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대학 학생식당

생각보다 비싸다 했더니 (2025년 10월 1일)

by 그래도 캠핑

삿포로 맥주 박물관과 홋카이도 대학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다. 북쪽으로는 4블록 정도 올라가지만 서쪽으로 13 블록을 더 가야 하는데, 삿포로 시의 대학로라고 할 수 있는 북 12가나 13가에는 다양한 주거용 아파트나 상가건물들을 볼 수 있었고, 많은 건물들이 이른바 부르탈리즘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7~80년대 안도 다다오의 영향을 받은 디자인의 건물들이 개축되지 않고 그대로 명맥을 이어온 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사는 동안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이런 노출 콘크리트 형식의 건물들을 20여 년 전 밴쿠버에 이민 와서 처음 접하곤, "아, 역시 캐나다는 건설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페인트 칠을 하지 않는구나.." 하며 자뻑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안전은 개뿔, 사실은 그냥 오래된 유행이었던 것. 삿포로도 마찬가지겠지.



삿포로의 흔한 부르탈리즘 스타일의 건물들



이번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한 배경엔 캐나다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미국, 멕시코 빼고) 중에서 그나마 날씨가 가장 덜 더운 지역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고백하건대 두 편의 만화 영향도 지대했다. 앞서 언급했던 <골든 카무이>는 황금의 행방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뭐라 할까.. 서부 영화의 느낌? 그것도 악당들도 겁나 멋있게 나오는, 하나같이 또라이들에다가, 모두 성격이 잔인하고, 하는 짓도 잔인하고, 작화 연출도 잔인한 만화이지만, 그래도 인물들 하나하나가 매력 터지는 부분이 있어서 좋아했다. 무엇보다 작가의 악취미적 반전개그가 완전 내 취향이었다. 하나라도 예를 들기에는 역시 반전은 반전인지라 재미를 반감시키기에 여기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4~50년대 B급 영화들의 클리셰를 정통한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반전개그라고 생각한다. 작가 노다 사토루는 감히 만화계의 샘 레이미라고 칭송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한 편의 만화는 아라카와 히로무 작가의 <은수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꿈을 가지고 있는 소년들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차마 미래에 대한 어떤 계획이 없이 어른들이 정해놓은 코스대로 커다란 챗바퀴를 굴리기만 하면서 살아가니까. 아니, 꿈이 있다고 해도 그게 부모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만 해도 내 꿈과는 달리 부모들이 원하는 학교에 학력고사 점수를 맞춰 갔었고, 학교를 다니는 내내 전공과목에 전혀 흥미가 없어서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적응을 못 했으니까. 만화의 주인공 역할을 맡는 하치켄 유고 역시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는 중학생 시절을 보내다가 경쟁에 적응을 하지 못해 튕겨져 나온 캐릭터다. 그리고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 부모와 떨어져 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삿포로 시내가 아닌 소도시의 농업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대도시 학교의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이 지방 소도시의 학교에서 짱 먹으려는 심뽀가 아예 없지는 않았겠으나, 애초의 심정은 그냥 자포자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농업 고등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학우들은 농가의 자식으로서, 모두들 졸업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에게 꿈이라는 건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진 질곡과도 같았던 것. 처음에는 뚜렷한 미래 계획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서도 소외감을 느끼지만, 아주 어린아이까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농가의 현실 등과 차츰 마주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점차 찾아 나간다는, 실제 농가에서 자라고 농업 고등학교를 다녔던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잘 녹아있는 이야기다 (작가는 본인 자전적 이야기 만으로 만화 <백성귀족>을 낸 적도 있는데, 여기서 젖소를 본인 캐릭터로 사용해서 한국에서는 '소여사'로 알려져 있다).


