 마을 서점 등을 찾아다녔는데, 좋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아침 회동(?) 시간이다.
숙소는 규모가 작고 유스호스텔에 가깝다는 인상이 들 정도로 젊고 힙한 느낌의 호텔이었다. 조카도 있고 아빠도 아침을 드셔야 할 것 같아 조식 옵션을 선택했는데, 밥에 반찬 몇 가지가 나오는 일본식 정식이나 프렌치토스트 등 다섯 가지 정도의 소박한 메뉴 중 하나를 골라 먹을 수 있었다.
동생과 내가 한 방을 쓰고 조카와 아빠가 한 방을 썼는데, 아침에 깨서 뒹굴거리다 보면 누군가가 먼저 카톡으로 언제 만날까 묻는다. 로비로 내려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으면, 흐트러진 머리를 보이기 싫은 멋쟁이 아빠가 야구모자를 쓰고 조카와 함께 나타난다. 테이블에 앉아 각자 고른 메뉴를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스나 요거트, 시리얼 등은 자유롭게 가져다 먹을 수 있어서, 제 몫의 아침을 후딱 해치운 조카가 다른 먹거리를 더 가지러 간 동안 우리는 커피나 차를 리필해 마시며 수다를 떨었던, 그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은 호텔 로비에서 웃고 조곤조곤 떠들던 그 시간.
여행 후 어느 날 동생과 카톡으로 수다를 떨던 중 그가 문득 물었다. "여행, 뭘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여행이 다르다. 하루에 맛집 여러 군데를 다니며 있는 힘껏 먹는 여행, 박물관과 미술관을 순례하는 여행, 돈키호테에서 간식거리를 캐리어 한 가득 채워 돌아가는 여행... 나는 그저 낯선 도시의 냄새와 공기에서 느껴지는 옅은 농도의 불안함이 좋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 좋다. 익숙하지 않았던 장소가 특별한 장소가 되어가는 게 좋다.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문득 어느 장소의 이름을 들었을 때 슬며시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가 소중해서, 여행을 끝내자마자 또 여행이 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나중에 덧붙이는 사족:
이 글을 쓴 며칠 후, 캐나다 시간 12월 8일 이른 아침에 일본 아오모리현 부근에서 꽤 규모가 큰 지진이 발생해 홋카이도에 쓰나미 경보가 발효되었다. 이런 뉴스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덜컹하지만, 직접 가서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던 지역이라 더더욱 마음이 쓰인다.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지나간 듯하다.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