<슬램덩크>에 감동받은 사람은 (원작만화에는 없고 TV판 애니메이션에만 나오지만) 가마쿠라 철도 건널목을 찾게 되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감동받은 사람은 대만 지우펀을 찾아가듯이, <은수저>에 감동을 받은 나로서는 단지 만화의 배경지라는 이유만으로 홋카이도 여행을 해보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당연하듯이, 만화 등장하는 '오오에조 고등학교'의 실제 모델이 있고, 반에이 경마가 실제로 열리고 있는 '오비히로' 역시 여행일정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만화 상으로는 후반에 살짝 언급만 되지만, 실제 여러 곳의 장소가 많은 장면에 차용되었던 삿포로 대학 역시 가고 싶었던 것. 지난 뉴욕 여행에서도 줄리어드와 파슨스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었는데, 여기서도 홋카이도 대학생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뭔가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홋카이도 대학에 가서 처음 방문한 곳은 바로 학생식당이었다. 무슨 음식을 먹는지를 확인하면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는 식의 거창한 철학적 고찰이 아니라,


무척 배가 고팠다.


아침에 컵라면에 삼각 김밥 먹고 이제껏 걸었으니 오죽하겠나. 아무리 바빠도 일단 배를 채우자는 심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비쌌다!! 대기업 외식업체의 캐터링 서비스가 자리를 잡은 현재의 한국 대학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3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그런 소박한 카페테리아 스타일의 학생식당인데.. 생각보다 가격이 많이 나온 걸 발견했다. 시내에서 사 먹는 수준으로. 어허. 이래 가지고 홋카이도 학생들이 밥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겠어!!라고, 캐나다 소매점에서 전 세계의 진상손님들을 겪은 경험을 가지고 냅다 호통을 치려다 보니,


아, 우리가 많이 주문했구나.



많이 먹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편의점 도시락 수준.



학생식당 입구




홋카이도 대학 학생식당의 점심메뉴는 주로 덮밥이 많았고, 많은 다른 사람들 역시 그냥 덮밥 한 그릇 앞에 두고 책이나 스마트 폰을 보면서 먹고 있었으나, 이것도 먹어보고 싶고, 저것도 먹어보고 싶었던 우리가 너무 푸짐하게 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생선구이나 가지 볶음 같은 요리의 경우, 식당 한 구석에 있는 밥솥에서 무한정 무료로 퍼 먹을 수 있는 밥과 같이 먹는 반찬 개념이었지, 우리처럼 덮밥의 반찬으로 따로 주문할 만한 것이 아니었던 것. 그래도, 농대와 축산대로 유명한 홋카이도 대학에서 직접 재배한 고급 재료를 저렴하게 구입해서 학생들에게 대박세일 가격에 제공할 것이라는 건 큰 착각이었다. 그렇지. 아무리 학생 식당이지만 고급재료는 제 값 내고 구매를 하는 게 맞겠지.


밥을 먹었으면 커피 한 잔이 국룰이지. 홋카이도 대학생들 생활의 흔적 찾기는 개뿔. 그렇게 하하호호하며 구내 카페인 <마르셰>를 찾아가는 길에 윌리엄 클라크 박사 동상을 만났다. 왜 그 옛날,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홍식이 (한석규)가 달동네 꼭대기에서 매일 부르짖던, "보이스 비 앰비셔스 Boys. Be Ambitious -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문장의 주인공.


클라크 박사 동상. 아래에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이 적혀있다. 개그맨들의 유행어나 명사들의 격언이 음악처럼 저작권이 있었다면 어떨까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흑선사건 이후 미일 화친조약을 통해 개항을 하면서부터, 홋카이도 개척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모든 산업들이나 근대 문물 도입, 무엇보다 고등교육에 있어서 미국인들이 많이 참여했었고, 그중 삿포로 농학교의 건립부터 교육체제 확립까지 모든 분야에서 감독을 맡았던 윌리엄 클라크 박사는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아니, 단지 클라크 박사뿐만 아니라, 홋카이도 개척에 자문역을 했던 호레이스 캐프론 동상 역시 삿포로 가장 중심지인 오도리 공원에 서있다 (물론 그 옆에 개척사 차관 구라다 키요타카 동상도 있다). 뭐, 한국에도 맥아더 장군을 신으로 섬기는 무당이 있다고 하니까, 외국인에 대한 특별한 존경이 아주 이상하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연세대에 있는 언더우드 박사 동상을 보면서 존경을 표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있을라나. 언더우드 박사는 그냥 선교하려고 한국에 온 것이고, 원래 미국에서도 교육자였던 클라크 박사는 처음부터 일본인의 고등교육을 위해 온 거라서 그런가?


2주를 조금 넘은 짧은 방문이었지만, 홋카이도의, 아니 일본인들의 이런 정서에는 끝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개척'이란 단어는 사실상 보는 입장에 따라서 '침략'이라는 단어를 그냥 좋게 포장한 말일 수도 있다. 북미와 마찬가지로 홋카이도에도 원주민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니까. 아이누 민족이 바로 이 에조치 땅의 주인이다. 그들은 북미 원주민들처럼 수렵 채집 생활만 한 것도 아니고 군락을 이루어 농경을 했다는 흔적까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키나와 류쿠 왕국과는 달리 아이누 민족의 혈통이나 문화는 홋카이도 땅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네무로나 쿠시로까지 간다면 몰라도, 적어도 삿포로 근교에선 도심에서 15km 떨어져 있는 홋카이도 박물관이라든지, 노보리베츠와 시라오이 근처의 우포포이 (민족공생상징공간)에 있는 국립 아이누 민족 박물관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모든 박물관이나 미술관, 그리고 기프트샵에 마치 관습처럼, 토착 원주민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상품화해 팔아먹는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달리, 홋카이도의 원주민 문화는 지독히도 지워져 있다. 꼭 원주민 역사가 아니더라도, MLS 정규시즌 서부 콘퍼런스 1위인 샌디에이고 팀은 캘리포니아 주의 노동시장과 축구 팬덤을 지배하고 있는 라틴계 팬들을 의식해서였는지 유니폼에 마야 전통의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한다. 물론 원주민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보다는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가깝겠지만.


하지만 삿포로는 어떤가? 원주민의 역사 대신 점령군 일본인, 그들을 자문했던 미국인의 동상이 중심부에 남아있다. 패권 경쟁이 삶의 진리였던 20세기 초반에는 어쩌면 당연한 논리였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인 올바름에 대한 집착(?)이 팽배한 지금까지도, 아이누 문화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연구나, 존경을 찾아볼 수 없는 건 낯선 일이었다.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는 게 더 나쁜 일인지, 아예 없었던 일처럼 쌩까는 일이 더 나쁜 것인지는 지금 판단하긴 어렵겠지. 그렇더라도 홋카이도 대학의 박물관에서 조차, 고래의 생태에 대한 연구나 각 학부별로 신입생들이 혹할 만한 시연장 역시 잘 갖추고 있었고, 심지어 사할린 아이누들의 복식이나 문화에 대한 소개가 나왔음에도 에조치 땅의 아이누에 대한 전시는 없었던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학 박물관에 전시된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래 화석, 사할린 아이누 문화, 치과대학 실습, 의과대학 (로봇수술) 실습







카페 마르셰는 홋카이도 대학 농학부에서 재배하고 사육한 농축산물로 신선한 음식을 제공한다. 안타깝게도 요구르트의 경우 테이크 아웃만 된다고 해서 우유를 마셨는데.. 어우. 미치도록 진하다. 이렇게 찐한 우유의 향이라니. 마치 전지분유를 먹는 느낌이다. 돌아보니 저 귀퉁이에 오늘 판매하는 음식에 사용된 우유의 성분이 자세히 적혀있는 칠판이 있는데, 네? 뭐라 굽쇼? 하하하하. 유지방이 4.7프로네. 아니 지방이 이 정도면 차돌박이 맛 정도는 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맛있어야죠. 유제품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눈에 보이는 편의점마다 우유를 꼭 사 먹었던 아내의 말에 의하면, 1%, 2% 우유가 가장 보편적인 북미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유지방 3.5% 이상의 우유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유지방률이 표기가 되어있지 않은 우유들 역시 3.5% 이상이고 저지방 우유라고 따로 표기한 제품들이 0.5~1.5% 정도의 유지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든든히 배를 채웠으니 (분명 홋카이도 대학에 온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삿포로 시내 구경을 하러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삿포로 시내라면 아무래도 TV타워와 오도리 공원 아니겠어요? 하지만 배는 든든하게 채웠으나 더 이상 걷고 싶은 마음은 추오도 없다. 맥주 박물관에서 걸어온 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쉬고 싶다. 여기 와서 지하철을 아직 한 번도 안 타봤으니 겸사겸사 몇 정거장이나마 지하철을 타자고 했는데... 느낌이 쌔하다. 홋카이도 대학을 나와 길 하나 건너에 있는 '북 12가' 역에 들어갔더니 어쩐지 한쪽방향으로만 갈 것 같다. 작년에 뉴욕에 갔을 때 기억이 났다.


120년이 넘은 전통을 가진 맨해튼의 지하철은 (당연히도) 현재의 사용량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지상에서 통하는 하나의 출입구는 한쪽 방면으로만 향하는 열차가 많았다. 그래서 남북을 종단하는 노선에는 대부분 브루클린 (남쪽) 방향인지 브롱크스 (북쪽) 방향인지, 지상에 있는 입구에 적혀있었다. 삿포로 남북을 종단하는 난보쿠선 역시 그게 쓰여있는 걸로 보였는데 아사부(麻生)가 남쪽인지 마코마나이(真駒内)가 남쪽인지 초행길에 그걸 알리가 없다. 이름마저 남북선인데, 그냥 남쪽 방면 북쪽 방면이라고 써놓으면 어디가 덧나나? 다행히 다음 한국의 지하철처럼 다음 정거장 이름도 있었고, 그 이름이 '북18가' 였기에 이 출입구는 북쪽 방향 플랫폼에만 통하는 출입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길 하나 더 건너서 남쪽 방면으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오도리 공원은 삿포로 중심지를 종단하는 소세이 강에서 TV 타워가 있는 곳 (중심이라고 해야 할까?)에서부터 서쪽으로 14가까지 뻗어있는 큰길(大通 오도리)에 있는 공원이다. 영어권 사회에서도 Street와 Avenue 보다 훨씬 폭이 넓고 중앙에 화단이나 정원이 있는 거리를 흔히 Boulevard라고 부르는데, 오도리공원을 문자 그대로 영어로 번역하면 불르바드 파크 정도가 되겠지. 암튼 겨울 삿포로 눈축제부터 시작해서 삿포로 시내에서 대부분의 대형 행사들이 열리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슨 가을 음식 축제를 하고 있네.. 하며 신나 했지만, 오도리 공원에서는 웬만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축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식도 마찬가지. 우와와아 일본의 냉장고라고 불리는 홋카이도에서 하는 음식축제에는 뭐가 나올까... 싶었는데, 그냥 일본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요리들을 포장마차에서 조리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개량한 버전들을 팔고 있었다. 게다가 TV 타워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에서는 이것들이 미디엄 사이즈 삿포로 맥주 한 잔을 천 엔에 팔고 있네!! 축제를 통해 사람들 등쳐 먹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매한가지구나.



사방에서 구워대는 냄새에 어지간히 시장하기는 했지만, 어딜 가더라도 실제 음식들과 가격 사진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결국 다시 숙소로. 저녁은 숙소 쪽 전철역 근처에 있는 슈처에서 횟감을 사다가 먹기로 했다. 마침 시간도 6시에 가까워져 슈퍼에 가면 할인 딱지를 붙이기 시작할 것 같기도 했다.


전철에서 내리고 나니, 그야말로 거대한 자전거 주차장이 보인다. 우와아아. 이 정도 공간을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해서 마련해 두다니, 정말이지 일본의 자전거 문화는 대단하다. 널찍한 보행자 도로를 자전거와 나눠 쓰는 것도 처음에는 이상하더니 적응이 되었는데, 기본적으로 빨리 달리는 자전거가 별로 없다. 밴쿠버처럼 전기 자전거에 로드 자전거로 미친 듯이 질주하는 법이 없다. 이러니 길을 나눠 쓰더라도 보행자들이 무서움을 느끼는 경우가 없는 것 같다.





다음날 일정인 닛카 위스키 증류소 방문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저렴한 닛카 블랙을 한 병 사서 들어왔다. 일본과 한국의 편의점에서 부러운 것 중 하나가 식용 얼음을 플라스틱 컵에 담아 판다는 것. 간단하게 하이볼이나 언더록스로 마시기 좋다. 위스키와 회를 같이 먹으면 왠지 회의 질감이 더 단단하고 쫄깃해지는 느낌이다. 아... 좋다. 멀리서 만난 오래된 친구들과 한 잔 하는 기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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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정치 얘기는 하지 말기로 해요.